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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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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민 학생(의예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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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잠적이라 하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행방이 묘연해 가닿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다만, 잠적이라는 단어가 그 주체를 물질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기에, 형이상학적인 것 또한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자아, 의식의 잠적. 본론을 가져오기 전에, 잠적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세워 보자. 잠적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깊이를 전제한다. 그것이 가라앉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현실과의 유리를 만들어낸다. 수면에 던진 돌이 만드는 외침은 닿지 못하고 그 아래 남는 것은 고요이듯이. 그러면 어떤 것이 이 자아의 깊이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사람은 각자 그 현실에 차원을 하나 더하는 축을 갖는다. 그리고 축이란 사람마다 방향이 달라 서로 간섭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잠적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임의의 인간 그. 그 안에서 어떤 이유로 축을 따라 자아가 본래 있던 자리를 이탈했을 때, 그것은 그 안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 세계에 존재하기에. 다만 외부에서 관측되었을 때, 그것은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외부의 세계에서는 그 축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팀 ‘개구리다’는 각자 그 잠적에 대한 견해를 정리했고, 그를 각자의 글 안에 녹여 냈다. 바로 책 ‘잠적’이다. 그들이 남긴 아주 단단하고, 또 찬란한 사유를 나누고 싶어 책에서 인상깊었던 글 두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린에 대한 박애> -정지민

이 책의 첫 글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책은 글마다 하나씩의 섹션을 가지고 있고, 앞부분에 그들이 글을 쓰면서 나누던 대화가 제시되고 이어 글이 나와있다. 어찌 보면 흑백 영상이 극의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전위적인 옛날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 대화에서 이해의 단초를 찾아 글로 넘어가보자.

‘나’는 누나와 살고 있다. 다른 가족들은 떠났고, 그도 그에 별 미련이 없다. 한때 피겨 유망주였던, 좋아하는 시에 좋아하는 해와 달을 덧붙여 읊던, 누나 ‘서린’은 이제 없다. 개집에 틀어박힌 한 마리의 짐승이 남았을 뿐. 나의 일과는 일어나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 해의 희망을 꿈꾸며 머신을 돌리고, 기회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멀리 떨어진 집으로 돌아와 서린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다. 그는 누나를 증오한다. 짐승이 되어버린 그녀를 두고 생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동시에 애정한다. 비록 이지를 잃었더라도, 그 몸뚱이에서 한 때 곧잘 따랐던 누나의 흔적을 느끼며. 도박장에는 그 말고도 다양한 사람이 오간다. 어느 날 도박장에서 돌아온 그는 ‘서린’이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낮까지만 해도 보여주던 짐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혼자서 몇 번이고 유영하듯 미끄러지고, 과거에 그랬듯이 그 어떤 무게도 지니지 못한 것처럼 뛰어다닌다. 다음날 아침 그는 다시 누나를 확인해 보지만 그저 개만이 남아있을 뿐. 그래도 그는 행운의 기회가 왔음을 느끼고 다시 도박장으로 떠난다. 그곳은 왠지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싸움을 막아선 그는 이내 얻어맞게 되고, 그는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사유만은 반대로 점점 명료해지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느껴지는, 그 전지의 순간 속에서 그는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서린’을 마주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이 글 안의 사유를 마주하는 데 필요한 열쇠는 당연하게도 줄곧 나오는 이미지, 해와 달. 그리고 배경이 되는 겨울, 마지막으로 누나 ‘서린’이다. ‘나’에게 해란 겨울을 녹여줄, 그리고 희망을 보여줄 존재다. 그에게 다시 여유로운 생활을 가져다주고, 누나의 검은 해 같은 눈동자에 다시 빛을 띄워 올릴 것이며, 사람들에게 온기를 가져다주고 추위를 쫓아낼 희망. 그의 눈은 2년 전, 가족이 흩어지고 누나가 미쳐버린 순간부터 줄곧 검은 해만이 비쳤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던 “밤에 잠기지 말자.”로 시작하던 문구는 어디에 놓고 왔는지 그를 두고 잠긴 ‘서린’의 변화가 그 원인일 것이다. 어릴 적, 그의 작은 세계를 보살피던 ‘서린’이 스스로 그 자아를 가라앉힌 사건은 그가 지금의 ‘서린’이 아닌 개를 증오하는 이유지 않을까. 그는 도박장에서 다시 해를 띄우려 하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마찬가지로 검은 해가 비치는 눈동자의 손님과 달뿐. 그가 집에 돌아오는 것은 항상 밤이다.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불쾌한 검은 해를, 누나의 눈동자를 마주해야 하는 때. 그에게 밤은 절망의 시간이다. 낮 동안 해를 구하지 못하였고, 현실은 여전히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재인식하는 시간.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 ‘서린’이 빙판 위에서 겨울을 지낸 초목이 다시 생명력을 뽐내듯, 그 공간 위를 마음대로 누비는 것을 발견한 날의 밤은 그에게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 달이 세차게 그 빛을 보내는 빙판. 그 위에서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난 ‘서린’. 그가 계속해서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음은 어찌 보면 필연이리라. 다음날 그는 ‘서린’이 사라진 것을 깨닫지만, 그 짐승의 모습에서는 어째선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달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역시 도박장에 간 날. 늘 검은 해를 띄우고 다니는 옆의 참가자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훑을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던 그는 이유 모를 충동으로 싸움에 난입한다. 맞고 있던 남자는 제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따로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이어서 ‘그’를 때리는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한다. 이내 현실 지각이 흐려지며 여러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난 환상. 그 안에서 세계는 회전하고, 점차 가속하며 하나의 무대가 된다. 그리고 무대 위에 있는 번갈아가며 그 위를 밝히는 해와 달, 그리고 본래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수많은 ‘서린’들. 그 공간에 있는 ‘나'는 자연스레, 동하는 마음을 따라 느끼고, 또 다짐한다. 그건 아마 밤에 잠겨 허우적대는 대신 그 속의 달을 따라 해를 기다리는 자세로, 그 자신과 더불어 모든 이들에게도 사랑으로 대하고 안아주겠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그게 그가 그렇게 행복해 보인 이유이지 않을까.

