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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과 AI가 만난 순간: PIEthon 3.0 참가 후기

조승권 학생
조승권 학생(의학과 3학년)

올여름, 서울대학교 경제경영동아리 MDWinners에서 주최한 해커톤 PIEthon 3.0에 감사하게도 출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해 온 해커톤은 문제 정의부터 MVP (minimum viable product) 개발까지 전부 팀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고, 실제로 내가 참가했던 해커톤들도 모두 그런 구조였다. 그런데 PIEthon 3.0은 진행 방식이 조금 달랐다.

서울대병원 임상 교수님들께서 현장에서 직접 겪으신 unmet needs를 바탕으로 임상 문제가 제시되었고, 학생들은 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해결해 나가는 구조였다. 나는 평소에 ‘개발은 명확하고 날카로운 문제 정의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 왔기에, 교수님들이 제안해 주신 임상 문제라면 그 자체로 이미 현장에서의 수요가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실제 시장에서 영향력이나 침투력 면에서 꽤 의미 있을 거라는 기대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PIEthon 3.0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 몇 주 전 팀빌딩이 이루어졌고, 주제를 중심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우리 팀이 선택한 주제는 ‘Multi-agent AI 기반 정형외과 진료 후 응대 시스템 개발’이었다. 지금껏 참여해 본 해커톤과는 달리 공대 출신의 뛰어난 엔지니어 분들이 많아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꽤 높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동시에 내가 맡아야 할 역할, 그리고 의대생으로서 꼭 해야만 하는 역할에 대한 부담도 느껴졌다. 임상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도메인 지식을 개발자 분들께 효과적으로 전달해, 기술과 의학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잘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의학자와 개발자가 만나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시너지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무척 기대됐다.

대회 당일, 초반 문제 정의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획은 꽤 순조롭게 진행됐다. 문제 해결을 위한 스키마를 시각화하고 기능 명세서를 작성했다. 이후 임상 문제를 제시해 주신 노두현 교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 임상적 상황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과 기능 명세서에 대한 날카로운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특히 의료기술 규제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 타겟 설정은 어떻게 할지, 그에 맞는 UI/UX (user interface/user experience)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제품의 의학적 완성도는 어떤 수준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깊게 고민했고, 교수님은 그 모든 지점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전해 주셨다.

개발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전에 참여했던 해커톤들과 비교했을 때,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다시 한 번 몸으로 느꼈다. 예전에 ‘자연어로 코딩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 팀의 개발자 분들은 실제로 자연어 프롬프트를 이용해 LLM (large language model)을 fine-tuning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활용하셨고, 그 덕분에 나도 개발 과정에 생각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맡은 인원들이 적절히 나뉘어 있어서 역할 분담도 원활했고, 그 결과 정해진 시간 안에 무사히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피칭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 팀 결과물의 완성도가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른 팀들의 발표를 보니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들이 나와서 정말 놀랐다. 날카로운 문제 정의, 명확한 타겟 설정, 그에 딱 맞는 기술 적용, 피칭 능력까지 여러 면에서 감탄스러웠다. 교수님께서 임상 문제를 정의해 주셨기에 우리가 문제 정의에 조금 안일하게 접근하지 않았나 반성도 되었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준비 과정과 해커톤에 참여하며 배운 것이 워낙 많았기에 그런 아쉬움은 금세 잊혔다.

해커톤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MVP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만큼 압축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또한 개발자 분들의 사고방식은 귀납적 사고에 익숙한 의대생들과는 결이 다르고, 그 차이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아서 흥미롭다. 이번 해커톤은 나에게 임상과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의학기술자라는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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