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두 개의 국제학회와 함께 한 7월

이무혁 학생(의학과 4학년)

저는 의과대학에서 학·석사연계과정을 밟고 있으며, 올해 8월에 학부를 졸업하고 9월에 대학원에 입학 예정인 본과 4학년 이무혁입니다. 학·석사연계과정을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나 되었는데, 그 사이에 공부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업할 날이 다가왔네요.

저에게 올해 7월은 두 개의 국제학회에 참석해서 발표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EUROSIM Congress: Simulation for a Sustainable Future’에서 수행한 구두 발표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International System Dynamics Conference (ISDC) 2023’에서 수행한 온라인 포스터 발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회에 갈 수 있게 되기까지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무렵 도영경 교수님(의료관리학교실) 아래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대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수많은 정책들이, 수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물질적 요소들을 투입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예과 때부터 비선형 역학(nonlinear dynamics)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온 터라,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답을 찾고자 보건의료체계를 복잡계(complex systems)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공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직접 책과 논문을 찾아 읽고, 프로그램을 배워 가며 아주 천천히 연구 주제를 생각하고 몇 가지 재미있는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혼자 강릉에 가서 바닷가 카페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하고, 스키장에 가는 새벽 버스 안에서 노트에 그림을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2학년 2학기 의학연구2 때는 10주간 온전히 연구에 전념하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연구 주제를 구체화했습니다.

그러던 중, 3학년 2학기 때 우연히 EUROSIM이라는 유럽 시뮬레이션 학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발전시키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구두 발표를 목표로 3주에 걸쳐 모델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보았습니다. 연말고사 직전에 학회에 투고할 원고를 급히 완성하느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암스테르담에서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4학년 때는 비슷한 주제를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라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연구도 해 보았는데, 운이 좋게도 시카고에서 열리는 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ISDC)의 학생 세션에서 포스터 발표를 또 한 차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없는 학회 준비 과정

진짜 바쁜 일들은 학회 발표가 확정되고 나서부터 이어졌습니다. 학회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날카로운 피드백을 바탕으로 기한에 맞춰 원고를 수정해야 했고, 다른 대학들의 연구팀과 다섯 차례정도 Zoom 회의를 가지며 연구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International System Dynamics Conference (ISDC) 학회에서는 학생과 멘토가 1:1로 매칭되는 ‘Angel Advisor Program’도 제공해 준 덕분에, Virginia Tech에서 산업 및 시스템공학 박사 과정을 마치신 멘토 선생님께 연구 내용과 방법론에 대해 꼼꼼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학회 참석과 해외 출장을 위한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는 실무적인 과정도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학회 날짜가 점점 다가왔습니다.

< EUROSIM Congress 2023 학회장에서 기념사진 >

첫 번째 학회: EUROSIM Congress 2023 (암스테르담)

6월 30일. 아침까지만 해도 마지막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암스테르담행 비행기 안에서 발표 준비를 하는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병원 실습 과정에서 1~2주에 한 번씩 증례 발표를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받는 것이 그리 두렵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영어로 발표할 생각을 하니 약간 떨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한 발표였던 것 같습니다.

앞뒤로는 폭염이 몰려온 암스테르담이었지만 유독 학회 기간만큼은 아주 춥고 쌀쌀한 겨울 날씨였습니다. 덕분에 주말 내내 짧은 외출과 학회장 사전답사만 간단히 하고 발표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7월 3일, 암스테르담 응용기술대학(Hogeschool van Amsterdam)에서 대망의 학회가 시작되었고 개회식, 기조연설, 발표 세션, 포스터 세션, 그리고 커피브레이크까지 정신없는 하루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거의 마지막 순서로 ‘Agent-based Modeling’ 세션에서 20분간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구 내용과 통찰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끼며, 아직은 조금 부족한 연구이지만 차분하고 명료하게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청중들이 발표에 집중하며 열심히 메모하고 슬라이드를 촬영하는 모습을 앞에서 보니 발표자로서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발표가 끝나자마자 쏟아진 질문 세례를 감당하기에는 벅차기도 했지만요. 확실치는 않지만 학회 발표자 중에 유일한 학부생이었고, 유일한 의학 전공이었고, 가장 멀리서 왔고, 가장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뒤에 이어진 칵테일 세션까지 포함해서 3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무수히 많은 질문과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학회에서의 남은 이틀간은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학회를 즐기며 온전한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에 나무와 간판이 쓰러질 정도로 폭풍이 불고 비가 쏟아진 탓에 아침 세션을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비가 그친 다음 날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학회의 마지막 일정인 유럽항공우주국(ESA-ESTEC) 견학까지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두 번째 학회: International System Dynamics Conference 2023 (시카고, 온라인 참석)

