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 학생기고]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죽이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한희원 학생(본과2학년)
GV(Guest Visit)에 참여하기 위해 GDR 5에 도착했을 때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혜정씨의 얼굴이 닮긴 영상과 함께 이 노래가 나를 맞이했다.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아주 곱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가사가 내 귓속에 들려왔다. 예상 치 못한 가사였다. 슬프다고 하기엔 너무 담담하고 기쁘다고 하기엔 뭔가 쓸쓸한 가사였다. 이 짧은 네 줄짜리 가사가, 그리고 이 노래가 품은 분위기가 오늘 우리가 보게 될 다큐멘터리 전부를 담고 있었다.
4월 30일 융합관 GDR 5, 6 에서 어른이 되면 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상영회와 GV 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은, 장혜영 감독이 자신의 중증발달장애 동생(장혜정)과의 시설 밖 생존기를 담은 내용으로 18년 동안의 시설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혜정씨가 언니 혜영씨와 같이 살며 겪게 되는 일들을 담고 있다. 이 상영회를 주최하기 위해서 연건 사회과학 동아리 움틈, 서울대 글로벌 헬스 포럼, 그리고 서울대 장애인 인권 동아리 턴투에이블이 함께 힘을 모았고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의 유일한 배리어 프리 공간인 융합관 GDR 이라는 협소한 공간 속에서 진행되었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하지만 보고 난 후 큰 씁쓸함을 남기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직접 장혜영 감독과 장혜정 씨를 모시고 GV를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매우 의미 있는 질문들이 오갔다.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관객분들의 질문에 대한 감독님의 답변을 이번 기고에 적어보려고 한다.
Q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혜영 : 저는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의 연출가, 출연과,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장혜영이고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진짜 반갑습니다.
Q2. 저는 개인적으로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 사람인데, 인문학을 하면 사회와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만 좋은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사는 것 같아요. 저 같은 비장애인이 어떻게 사회에, 장애인 인권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또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장애인 복지는 어떤 모습인가요?
장혜영 : 문학에 대한 사랑을 얘기해주셨으니까 그것에 대한 코멘트를 하자면. 지금일수록 문학적인 상상력,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격리의 철학을 통해서 계속 구획 지어지고 있고,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구획되고,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다르고. 결국,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자의 삶에 대해서 인지할 수 없죠. 그래서 결국 상상적으로 소수자들에 대한 삶을 인지해야 되기 때문에 문학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완전한 통합 교육에 관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수교육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금은 특수교육은 곧 분리교육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에게도 그렇고 비장애인에게도 그렇고 서로 자연스럽게 같이 살아갈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한 상태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인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해버리면 여전히 이 사회는 장애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건데……
지금의 이 경쟁 사회 안에서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 단지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의 자리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을 주셨는데. 예를 들면 이 자리에 오시는 것이고, 보신 것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결국은 개인의 감수성이 변화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고. 추상적인 존재였다면 저는 제 안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을 거에요. 그런 데서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3. 아직 제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장애인권에 대해서 관심 있다고 하면 일단 장애인인가? 이렇게 살펴보고, 왜 장애인권에 관심을 가져?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제일 이 장애 인권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것은 당사자인데, 한국 사회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되게 야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학교에 와서 강연하는 비장애인들의 얘기는 잘 듣고, 광화문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얘기하는 것은 잘 안 듣는…… 장애인 가족분들은 실시간으로 그것을 많이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의 문제에 관해서 얘기할 때 한계점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더 말해야 하는 사람일 수 있는데, 비장애인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더 크게 소리 내어서 말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해주시면 앞으로 이런 문제들에 관해 얘기할 때 더 절실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혜영 : 발화 권력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람들한테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 가장 먼저 장애인을 떠올리거든요. 바닥에 있는 게 아주 익숙한……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있는 사람들이 줘야지. 근데 주는 건 주는 사람 마음에 달린 거잖아요. 근데 장애인 복지라는 것은 빼앗긴 것을 돌려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비장애인들이 아예 처음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불균형을 같이 맞춰가는 것인데…… 그래서 더더욱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문제 너머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보여줘야 하는 것. 문제를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많은 분들이 해 주시고 있다고 생각해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투쟁의 언어도, 이런 언어도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4. 저희가 지금 서울대 병원 캠퍼스에 있으니 하는 질문인데, 여기 모인 분들이 일반적인 GV보다는 보건의료계열의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질문이 있으신지요?
