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학생의사, 지난 경험의 기록

< 작성자: 유태웅 학생(의학과 4학년), 인터뷰 참여자: 전주홍 학생(의학과 4학년), 최수연 학생(의학과 4학년) >

2023년 6월 16일, 의학과 4학년의 공식적인 실습 수업 기간이 종료되었다. 물론, 그 다음주에는 실습한 12과목에 대한 시험인 일명 연중고사가 남아 있었고 2학기에는 학생인턴의 기회도 남아 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또 학생이라는 느낌으로 참여한 ‘실습’은 어쨌거나 마무리된 것이다. 실습이 끝나고는 시험 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었고, 시험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1학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1년 반이라는 실습 기간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방대한 의학의 세계를 담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며 어쩌면 맛보기조차 되지 못할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도 많은 생각이 싹텄고 많은 경험이 오갔다. 4학년 1학기를 마무리하며 또 의과대학 6년의 교육과정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며 실습의 경험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동기들에게 실습에 대한 감상을 가볍게 물어봤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많아서인지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생각 역시 비슷해진 것인지, 내가 물어본 두 명의 동기들은 놀랍도록 비슷한 대답을 해주었다. 전주홍 학생(의학과 4학년)은 “한 과에 길게는 5주까지 있었던 3학년 때에 비해 2주마다 새로운 과를 체험하면서 다양한 임상 현장을 맛보고 다양한 환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항상 즐거웠던 4학년이었습니다.”라고 말해주었고 최수연 학생(의학과 4학년) 역시 “3학년 때는 ‘턴말’ 시험이 있어 실습 도중이나 각 실습 끝날 때마다 시험을 쳤기 때문에 늘 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마음에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4학년은 일부 과목 외에는 턴말이 없어서 실습에만 집중하고 스트레스도 덜하여 비교적 마음이 편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3학년과 4학년 실습을 겪으며 느낀 실습의 가장 큰 차이는 실습의 기간과 실습에 참여하는 과의 개수에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과를 2주씩 공부하는 4학년의 실습은 내과 10주, 외과 5주와 같이 한 과를 집중하여 길게 공부하는 3학년 실습과는 다른 인상을 주는 것 같다. 2주마다 실습하는 과목이 달라지다 보니 조 편성도 2주마다 달라져 결국 2주마다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실습을 하게 되는 것도 특징적인 것 같다. 특히 COVID-19으로 인해 의학과 1학년과 2학년을 동영상 강의로만 보낸 18학번에게는 실습이 자칫 서먹해질 수 있는 친구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4학년 실습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주홍 학생은 “연초에 신경외과 실습을 돌고 있었는데 3학년 후배님이 제가 있던 수술장에 들어온 기억이 납니다. 3학년 일정의 특정상 연초에 신경외과 수술장에 오는 것은 수술장에 난생 처음 들어오는 경험인데, 수술 끝나고 잔뜩 긴장했던 3학년 후배님과 함께 수술장을 한번 둘러보고 수술 보조 들어갈 때 손 씻고 가운 착용은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해주면서 제가 3학년이었을 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실습 중에 3학년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나 역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수술장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손 씻고 수술장에 들어와서는 간호사 선생님께 가우닝을 도와달라고 부탁드려도 되는지 모든 것이 어색한 3학년 후배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으쓱할 때가 있었다. 최수연 학생은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가장 마지막으로 돌았던 지역사회의학 실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실습의 가장 큰 특징은 실습 조 전원(10명)이 다같이 하는 조별 과제로, 특정 지역을 선정한 뒤 직접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보건의료 관련 문제를 분석하여 2주 안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연중고사 직전이라 다들 심히 예민하고 피곤한 상황에서도 보고서를 완성하기 위해 저녁마다 줌으로 2-3시간씩 주제를 논의하고, 어떨 때는 점심도 굶으면서 보고서 작성 계획을 짜며 일을 배분했습니다. 개인 시간에는 연중고사를 준비하는 틈틈이 보고서를 작성하며 2주를 정말 숨 가쁘게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힘들었지만 만족할 만한 보고서도 완성되고 동기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어서 나름 뜻 깊은 2주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실습 경험을 나눠주었다. 실습을 하면서 동기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동기들이 든든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평소에는 장난이나 치고 못 미덥게도 느껴지지만, 함께 과제를 준비하고 수술장에 들어가며 때로는 교수님께 함께 혼나는 순간마저 모두 모여 더 끈끈하고 단단한 관계가 되어 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실습 중에 교수님께서 해 주신 진로와 관련된 강의가 참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공부할 것이 많은데 앞으로 공부할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어느새 주눅이 들어 의과대학에 진학했을 때의 첫 마음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찾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쉬운 길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졸업을 앞두고 하고 있는 고민이 겨우 이런 것이라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때도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나와 내 동기들에게 “의사가 쉬운 길이라고 생각해서 의과대학에 진학한 것이 아니지 않냐, 어차피 힘든 거 그 중에서 조금 더 편하거나 조금 더 힘든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냐, 그럴 바에는 내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이제라도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길어봐야 4년 밖에 안 되는 전공의 수련기간 때문에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희망차고 꽃잎이 휘날리는 봄날 같은 길이 있을 거라는 거짓말보다 의미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내게는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덕분에 다시 한 번 내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에는 동기들에게 되고 싶은 의사의 모습이 있는 지 물어보았다. 