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추진단뉴스레터]

당직의 기억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사항/의견은 아래 메일을 통하여 비전추진단에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임상교수는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입니다.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후속 세대이고, 서울의대 후속 세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임상교수님들이십니다. 김정은 학장님 이하 현 학장단에서는 비전추진단을 통해, 병원 임상교수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대학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비전추진단은 카카오톡 채널 [新서임당: 새로운 울의대-상교수 소통마]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에서의 소식을 임상교수님들께 전달하고, snuh@snu.ac.kr 메일 계정을 통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와 질문을 받을 계획입니다.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서울의대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추진단 올림

당직의 기억


장동기 교수(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장동기 교수(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다른 직업이나 직종, 같은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당직근무는 각기 다른 형태로 유지된다. 특히 병원의 경우 24시간 365일 돌아가야 하므로 당직근무와 순환근무가 필수인 특성이 있다. 잠시라도 이러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환자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므로 당직근무는 매우 중요하다.

당직의 로딩은 각자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내가 겪은 내과전공의로서 야간당직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렵고 힘들었다. 첫째, 중환자에 대한 부담감이다. 내과의사의 당직 로딩은 중환자들에 의해 좌우된다. 아무리 입원환자가 적어도 중환자가 한두 명 있으면 그날 당직은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내과 전공의 2년차 즈음 시작하는 MICU 당직은 이미 재원 중인 중환자들을 돌보는 것 이외에도, 병원 전체에서 새로운 중환자가 발생했을 때 중환자실 입실을 결정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 매우 막중한 위치에 있었다. 둘째, 잘 모르는 문제나 질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전공의 때에는 각 문제나 세부질환에 대해서 모두 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직을 서면서 수시로 찾아보면서 치료방침을 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렇게 하면서 많이 배우고 익숙해지기도 했다. 셋째, 야간당직을 선 다음날에도 주치의로서 정상적인 근무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아주 비정상적인 근무형태지만 ‘주치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다. 간혹 힘든 당직근무를 한 다음 날에는 어제 일이 며칠 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힘든 ER당직을 서면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힘든 내과전공의 당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과가 3년제로 바뀌고 전공의특별법이 생기면서 3년차들도 당직을 많이 서고 있지만, 내가 전공의를 하던 10여 년 전에는 3년차만 되면 당직에서 해방되는 것이 당연했고, 당직을 서지 않게 되면 힘들었던 당직의 기억을 점차 잊고 살 만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교수가 된 지금, 두어 달 전부터 다시 당직을 서고 있다. 주위 신생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당직을 서면서 근무해야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는데, 이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수들이 다 당직을 서고 있다. 두 달이 넘어가니까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야간당직은 힘들다. 전공의 때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전공의 때에는 당직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고, 같이 욕도 하고(주로 윗년차), 당직 서다 생긴 문제에 대해서 상의도 하고, 같이 야식도 먹고, 누군가 코를 골면 다 같이 못자기도 했지만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당직실을 혼자 쓰면서 뭔가 숨이 안 쉬어지는 답답함이 있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가끔은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에 혼자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야간당직을 한번 서고 나면 회복에 며칠이 걸린다는 점이다. 연구나 학회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의 질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몸이 안 좋아진 것을 느낀다. 초반에는 곧 정리되겠지, 설마 몇 달 뒤에도 내가 당직을 서고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막 5월이 된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당직을 서고 있다.

언제 끝날까? 전공의 때에는 3년차만 되면 끝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후의 달콤함을 느껴야겠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공의들이 바통을 넘기면서 끊임없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순서가 끝나면 다시 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뛸 때는 군말 없이 견디도록 세뇌되었다. 모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통이 떨어진 지금, 갑자기 투입된 주자들은 쇠약하고 늙었기 때문에 이어달리기는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뛸 때는 더 힘들다고 느낀다.

지금의 사태를 계기로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바람직한 변화지만 하루아침에 정착될 수 없다. 특히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내과는 PA시스템으로 바뀌어도 분명히 유지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장기전에 대비할 때가 왔다. 의대증원 여부와 관계없이, 직종 간 적절한 역할 분배, 전문의 중심 진료를 위한 제도적 보완, 지속가능한 당직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 당연히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의정갈등이 첨예한 지금 상황에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 부디 5월에는 이 사태가 마무리되길 희망하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의 힘든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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