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해외연수기




도영경 교수 (의료관리학교실)


 저는 2016년 9월부터 독일 베를린에 있는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에 와 있습니다.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에 중요한 기여를 한 물리학자인데, 제가 와 있는 연구소는 물리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독일에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의 특정 주제 영역을 연구하는 여러 다른 이름의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있습니다.)


이 연구소로 오게 된 계기는 논문과 책을 통해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 교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기거렌처 교수는 연구소 내에서 Center for Adaptive Behavior and Cognition (ABC)과 Harding Center for Risk Literacy를 이끌고 있습니다. ABC에서는 심리학, 경제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다학제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된 연구 주제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과 의사결정입니다. 제 교육, 연구 분야인 의료관리학과 보건경제학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를 이루는 내용입니다. 또한 Harding Center의 주요 연구 주제인 위험소통(risk communication), 의학적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정규 연구원과 같이 여러 회의와 기타 일정에 참여하는 가운데, 베를린의 샤리떼병원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지난 주에는 발트해에 있는 로스톡의 막스플랑크 인구연구소에 초청받아 세미나도 다녀오는 등,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귀국 후에도 Harding Center 외부 연구원으로서 공동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독일의 연구소에 와 있다 보니 한국 학계의 모습과 스스로의 연구를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환경은 어떤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기거렌처 교수(가운데)와 네덜란드에서 온 연구실 동료 얀


작년 독일로 오기 전 대학의 몇몇 분들이 제게 독일어를 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연구소에는 독일 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고 세미나와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일어를 못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연구소에서 주 2회 제공되는 독일어 강좌를 듣고 있는데, 쉬운 독해는 사전을 찾아가며 그럭저럭 하는 정도가 되었지만 회화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다행히 생활에서 접하는 독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해서 큰 불편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이 곳 베를린은 기억과 반성의 도시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유대인 학살과 2차 세계대전에 이은 동서 냉전 등 20세기 역사의 비극이 곳곳에 그늘져 있습니다. 제가 아침에 출근하며 지나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한 건물 벽은 그 곳이 과거 나찌의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우생학 연구가 이루어진 곳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한편, 베를린은 근대 과학적 의학의 발상지라고 불러도 좋을 영광의 도시입니다. 의학 교과서에서 이름을 보던 의학자들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앙역 옆 샤리떼병원, 의과대학 캠퍼스의 남쪽으로는 세포병리학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사회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돌프 비르효의 상이, 북쪽 코흐광장에는 결핵균을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의 상이 있습니다. 근대 의학의 여명기에 비르효는 세포를 관찰하면서도 병든 사회와 정치를 주목했고, 코흐는 인류를 괴롭히던 주요 질병의 원인균을 밝혀냈습니다. 비르효와 코흐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는 질문은 오늘날의 의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 비르효길은 샤리떼 캠퍼스를 떠나 코흐광장을 만나기 불과 50미터 전 다른 이름의 거리로 바뀌고 맙니다.

이들과 함께, 런던에서 콜레라 역학 연구를 한 역학의 아버지 존 스노우, 산욕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분투한 이그나츠 젬멜바이스도 의료관리학, 사회의학 관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세균을 아직 눈으로 보기 전인 시기를 살았던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을 묶어 의학의 현재를 살펴보는 간단한 강의를 준비해 볼까 합니다.

귀국 날짜가 이제 석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센터 동료들과 함께 생일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