전주홍 학생은 “3학년 실습을 돌 때는 병을 고치고 환자를 의료를 통해 행복하게 해주는 의사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면, 4학년 실습을 돌면서 다른 의사들을 돕고 협력하는 의사의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정’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동시에, 다른 동료 의료인들의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는 의료 동료인인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해주었고, 최수연 학생은 “환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4학년이 되어 외래를 참관하며 의사-환자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 환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병 자체보다도 ‘불안’이라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집단을 보기 때문에 몇 퍼센트라는 확률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예를 들어 치료 확률이 90%, 95%가 넘어간다면 환자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본인이 속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감정이 삶을 좀먹고 환자를 더 아픈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또, 만약 의사의 입장에서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고 외래가 끝난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병의 치료 계획은 귀에 들어왔을 지 몰라도 ‘불안’은 전혀 사라지질 않습니다. 훗날 제가 의사가 된다면, 의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병원에 들어올 때 한껏 쌓아왔던 불안을, 나갈 때는 조금이나마 병원에 두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실습을 통해서 배운 의술이라는 것은 결국 차가운 지식에 따뜻한 마음을 담았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실습에 더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주홍 학생은 “지식적인 부분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수술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학생이 직접 진료 현장에 참여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울 수 있지만 학생들이 직접 진료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 주신다면 매우 유익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3학년 실습 시작할 무렵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격려하시며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책으로 공부한 것보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며 적극적으로 실습에 참여했을 때 지식이 정말 내 것이 된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그때는 긴가민가하였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 말씀이 참이라는 것에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도 공부를 하다가 femoro-femoral bypass 사진을 보면 작년 외과 수술장에서 봤던 장면들이 기억이 나며, 수술 후에 교수님께 해 주신 설명이 기억난다. 이뿐만 아니라 실습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러 장면들이 문득문득 기억 나고, 공부할 때 문자로 된 지식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수연 학생은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제비뽑기에 떨어져서 원하는 과목을 듣지 못했다는 점일까요? 실습 시작 전, 학생들은 저마다 원하는 실습을 선택하고, 만약 신청한 인원이 규정된 인원보다 넘친다면 제비뽑기를 해서 인원을 맞춥니다. 동기들 중에 한 과목도 떨어지지 않은 친구들도 많은 반면, 저는 두 과목이나 제비뽑기에서 떨어져서 괜한 심술을 부리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4학년이 학생으로서 실습을 돌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인 만큼 각 과목별 인원을 조금씩 더 늘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모든 분과 실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절절하게 표현해준 것 같다. 그만큼 학생으로서 실습에 참여하는 경험이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습이 마무리된 것과 관련하여 친구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어 보았다. 저마다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한껏 품고 있는 모습에서 자부심을 제법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왜 아쉬웠던 것이나 후회스러운 것이 없었겠냐 만은 지나온 지금이라면 그 모든 것이 합쳐져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실습’이 ‘실전’이 되는 기로에 서 있다. 물론 아직 의사국가고시도 치르지 않았고 졸업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물이 끓어 기체가 되는 비등점에 놓인 물방울처럼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의사가 되어서 겪게 될 일들은 학생으로서 겪은 실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오늘까지의 우리들의 경험이 좋은 자양분이 되어 그토록 바라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