“나는 이제 차마 이 환상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수십억의 회전하는 서린들을 낱낱이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해와 달이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세상을 보는 것이, 그리고 그 세상의 활기 넘치는 놀이공원의 소리를 듣는 이 순간이, 질리도록 추운 겨울에서 내 최고의 즐거움이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잠적』 <서린에 대한 박애> 에서 발췌 -

<ψ(t)> -채시원

바로 앞에 수록된 대화문의 주제(양자역학)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확실하게 의미를 잡고 넘어가기 힘든 문장의 나열들이 이어진다. 이 글에서는 우선 대화의 앞에 기호가 붙는데, 그것의 의미를 숙지하는 것이 보다 이해에 도움이 되므로 미리 설명하고자 한다.

∃: 논리학에서 ‘그것이 존재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기호이다. 자세한 용례를 본다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 위의 기호에 우리가 느낌표라 지칭하는 기호가 더해진 형태로, 그것이 존재하며 유일함을 의미한다.

∀: 이것은 위의 두 기호보다 좀 더 낯이 익을 것이다. 논리학에서의 전칭을 의미하는 기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읽어나가다 보면 작가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싶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글의 내용을 파악해 보자.

전개는 한 방에서부터 시작한다. 배경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반지하 방에서 수박을 먹는 두 남녀의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문. ∃!가 붙어있다. 이어 약간의 대화가 오가고, 여자는 접시를 정리한다. 그리고 거울 속의 스스로를 보다가 이내 그것이 ‘나’임을, 서술자임을 깨닫는다. 앞에서 상황을 서술하던 인물은 사실 그 안의 여자였다. “당신처럼 나도 나를 잊을 뻔했다.” 뭔가 걸리는 문장이 이어지고, 그 여자는 이제 ‘나’로 지칭되며 상황을 마저 그린다. 남자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고양이를 발견한다.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남자의 입에서는 고장난 축음기처럼 ‘고양이’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나를 닮은 여자’는 다시 그의 곁에 앉아 눈을 감고 그의 말을 듣는다. 어느새 여자가 옆의 존재에게서 느끼는 것은 보드라운 털의 감촉. 그는 고양이가 된 듯하다. 다만 그것을 부정하려는 듯이, 연신 고양이를 중얼거리는 그 고양이의 옆에서 아직 본인은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감은 채로 당신을 부른다.

이어 장면은 전환된다. ‘나’는 이제 ‘자하’다. 버스에서 내려 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이제 대화문 앞에는 ∃만 붙어 있다. 자하는 인기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사람의 기분을 느끼며 구석에 앉아 커플들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본다. 아주 귀여운 토끼. 그 말이 어울리는 여자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껏 힘을 준 상태다. 반면 남자는, 그 뒷모습에서도 보이듯이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자하는 아는 사람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확인한다. 아는 얼굴. 남자가 곤란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한다.

삼거리. 자하는 그곳에서 비를 만나야 한다. 뛰어오는 비. 자하는 머릿속에서 다시 스스로를 정리하고 비를 부른다. “상현씨”. 아까 토끼와 식사를 하던 그 남자다. 그와 삼거리를 대화하며 걷고, 상현은 왼손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다 독백을 시작한다. 그것은 자하를 향한 것이지만 자하가 듣지 않는 것으로 정해져 있기에, 자하의 기억은 다른 시점으로 이어진다.

밤. 침대 위로 도착했다. 옆에는 나체의 상현이 누워있다. 왼손에는 반지가 없다. ‘나’는 여기서 스스로에게 거짓을 느끼고 혼란에 빠진다. 잠깐 쉬어야 한다. 그리고 나오는 말에는 ∀가 붙어있다.