장혜영 : 학문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재활이나 이런 단어들이 있지만, 영원히사는 삶은 없잖아요. 영원히 건강했다가 딱 죽고, 이런 일도 없는 것이고. 결국, 노쇠해지고 쇠약해지면서 인간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너무 약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빨리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저는 언젠가 죽을 것 같은데 저는 존엄하게 죽고 싶거든요.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터부이지만, 그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예정된 어떤 하나의 결론이잖아요. 그 언저리에 계신 분들은 한 번쯤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Q5. 한 인터뷰 기사에서, 이 영화가 장애인을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이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장혜영: 예. 가장 큰 오해를 사는 부분이 탈시설이 원 가정복귀가 아니냐. 탈시설에 극구 반대하는 이유일 거에요.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사실이죠. 탈시설을 했더라도 지금 나와서 장애인이 개인으로서 살 수 있는 물적 지원, 그 사람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나. 그렇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어떤 가족을 만나든, 더 이상 가족이 존재하지 않든,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동등한 삶의 기회가 주어지고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분이 바라는 복지의 모습인가? 이것을 물어보려고 제 나름대로 방식으로 화를 내고 있는 것이죠. 가족에게 장애인의 돌봄을 전담하는 것은 아니죠.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1 더하기 1은 1을 만드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0이 되거나, 각자가 0.5가 되거나요. 덴마크 같은 경우에는 24시간이 주어지고 7명의 활동보조인에게 나눠서 주어지는 것이거든요. 각자의 삶이 보장되는 것이고 0이 되는 사람은 없는 거죠.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6. 여러 장면에 의사가 조금씩 나오긴 했는데, 혹시 의사들이랑 부딪히면서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것은 있었는지?
장혜영 : 저는 많은 의사분 들을 만나보았죠. 만나보게 된 계기는 일단은 시설마다 그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약을 지어주는 촉탁의가 있고. 그리고 혜정은 정신병동에 2주 정도 입원하였고, 약을 짓기 위해서 꽤 병원에 다녔거든요. 조금이라도 약을 덜 먹이면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자 하는 신념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어요. (중략) 의사선생님이라서 장애를 질병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의학이 장애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적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7. 솔직히 학교에서 장애인에 관한 얘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인문의학 수업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 언급한 적은 없어요. 앞으로 장애인권을 얘기할 때 이런 부분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적응하는 것을 도와드릴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의료인과 비의료인을 비교했을 때 의료인으로서 어떻게 적응을 도와줄 수 있는지 질문 드립니다. 의료인의 역할이 되게 진료실에 갇혀있는 상황에서요.
장혜영 : 막 생각이 난 것은 이런 부분인 거 같아요. 전문적인 것은 잘하실 거고 적응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사람이 어떻게 삶의 의욕을 잃지 않고 다음으로 나갈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담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친구라고 한다면 담배를 끊어! 라고 얘기하지 않겠죠. 폐암에 걸릴지언정 너무너무 중요한 거라고 한다면 어떻게 담배를 피우면서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같이 의논할 것이겠죠. 다리 아프니까 다리 쓰지 말라고 하지 말고, 뭐 하고 싶은데? 라고 물으며 그 장애를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경감할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소멸할 것인가 와도 닿아있는 이야기인 거 같습니다. 장애는 사실이다. 가지고 살아야 하죠. 누군가가 낫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장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을 같이 고민하는 역할이 의료인의 역할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적응을 돕는다는 것을 의사 샘이 얘기해주면 조금 더 희망적일 거 같아요. 혜정하고 만나고 있는 의사 선생님 (소아정신과 선생님) 왈, 약이 해줄 수 있는 건 매우 한정적이고 혜정에게 좋은 친구가 생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 순간만큼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 사람(의사)과 별로 안 한 장혜정이 만나는 자리가 되는 것이죠.
한 명의 관객으로 이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리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적절한 지원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있는 60명 남짓의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 따뜻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회를 향해 분노하고, 장애인 인권향상을 간절히 바라고 장혜정, 장혜영 자매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짐의 무게가 이 사람들의 존재 덕분에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이런 협소한 공간이 조금씩 조금씩 넓어지고 우리의 목소리가 다 같이 조금씩 커지면 우리의 사회가 그날의 GDR 5 처럼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