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그래도 괜찮은 해피 엔딩입니다

최수연 학생(의학과 4학년)>
< 최수연 학생(의학과 4학년) >

쏜살같이 지나간 6년도, 입학이 엊그제 같았던 6년도 아니었습니다. 즐거움은 즐거움 대로, 힘겨움은 힘겨움 대로, 모든 희로애락을 부족하지 않게 느꼈기에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에 충실했던 6년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졸업이 다가오니 모래가 다 떨어진 모래시계처럼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학업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연구에서도, 하다못해 인간관계나 취미생활에서도 특별할 것 없었던 제 자신에 아쉬움이 듭니다. 동시에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아’라는 약간의 오만한 생각이 드는 건 제가 핑계가 많은 사람이 된 까닭일까요, 아니면 제 안에 무형의 단단함이 생긴 까닭일까요. 저는 웬만하면 후자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뽑아 본다면 의학과 1, 2학년의 시험기간이 지체 없이 튀어나옵니다. 1학년,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성적에 상처받지 말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공부를 하자’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저 자신을 보호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모토를 지키기는커녕, 어느새 동기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불안함이 제 공부의 근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 심리적 스트레스와 수십 개의 강의록이라는 물리적 압박 속에서 제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아 ‘일단 해 볼게’, ‘할 수 있어’, ‘최선을 다 할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시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중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안 해도 돼. 괜찮아.” 그 전에는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에 잘 해보라고 격려해 주시던 분이 정반대의 말씀을 하시니 순간 여러 감정이 들며 눈물이 맺혔습니다. 사실 저는 늘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의 저는 제 정체성을 좋은 성적이라고 규정했고, 대학에서도 그 생각은 유효해서 동기들에게 뒤처지는 순간 제 가치는 떨어지고 모두들 제게 실망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제 외침은 ‘아직은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휴대폰 건너의 다정한 한 마디를 들었을 때 물밀 듯 퍼져오던 안도감에 힘이 풀렸던 건 제가 저를 몰아붙였던 시간의 끝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 삶은 그 말을 들은 즈음부터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솔직해지자면,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저를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것 같아 언제든지 깨질 관계로 보였습니다. 간단한 격려의 말도 좋은 성적을 요구하는 압박으로 들렸습니다. 제 주위에 높은 벽을 몇 겹이나 세워 사람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워졌고 점차 인간관계에도, 저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날을 세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게 웬걸, 저는 제 자신을 공부만 하다가 사회성도 부족하고 주위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학창시절 내내 깎아내렸는데 저는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바쁜데도 제가 힘들 때면 찾아와서 밥을 사주는 동기가 있었고, 무리한 부탁에도 손을 내밀어주는 선후배도 있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저를 지탱해 주신 분이 계셨고, 학업에서 숨을 돌리고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도 가까이에 계셨습니다. 온전히 저를 바라봐 주고 선뜻 제 곁에 서 줄 고마운 분들을 너무 늦게 알아봤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인싸’처럼 살지도 못 했고 동기들 중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협소한 인간관계를 자랑하고 있으니 타인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누군가 이에 대해 묻는다면 웃으면서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정도면 넘칠 듯이 충분해’라고.

그렇게 저의 정체성을 담보로 걸고 시험에 베팅하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어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은 있었습니다. 오히려 성적만 바라보고 치열하게 달려오던 과거가 학문적 발전에는 더 이득이지 않았나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다만 확실한 점은 제 자신, 제 주변을 잃을까 두려워 쫓기듯이 하는 공부보다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그려가는 공부가 훨씬 즐거웠습니다. 여러 분과 중에서도 특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과를 만나고 시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걸 알면서도 관심 있는 질환에 대해서 찾아보던 시간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최상위권에 올라갈 길은 요원해 보였기 때문에,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만 시험을 준비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던 게 저의 심리적 복지에 바람직하지 않았나 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정도면 괜찮다’는 말을 남발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아쉬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진로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의대생 사이에서, “너 나중에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은 “어떤 과를 가고 싶냐”라는 질문과 거의 같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떤 과를 갈지는 조금씩 명확해지지만 사실 과를 정하고 자격증을 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습니다. 교수가 될지, 개원을 할지, 연구에 매진할지, 뿐만 아니라 제약이나 의료기기, 의료AI 관련 회사에 들어갈지, 의료와 관련 없는 길에 도전할지 등 수많은 길이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진로 탐색을 하지 않은 까닭이 가장 크겠지만 가끔은 의학이 아닌 분야에 종사하거나 의대 출신이지만 의사의 길을 걷지 않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졸업이 몇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은 어떤 과를 가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정도의 방향성만 남아 이정도면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는 나이가 더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2018년 3월, 이 학교가 나를 뽑아 준 만큼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으로 입학하였는데 정작 6년이 지나 졸업할 때가 되니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자기만족으로 떠나는 학생이 되어버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름 나태하게 살지는 않았기에 항변의 말은 있지만 여느 소설의 주인공처럼 특출난 능력도, 사건사고도 없었으니 저의 대학생활은 참 재미없는 소설 한 권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을 한 마디 남긴다면,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아이가 다행히 주위 풍경까지 눈에 담으며 뚜벅뚜벅 결승선까지 걸어왔으니 그래도 썩 괜찮은 해피 엔딩이 아닐까요. 아쉽게도 제 삶은 “Happily ever after”로 얼버무려지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시간도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에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최선의 결말을 낼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