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교수님들의 건의사항/의견은 아래 메일을 통하여 비전추진단에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임상교수는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입니다.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후속 세대이고, 서울의대 후속 세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임상교수님들이십니다. 김정은 학장님 이하 현 학장단에서는 비전추진단을 통해, 병원 임상교수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대학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비전추진단은 카카오톡 채널 [新서임당: 새로운 서울의대-임상교수 소통마당]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에서의 소식을 임상교수님들께 전달하고, snuh@snu.ac.kr 메일 계정을 통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와 질문을 받을 계획입니다.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서울의대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추진단 올림
2023년 말, 펠로우를 마치고 보라매병원에서 진료교수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임용 직후 의정사태가 터지면서 병원은 혼란에 빠졌다. 앞으로의 진료 스케줄을 어떻게 짤지, 수술방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모든 것이 새로 정해져야 했다. 새로 임용된 교수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일이 낯설었다. ‘교수로서의 시작’은 그렇게 예기치 않은 혼란 속에서 시작되었다. 괜찮았다. 전공의와 전임의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익숙한 병원과 익숙한 시스템 덕분에 생각보다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신임 교수로서 어차피 새로 세팅해야 할 일도 많았고, 과의 막내라면 당연히 힘들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다. 오히려 입원환자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병동 간호사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초기 루틴과 프로토콜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신임 교수였기 때문에 전공의의 부재를 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2주 단위로 짜던 당직표가 한 달, 나중에는 두 달 단위로 길어졌다. 의정 사태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희미해지면서 오히려 점차 익숙해졌다. 당직이 아닌 날 병원 당직실에서 자야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부족하나마 논문도 조금씩 쓸 수 있었다.
몸은 점차 적응해 갔지만, 마음 한 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았다. 그것은 ‘교육’에 대한 불충분함이었다. 교수 임용 후, 한 선배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던 자리에서 “앞으로 교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입 끝까지 ‘교육’이라는 단어가 올라왔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스스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패기 있는 대답을 하기엔 부끄러웠다. 그렇게 ‘교육’은 내 교수 생활에서 한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의정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 공백은 더욱 길어졌다.
그러던 중, 전공의들이 복귀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마음은 복잡했다. 함께하지 못했던 미안함, 돌아와 주어 고마운 마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고단함에 대한 야속함. 감정이 뒤섞여 복귀의 순간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다만 여러 생각이 지나가고 난 뒤 마음속에 남은 것은 한 가지였다. ‘이제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마음의 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그들은 병동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가 된 이후 처음 전공의와 함께 일하게 된 나는, 막연한 긴장감 속에서 복귀 첫날을 맞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복귀한 전공의들은 놀라울 만큼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잠시 멈춰 있었던 시간 동안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공의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짚어 주기도 했다.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공부해야 했다.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만 가르치려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가르쳐야 할 제자이면서, 또 때로는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진정한 ‘교육’이란 일방향의 전달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전공의들이 복귀하면서 비로소 나의 교수 생활이 제대로 시작된 것 같다.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 사실 나는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교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보다, 한 명의 의사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이 훨씬 크고 깊다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 많은 전공의들과 함께 하겠지만, 교수 인생 첫 주치의를 함께 한 전공의는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금은 교수도, 주치의도 배울 것이 많아 둘 다 우왕좌왕할 때가 있지만, 앞으로 5년 혹은 10년 후 서로 어떻게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되어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던가. 그간 선배 교수님들께서도 이런 기대와 즐거움을 가지고 우리를 지도해 주셨을 것을 생각하니 또 새삼 감사하다.
나는 아직 완전한 교수도, 완벽한 스승도 아니다. 하지만 전공의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의 교수 생활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의료의 현장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 있지만, 결국 환자를 향한 진심과 동료 간의 신뢰가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느꼈다. 전공의 복귀 후의 한 달은 단지 병원의 일상이 회복된 시간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초심을 되돌아보게 한 계기였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배움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