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정균 명예교수님을 추모하며


이정균 명예교수(1929-2018)

이정균 명예교수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정신의학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닫히고 있습니다. 이 슬픈 소식을 접하고 저는 우리 교실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병원 전체, 또한 우리나라 정신의학계 전체를 대표하는 산 역사이셨던 교수님의 일생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이정균 명예교수님께서는 1929년 강원도 김하에서 출생하셔서 서울의대를 졸업하신 뒤 1954년 우리 교실에 입국하셨습니다. 이때부터 교수님께서는 평생을 우리 교실의 역사와 함께 하시게 됩니다. 교수님은 1961년부터 1994년까지 33년간 서울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로 재직하셨는데, 그 중 1968년부터 1988년까지 20년간 제 3대 주임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970년부터 1979년 까지는 서울대학교병원 병원 수련부장을 겸직하셨습니다.

이 기간 중 교수님께서는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많은 인재들을 부르셔서 성장기의 우리 교실이 막강한 교수진을 갖추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든든한 교수님들께서 이제는 시간이 흘러 대부분 정년퇴임을 하셨으니,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소아정신과 분과 및 임상심리 교육과정을 국내 최초로 개설하시어 교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신의학의 범위를 넓히셨습니다. 이제는 전국의 주요 대학 및 병원 정신건강의학과가 이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모자병원 수련제도도 서울대학교병원 수련부장으로서 교수님께서 처음으로 만드신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많은 젊은 의사들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양질의 수련을 받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련 받은 분들이 성장하셔서, 서울의대 및 서울대학교병원이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이분들에게서 수련 받은 이정균 교수님의 “손자” 제자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세계 속 대한민국 의료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실에서 신경과학 교실이 독립하게 된 것도 이정균 교수님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니, 교수님은 정신과학교실 뿐만 아니라 신경과학교실의 오늘도 기초하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정균 교수님의 이 많은 업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마 1981년 집필하신 교과서 “정신의학”이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 때 이 교과서로 정신의학을 배웠고 이정균 교수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제가 교수로 교실에 들어온 뒤에는 영광스럽게도 이 교과서의 개정판에 저자로 참여할 기회도 가졌습니다.

1994년 교수님께서 정년퇴임 하실 때에 저는 전공의로 교실에 근무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정년퇴임 하시면서, 아쉽게도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많이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젊은 시절에 저를 열심히 가르쳐주셨던 저의 스승들은 다수가 이정균 교수님의 부름을 받고 교실에 들어오셨거나, 교수님의 제자들이셨으므로 저도 학문적으로 이정균 교수님의 손자의 한 사람입니다. 제가 연구했던 생물정신의학 분야도 이정균 교수님을 통해서 우리 교실에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직접 지도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정균 교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날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교수님을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묵하신 모습입니다. 연구실에서 저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중요한 요점만 말씀하시던 모습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말씀들은 저에게 많은 통찰을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만 하더라도 교수님께서 가끔 교실에 들르셔서 저희들과 말씀도 나누시고, 교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자료도 주시고, 그것을 잘 보관하고 있는지도 챙겨보시고 하셨었는데, 요사이 뜸하시더니 건강을 잃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걱정하였습니다만, 급작스레 비보를 듣고 보니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존경하는 이정균 교수님! 이제 모든 것을 저희 후학들에게 맡겨두시고, 부디 편히 영면하시옵소서.


2018년 5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강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