귀국하고 연구실에 출근하며 새로운 생활에 이제 막 적응하려는 참에, 7월 20일 두 번째 학회 발표가 찾아왔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리는 학회에 직접 참석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학회가 대면-비대면 하이브리드로 시행되었기에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서 Zoom으로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EUROSIM 학회와는 달리 구두 발표가 아닌 포스터 발표였고, 메인 세션이 아닌 학생 참여 세션(Student-Organized Colloquium)이었으며, 이미 1:1 멘토와 발표 연습을 한 상태라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아시아에서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지 시간으로 저녁에도 발표 세션을 열어준 덕분에,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에 편하게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1분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짧은 포스터 소개만을 준비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10~15분짜리 구두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즉흥적으로 12분간 발표하는 귀중한(?) 경험을 하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 다음 주에 있는 메인 세션까지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학문 공동체의 분위기는 암스테르담에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EUROSIM 학회가 ‘시뮬레이션’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구 네트워크 중심이었다면, ISDC 학회는 ‘시스템다이내믹스’라는 특정 산업공학 방법론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형성된, 교육과 연구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세계적 네트워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전자는 ‘컴퓨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시스템 사고’라는 ‘생각의 방식’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두 학회 모두 ‘컴퓨터’와 ‘생각의 방식’이 핵심 구성 요소이기는 합니다만). 이런 점들을 비교하며 학회에 참석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

학회에서 배운 것은 비단 새로운 지식이나 연구 내용만이 아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학문적으로, 또 학문 외적으로 교류한 시간들이 저에게 가장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개회식 전에 캠퍼스 로비에서 헤매고 있는 저를 발견해 같이 발표 연습을 하자고 제안한 이탈리아 친구, 발표가 끝나고 1시간 동안 연구 내용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귀중한 조언을 해 준 독일 친구, 즉석에서 협업을 제안한 이탈리아 연구자, 다른 곳에 있다가 저의 발표를 들으러 부랴부랴 달려와서 사진까지 찍어준 스페인 친구,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고 암스테르담 길거리를 함께 방황한 중국 친구까지. 그 자리에서 일일이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저의 학회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귀국한 이후에도 SNS를 통해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종종 소통하고 있습니다.

영어 이외에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도 배워 둔 덕분에 학회에서 재미있는 추억을 더 많이 쌓았습니다. 스페인어권 연구자들에게 저의 연구를 스페인어로 소개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멕시코 친구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스페인어로 알리고, 폭풍으로 망가진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프랑스 친구와 같이 걸으며 프랑스어로 대화한 시간들 모두가 소중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언어를 매개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그 자체만의 매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다음 주의 ISDC 메인 세션들에서도 그런 기회들이 생기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해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

학회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탓에 앞으로 무엇을 할지 깊게 고민해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은데, 우선은 이것들을 보건의료체계에 잘 녹여내는 연구를 해 보고 싶습니다. 8월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Quality in Health Care (ISQua)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세 번째 국제학회 발표까지 마치고 나서는 다시 겸손한 자세로 초심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연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도해주신 도영경 교수님, 그리고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가족, 친구들, 동기, 선후배님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가능하도록 학·석사연계과정을 만들고 운영해주신 교수님들, 그리고 다방면으로 학문적 조언을 해 주신 교내·외 학생들과 교수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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