[e-학장실]

질병 연구에 전념하는 '醫師(의사) 과학자' 키우자


신찬수 학장

한 해 3000명에 달하는 최고 인재들이 의과대학에 몰려온다. 이미 10여 년 된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교육을 맡은 의대로서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 1970~80년대 공대에 몰린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 IT산업의 초석을 닦았듯이, 이제 의대와 의료계가 응답해야 할 차례이다.

이와 관련, 역대 정부들이 계속 필요성은 인식해 관심을 가졌으나 결과는 지지부진했던 '의사과학자(physician-scientist) 양성' 재추진을 제안한다. 의대의 1차 교육 목표는 의사 양성이지만 '의사과학자' 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의사과학자'는 인턴·레지던트의 임상수련 과정까지 마치고 전업(專業)으로 대학원에서 제대로 된 연구 방법을 배우고 박사 학위를 받아 '과학자'로서 질병 연구에만 매달리는 의사를 말한다.

많은 환자들을 특정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의학기술 개발이 의사과학자들의 몫이다. 모든 의학 연구는 환자를 진료하다가 발견되는 의문점에서 시작하고 같은 병명(病名)이라도 모든 환자가 똑같지는 않다. 의사과학자들은 환자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깊이 있게 관찰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연구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낸다.

예컨대 암 환자의 조직에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특정 발암(發癌) 유전자 이상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표적(標的)항암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의사과학자들이 일부 환자에게 발견되는 임상적 특징을 파고들어 해당 치료제 개발에 전념할 때 가능하다.

문제는 어떻게 '의사과학자'를 키우느냐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각 의대는 대학원 과정을 두며 의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 전문의 한 명을 키우는 데도 많은 기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데다가, 대개 대학원 과정을 전문의 수련과 병행하여 비전일제(非全日制)로 운영하다 보니 경쟁력 있는 연구 능력을 함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의대 6년 과정을 마치고 바로 해부학·생리학 등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과거엔 매년 수십 명씩 나왔지만, 현재는 매년 전국적으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10여 년 전에 미국식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이 제도의 장점으로 강조됐던 것 중 하나가 의전원에 입학한 이과(理科)학부 전공의 학생들 중 일부를 의사과학자(MD-PhD) 과정을 통해 훌륭한 과학자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연간 10억~50억원을 책정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의사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전원 졸업생들이 의사과학자보다는 거의 모두 임상 의사가 되길 희망하는 등 '기대'와 다른 현상이 적지 않았다. 결국 대다수 의대가 6년제 시스템으로 복귀했지만, 이 의사과학자 과정의 필요성에 대한 진단은 옳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6년제 의학 교육 틀 안에서, 효과적인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을 숙고해야 한다. 의사과학자의 길에 들어서려면 인턴·레지던트 과정도 마친 늦은 나이에 전일제(全日制) 대학원에서 수학해야 하는 등 남들보다 훨씬 긴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향후 진로·신분에 대한 불안감 탓에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책을 정부와 각 의대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해야 한다. 최고의 인재를 장기적 안목에서 어떻게 투자하고 길러내 향후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 산업인 의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에 더 큰 도움이 되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