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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정신과 실습을 마치며

손주희 학생(의학과 3학년)>
< 손주희 학생(의학과 3학년) >

일주일간의 소아정신과 폐쇄병동 학생실습은 워드 미팅으로 시작된다. 워드 미팅에서 나는 아이들의 병명, 최근 한 주의 상태, 조절해야 하는 약물과 진행 예정인 치료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 누구도 방금 들은 내용과 짝짓지 못했다. 아이들의 모습이 워드 미팅에서의 브리핑을 들으며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들은 질병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또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보이는 모습이 일반 아이들과 조금은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몸매도 얼굴도, 얼굴의 표정도, 대화 내용과 웃음소리도 또래의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그 누구와도 다르게 각자의 개성이 있었고, 각자만의 의무기록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을 알아가며 아침 워드 미팅에서 들은 사건과 병명만으로 아이들을 납작하게 상상한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아이들에게 미안하였다.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와 짝지어진 환아는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 곁에 나란히 앉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병력 청취를 위해 병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그러나 대화를 나눠가며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와 주인공, 학교에서 선택한 방과후 수업,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된 음식, 주말 아침을 보내는 법, 동생과의 다툼,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드라마, 좋아하는 후드티, 덤벙거리다 잃어버린 물건들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앓고 있는 병이 아이가 지금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숙제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수사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 중 하나일 뿐임을 느끼게 되었다. 환자복이 아닌 후드티를 입은 아이가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환자를 이렇게 알아갈 기회가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르겠다. 외래 예진을 하며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울먹이며 얘기하는 환자의 얘기를 차마 끊지 못해서 한 시간 넘게 듣고 있다가 교수님의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의사의 역할은 ‘history listening’이 아닌 ‘history taking’임을 얘기해 주시며, 제한된 시간 내에 우리가 맡은 바를 제대로 다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정보들에 선택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 주셨다. 이후의 실습에서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외래들을 참관하며, 환자를 위해 의사로서의 역할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다 보면, 병과 관련되지 않은 환자의 모습을 알아갈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오늘 만난 이 아이들을 떠올리며, 의무기록에는 담겨있지 않은 환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럼으로써 나의 환자가 지금 무엇을 겪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더 헤아려 보고, 연민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내가 하는 일은 병과 씨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일임을 기억해내며,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

소아병동 실습을 마치며 아이들에게 환자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생기가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들의 앞으로의 삶이 점점 더 다양한 것들로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그리하여 병동의 생활과 한 때 겪었던 어려움이, 혹은 평생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일지라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삶의 일부분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일주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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