‘나’는 멀리서 남자와 토끼씨의 헤어짐을 본다. 옆에서 들려오는 ‘배우’, ‘컷’, ‘마스크’등의 소리. 지금은 자하가 아니다. 앞서 둘의 연기에 관한 대화를 듣자니, 자연스레 생각은 본인의 연기로 미친다. 감독은 좋다고 했다. 무언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듯한, 그 불쾌함. 촬영장의 사람들은 나를 정말 자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나를 진짜 자하로 만들기에, 곧 촬영장에서 사고를 낸다. 감독의 지적에 터진 자아는 독백을, 아주 긴 독백을 뱉어내고, 완전히 자하가 되어 버린다. 감독은 본인이 만들어낸 작품에 감탄한 듯하다. 그 뒤에도 비슷한 것을 요구했으니.

다시 반지하. 상현의 어린시절과 촬영 대기 중에 놀아주고 있다. 휴지를 뽑아 떨어뜨리는 것을 떠오르는 것으로 지칭하며. 하마를 줍던 중에 촬영팀 막내가 아이를 찾는다. 옆에는 어느새 아무도 없다. 막내는 이어 내 욕이 주 내용인 그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벗어난다.

처음의 장면이 다시 제시된다. 다만 멀리서는 어린 상현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창 밖에는 상현과 토끼씨가 행복한 얼굴로 왈츠를 춘다. 나는 이내 피로해진다. 몸을 누워 소리를 낸다.

“나는 이렇게나 오랫동안 같은 말을 반복해도 그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처음 보았다. 상현들의 합창은 너무나 오래 반복되어서, 나는 너무 피로해졌다. 나는 몸을 누인다, 내 다리도 나를 연민하는 듯 고함을 지르지 않으니 나는 톱도, 레몬도, 구멍도, 자하도 아닌 채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상현들의 합창에 맞춰 중얼거린다.
∀ ∀ 당신, 당신…나의 당신,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당신, 아, 사랑하는 당신…”

-『잠적』 <ψ(t)> 에서 발췌 -

매 장면 장면이 무언가 이질적인, 낯설음이 다가오는 상황의 연속이다. 불쾌함을 주기 위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 것 같다. 글의 중반부가 되어서야 독자에게 이것이 촬영장의 모습임을, 상현과 자하가 배역임을 알려준다. 대화는 이상한 기호가 계속 앞에 붙어있고 바뀌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도통 알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어딘가 잘못된 사람처럼 이해할 수 없는, 그 주인공의 독백은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의미를 잡기 위해 다시 찬찬히 뜯어보면, 글에 대한 무지로부터 오는 반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끼리의 일부를 만지면서 그것에 대해 논하는 맹인들의 이야기처럼. 이 글 앞의 대화에서도 실마리가 있는데, 이인증에 대해 논의해보는 시간이 그것이다. 어느 정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호 ∀가 앞에 붙는 발화는 모두 현실의, 필름 속의 말이 아니라 그 작품 밖의 말이다. ∃!가 붙는 말은 가장 처음의 반지하에서의 대화와 마지막 부분에서의 어린 상현의 목소리. 그 외에는 ∃가 붙는다.

생각을 펼치기에 앞서, 해석을 적어내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아직 이 소설이 명료하게 와닿지는 않아서, 어느 정도 모호함이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나’는 배우다. 여러 배역에의 몰입이 자아의 분리로 이어진 건지, 혹은 그러한 본인의 상태가 배우에, 자하에 잘 맞았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아들에게서 돌아올 수 있는, 말하자면 나침반? 방향감각? 을 잃어버린 듯하다. 항구에서 풀려버린 나룻배처럼, 그저 표류하는 의식 속에서 생각을 지어내고 말을 얹는다. 현실을 지각하는 것도 그것이 자하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인지, 혹은 자하의 감각에 대해 생각하는 나인지 고민하는 탓에 ‘나’가 느끼는 현실세계는 남들보다 먼 듯하다. 처음의 반지하 장면. 그것이 누구의 생각인지, 언제의 것인지,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이 부분만 이탤릭체로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이어지는 내용과 별개로 마지막 부분과 연결 지어 앞부분에 따로 삽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촬영물 상의 내용일지, 그 마지막과는 다른 결말이었을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어지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마 ‘자하와 본래의 자신을 분간하지 못하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주인공의 자아’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인증을 가진 사람의 느낌을 전해주려 한 걸까. 관측에 대해 드러난 부분은 그 방황의 끝을 지연시키는 요소로 넣었다고 생각한다. 자아를 본인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규정되는, 사회적인 무언가로 생각했기에, 촬영장의 인원들이 ‘나’를 종종 자하로 관측하는 것들이 ‘나’를 자하로 만든다는 의미였을 것 같다. 난해하지만 그렇기에 그 안의 깊은 생각이 잘 우러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책에 대한 소개는 끝이다. 아는 바가 적어서 비록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필자의 사유와 고찰이 잘 전달되고, 또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 한켠에 잠적이라는 책의 흔적이 남는다면, 그리고 잠적이라는 책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보다 기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팀 개구리다에게는, 남은 세 작품과 책에서 절대 배제할 수 없는, 그들 사이에 오간 언어 그 이상의 마음의 교류를 미처 다 담지 못해 참으로 아쉽고, 또 죄송한 마음이라고 전하고 싶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해 그가 갖고 있던 아름다움을 나누어준 이, 필자의 친구이자 작가 정지민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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