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의사과학자를 만나다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 의사과학자 박사후 연구지원사업에 2023년 11월 선정되어 과제를 수행 중인 전영글 박사가 한국연구재단 '한우물파기 기초연구' 과제에 선정되었다. 전영글 박사는 앞으로 10년간 총 18억 7,8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된다.


전영글 박사
< 전영글 박사(의학연구원) >

Q: 우선 과제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기초의학인 생리학을 전공하는 전영글입니다. 의사 면허 취득 후 생리학교실 김성준 교수님의 지도 아래 심장의 전기 생리 및 세포 생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다양한 이온 통로의 전기생리적 특성 및 생리적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의학을 공부하면서 현대 의학의 정교함과 방대함,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체 현상의 원리를 수학적, 물리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하는 생리학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Q: 이번 한우물파기 기초연구 과제의 핵심 내용과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명해 주세요.

A: 저는 2018년부터 CALHM(Calcium homeostasis modulator)이라는 새로운 이온 통로의 전기생리 특성을 연구해왔습니다. 새로운 이온 통로가 발견되면 많은 연구자들이 전기생리 특성을 연구합니다. 저 또한 관심을 갖고 CALHM의 온도, pH 의존성과 같은 전기생리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한 가지 큰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전적인 이온 통로 연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조건에서만 CALHM이 겨우 활성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몇 가지 연구를 수행하면서 일반적인 활성 조건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고, 생리적 환경에서 CALHM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전기생리학자들의 이 고민은 CALHM이 생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고, 2008년 발견된 CALHM은 15년 동안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생리 역할을 밝혀낼 수 없는 이온 통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 년 전, 저는 몇 가지 실험적인 단서를 통해 CALHM이 이온 통로가 아닌 서로 다른 두 세포막에 발현된 이온 통로가 결합해서 형성하는 간극연접(gap junction)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CALHM을 발현하는 두 개의 근접 세포를 두개의 패치 클램프 기기를 이용하여 각각 전압을 고정하고, 세포 사이에 간극연접을 통해 흐르는 전류를 측정하였습니다. 이 결과에 더해 몇 가지 세포생리 수준의 실험을 통해 CALHM 이온 통로가 두 개 모여 간극연접을 형성한다는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간극연접을 형성하는 단백질은 현재까지 3종류만 알려져 있으며, 생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의 간극연접은 심근 세포들을 전기적으로 연결해주는 '통로'가 되어 심실이 한 개의 세포처럼 동시에 수축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간극연접 단백질들의 유전적 돌연변이는 심각한 질환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간극연접 형성 단백질이 많지 않고, 제한적인 고난도의 실험 기법 때문에 많은 연구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한우물파기 기초연구 과제는 CALHM을 새로운 간극연접 형성 단백질로 제시하고 있으며, 인체 조직 내 광범위하게 발현되어 있는 CALHM의 생리/병태생리적 역할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까지 당연히 CALHM이 이온 통로로서 작동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 던지고, 간극연접으로서 CALHM의 특성과 역할을 규명하고자 합니다.

CALHM의 간극연접 형성과 생리적 기능에 관한 연구 모식도
< CALHM의 간극연접 형성과 생리적 기능에 관한 연구 모식도 >

Q: 이번 정부 과제 선정 과정에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설명해 주세요.

A: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가 수행한 연구와 결이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연구 과제였기 때문에, 엄밀한 실험적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전기생리 기법을 이용해 CALHM 간극연접을 측정하는 것은 높은 난이도로 인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따라서 선행 근거 자료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시작할 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성준 교수님께서 전기생리적 조언뿐만 아니라 제 가설을 믿어 주시고 지지해 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선행 연구가 전무한 새로운 가설이었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지원이 필요했던 것 또한 큰 고민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의사 과학자 박사후 연구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도전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의사 과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이 연구비 지원을 마중물 삼아 한우물파기 기초연구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선정해 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합니다.

Q: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A: 간극연접의 전기생리 연구는 1980-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간극연접 단백이 밝혀지지 않다 보니, 현재는 세계적으로 두 그룹 정도만 간극연접의 전기생리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논문에서 기존에 알려진 단백질이 아닌 새로운 간극연접의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간극연접의 광범위한 생리 기능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연구가 이 의문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 발현 양상을 분석하여 소뇌와 면역세포의 특정 세포에서 CALHM이 집중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확인하였고, CALHM 간극연접의 전기생리 연구와 동시에 생리 기능을 규명하기 위한 초기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제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미답의 영역인 간극연접의 새로운 생리 기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이번 연구를 발판 삼아 앞으로 어떤 연구를 이어 나가고 싶은지요?

A: 전기생리학은 오래된 학문이지만, 매번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많은 이온 통로를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새로운 이온 통로가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그 기능에 대해 많은 연구자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온 통로의 고유한 전기적 성질을 연구하고 그 생리적 기능을 규명하는 전기생리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간극연접의 생리적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를 꾸준히 하고자 합니다.

팻취클램프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전영글 박사
< 팻취클램프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전영글 박사 >

Q: 의사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이제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라 핵심 가치를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배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중요한 가치는 끝없는 의심과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질문을 던지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조차도 의심하는 태도가 과학적 발견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Discovery is our business’라는 허긴스의 말을 인용하신 선생님처럼, 저도 언제나 의심하고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의사과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생리학자인 의사과학자로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온 통로의 특성과 역할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질병의 기전과 치료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임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시듯이, 저는 설명할 수 없는 생리 현상들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생명의 궁금증을 풀어내고,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 박사후 연구지원사업이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전주기적 지원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이 힘을 모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의사면허 및 박사학위 소지자의 혁신적,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매해 5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려 총 5과제를 선발하고 있으며, '1+29 발표평가 시스템'을 통해 지원된 과제를 엄격하게 평가한다. 전주홍 교수(생리학교실), 이철환 교수(약리학교실), 조동현 교수(해부학교실), 성지혜 교수(약리학교실)가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