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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도의 역량을 병원 밖으로

이상철 학생(의학과 3학년)
< 이상철 학생(의학과 3학년) >

시작합니다 헬스케어, Team Pelvicbio

의학도인 우리에게 주어진 Mission이란 의술을 통해 환자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 전체의 건강증진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본다. 삶이라는 영역 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개인에게 흔적을 남기며, 이 흔적들로 하여금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역량은 변화해 간다. 한 사람의 건강이란 그가 걸어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의학도는 인간의 행태 모든 것을 임상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적게 병원을 방문할 수 있을지, 나의 고민은 병원 밖에서 의학도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데 있었다. 인간을 더 건강하게 하는 법/체계/정책에 대해 논하고 서비스/제품/트랜드를 만드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임무이자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창업을 꿈꾸게 되었다.

시작은 막연하게 꿈을 꾸면서도 현실을 핑계로 미뤄대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시니어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성공적인 연구결과와 기술이 생긴다면 이를 기반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겠다는 심보였다. 그러나 스타트업 생태계를 글과 영상으로만 깨우친 의학자가 쉽사리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무작정 부딪칠 때 얻을 수 있는 배움’에 대하여 갈망을 느끼던 시기, <국내 유일 헬스케어 창업 동아리 MEDILUX>의 모집공고를 접하게 됐다. 운이 좋게 합격해 합류한 MEDILUX에서의 시간은 매번 낯선 어색함이 호흡으로 느껴지면서도 설레곤 하는 날들이었다. 비즈니스 모델(BM)을 논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견식을 넓혀가는 과정들이 익숙해진 지금의 내가 과거를 더듬자 하니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한둘이 아닌 듯하다.

Pelvicbio는 MEDILUX 소속 부원들 몇 명이 같이 힘을 모아 시작한 팀으로, 골반 장기 건강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골반 장기란 골반 내에 위치하며 골반기저근으로 하여금 지탱되고 있는 자궁, 직장, 방광 등의 장기를 뜻한다. 이에 집중한 이유는 초고령화 시대의 파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의술의 발달과 영양상태 증진으로 기대수명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내가 건강한 신체를 가지며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늘어날지 따져보기 어렵다. 특히 심장과 폐, 근골격계의 노화에 대해선 많은 연구나 서비스 개발이 이뤄졌을지라도, 골반 장기의 기능 약화에 대해선 적절한 서비스들이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다. 변실금과 요실금, 각종 감염, 배변과 배뇨 과정의 불편감은 공식적인 자리에 가벼이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삶의 질을 크게 무너뜨리는 분명한 요소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말 못할 어려움을 위로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가고자 하였다.

Pelvicbio의 첫 아이템인 ‘대장장이’는 여러 골반장기에 걸친 문제 중 대장항문질환을 다뤄낸 서비스이다. 변비나 과민성 장 증후군 같은 대장 불편감을 야기하는 질환과 이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기도 한 치핵 등의 항문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서비스로, 식이요법과 습관형성이 회복과 관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애초에 병원방문을 꺼리게 되는 만성 질환이라는 점을 주목하였다. 시장 조사를 통해 질환을 관리하던 기존의 방식들이 인터넷검색과 아날로그적 일지 작성에 그쳐 있음을 파악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접목시킨 헬스케어 서비스와 지식컨텐츠를 제작하였다. 또한 건강개선을 도모하는 과정이 지루하고 뻔한 기록행위뿐만이 아닌 제품의 소비 및 다양한 쇼핑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맞춤형 이커머스를 기획하였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대장장이’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을 넘어 ‘대장장이’와 함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리라 기대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이해받아서였을까, 11월부터 준비를 시작한 아이템이었음에도 벌써 여러 결과를 거둬 이에 많은 감사함을 느끼며 지낸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들이 주최한 각종 창업경진대회에 우수한 실적을 남기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의 지원을 받아 사무실 등을 제공받고 있다. 특히 지난 겨울 은행권청년창업재단과 서울의대가 주최한 <PRE D-DAY X SNUMEDICINE> 데모데이 행사에서도 값진 수상을 하며 이를 계기로 보다 많은 분들께 팀을 알릴 수 있었다. 아직은 예비창업자라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면서도 발전을 멈추지 않는 팀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절대로 잊지 않으려 노력하곤 한다.

대회 수상 사진
< 대회 수상 사진 >

의과대학 학생이 스타트업에 도전하기 앞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소통’이라 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과 학우들과 병리기전이나 치료법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지 잊곤 한다. 하나의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에도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협업해야 하는데 의료인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 팀은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 물론 우리가 컴퓨터언어와 디자인 툴을 하루아침에 이해할 수 없듯, 의학적 사전배경 또한 비전공자가 단숨에 깨우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비스의 목적성과 차별성을 제일 먼저 논해야 하는 구성원으로서 타 팀원들에게 이를 설명해야 할 무조건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나 역시 팀 내 세미나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입에 붙어버린 영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미안함을 느끼곤 했는데, 매사 적극적인 자세로 지식을 흡수하고 가끔은 나조차도 보지 못한 포인트를 제시해 주는 우리 팀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의과대학 학생은 스타트업 씬에서 자신의 강점이 ‘인사이트’가 아닌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는 힘’임을 기억해야 한다.

투자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은 ‘어떤 대표가 되고 싶은가?’이다. 나는 ‘팀원들이 대표로 내세우고 싶은 사람’만이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Pelvicbio 같은 초기의 소규모 스타트업은 더욱 그렇다고 본다. 팀원들과 자주 대화하며 어려움에 공감하고 감사한 마음은 솔직하게 전하는, 열정을 일으키면서도 독촉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사람. 솔선수범하되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무례한 말을 삼가고 탓하지 않는 사람. 글로 적기야 쉽겠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라 매번 느끼며 며칠에 한 번씩 성찰하며 지내는 중이다. 우리 팀과 함께하는 시간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남도록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놓치지 않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딪히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싶다. 주변에서는 학업과의 병행에 대한 걱정과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매일같이 전한다. 그러나 무엇도 직접 경험에 앞서 충분히 알기는 어렵다. 본인이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어떠한 시간의 부담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때로 예상치 않은 곳에 있다. 우선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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