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추진단 뉴스레터]

비전추진단 뉴스레터

9월호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사항/의견은 아래 메일을 통하여 비전추진단에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임상교수는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입니다.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후속 세대이고, 서울의대 후속 세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임상교수님들이십니다. 김정은 학장님 이하 현 학장단에서는 비전추진단을 통해, 병원 임상교수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대학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비전추진단은 카카오톡 채널 [新서임당: 새로운 울의대-상교수 소통마]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에서의 소식을 임상교수님들께 전달하고, snuh@snu.ac.kr 메일 계정을 통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와 질문을 받을 계획입니다.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서울의대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추진단 올림

1. 서울대학교병원 임상교수협의회장 사설

서울대학교병원 임상교수협의회 백우현


최근 10년간 대학병원 교수의 위상과 역할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기존의 연구, 진료, 교육과 같은 전통적인 역할을 고수하면서 미래에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으며, 디지털 헬스, AI 등과 관련하여 새로운 의료 생태계 조성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료 기술은 발전하고 있으나 의료 현장에서 이를 연구하고 적용하기 위한 교수진들의 역량과 인력 네트워크가 불안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전문의를 따고 전임의 과정을 수년 거치며 대학병원 교수로 발령받아 진료, 교육, 연구를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의사들 사이에서 '한국 의료가 10년 내에 망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전임의 과정을 선택하지 않는 전공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예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거나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의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불안감은 세대 상관없이 모든 의사 직군에 퍼져있으며,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은 환자를 많이 보는 대학병원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큽니다. 결국 대학병원 전공의와 전임의 부족으로 이어져 많은 병원에서 교수들까지 야간 당직을 서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본원을 포함한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은 이런 변화가 체감되는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보다 규모가 작은 대학병원은 이미 심각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의료 환경을 비추어 볼 때 예견된 일이지만, 현재의 젊은 부교수, 조교수급의 의사들의 가치관도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사가 형사로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고위험군 환자를 보는 대학병원 교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여전히 업무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아 교수직을 기피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개업가 및 중소형병원의 봉직의 급여는 약 10여년간 가파르게 상승한 데 비하여 대학병원 교수의 급여는 장기간 동결되어 그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력이 유출되고 남아있는 교수들의 업무는 더 가중되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부문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고 연구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학교수로서의 사명감, 명예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고위험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진들이 떠나지 않도록 투자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상급 의료 체계를 책임진다는 헌신과 소명 의식이 꺾이고 있지만, 병원 조직이 현실적으로 보상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절실합니다.


대학병원의 교수들의 직급에 따라서도 부담을 느끼는 분야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른 점에 대해서도 교수 협의체에서 인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부교수와 조교수들은 예전 세대에 비해 일보다 가정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스트레스와 번아웃, 워라밸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게 여러 설문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직급과 연령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겠지만, 현재의 조교수와 젊은 부교수들의 낮은 수준의 보상, 워라밸 문제는 잦은 이직과 채용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대학병원의 진료 수준과 연구의 질 저하로 나타날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의료인들의 삶의 질이 병원 시스템 운영과 상충되는 부분은 충분히 인지되어 왔지만, 시대와 구성 직원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에 대해 대응해야 합니다.


본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필수의료분야 진료기반을 강화하고 보상체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임상교수협의회에서도 급여/보상체계 개선, 사학연금 보전, 임상교수의 복지 및 신분안정, 연구지원 등에 대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여러 교수님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송구스럽습니다. 이러한 사안의 진척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임상교수협의회에서 집행부와의 소통이 필요하겠으며 임상교수협의회와 교수협의회 및 비전추진단과의 긴밀한 협조 및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직까지 임상교수협의회는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현 시점에서 임상교수를 포함한 대학병원 교수로서 처한 난관을 극복하고자 훌륭하고 능력 있는 여러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 및 참여를 부탁드리며, 마지막으로 현재 임상교수협의회 일을 도와주고 계신 신경외과 김경현, 신경과 김정민, 정형외과 노두현, 내과 박지명, 영상의학과 윤순호, 정신건강의학과 윤제연, 마취통증의학과 조연정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 이카로스의 날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비전추진단 조영재


졸업동기인 비전추진단 단장님의 권유(타의) 반 자의 반 올해 비전추진단에 참여하면서, 나는 임상교수 신분으로 일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의대’라는 소속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비교적 공식적인 의대 행사에 졸업 이후 처음 참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모교에도 ‘굳즈’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이런 느낌이 조금 낯설기도 한데,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동안 임상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스스로 나와 모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하루에도 거의 수십 통 넘게 작성하는 이메일의 서명 하단에 내가 ‘SNU Medicine’ 이라는 문구를 일부러 넣지 않은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임상교수 발령 받고 얼마 되지 않아 대학 임용과 관련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본본타’ 규정이 어떤 의미인지, 교수라는 직함 앞에 붙은 ‘겸직/기금/임상/겸임/진료’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나는 작년에 ‘비기금’에서 ‘병원법인’ 트랙으로 신분안정화 심사라는 걸 받았다. 이 역시 처음 임상교수로 발령을 받았을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심사를 받고 나서 처음 들었던 느낌이 이제 더 이상 ‘서울의대’에 대한 고민을 안 해도 되겠구나 라는, 약간의 해방감 같은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교를 졸업한 이후 병원 소속의 임상교수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지금, 대학과 나 사이에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1. 학부생 교육

말머리 수식어가 무엇이 되었든, 서울대학교병원 산하 병원에서 교수가 되어 서울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인의 전문분야에 대한 강의를 하는 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모교를 졸업한 나는 학생 때 이 강의를 어떤 분께 들었었더라 생각하니, 내가 학생 때 우리를 가르쳤던 교수님들은 그 자체로 너무 높은 존재였기에 그 분이 했던 강의를 내가 한다는 그 자체가 주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그 어떤 다른 교육보다 신경 써서 준비를 했던 학부생 교육과정에서 실질적인 가장 큰 난관은, 실은 내 신분에서 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 나는 분당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1시간 강의를 위해 결과적으로는 반나절 스케줄을 비워야 했는데 학생들 교육을 위해 모교로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차가 가능하지 않았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중교통도 이용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이 별로 절약되지도 않아서 그리 적절한 대안도 되지 않았다. 늦지 않으려고 여유 있게 도착을 했을 때는 마땅히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 보니 강의실 밖에 그냥 서성이며 대기하기도 했었고, 때로는 달라진 교정을 좀 둘러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사실 한두 번 정도 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법한 사소한 것들부터 건의를 하고 물리적 여건이 달라지기까지 수년이 걸렸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배려가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던 귀중한 경험이기도 하였다.

2. 대학원생이라는 존재

임상교수로 지내면서 대학원생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던 건 좀 더 시간이 흘러서 였다. 부교수 발령을 받고 떠난 장기해외연수지로 나는 공대 교수님의 랩으로 가게 되었는데 소위 ‘실험실’이란 걸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지, 대학원생와 포스트닥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 곳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장기연수를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 연구 분야의 특성상 주로 공대 쪽 연구자들과 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제서야 대학원생을 받을 수 없는 임상교수의 신분에 대해 현실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침 당시는 모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다른 병원으로(=대학의 정식 교원 신분으로) 이직을 하는 분위기도 팽배했던 터라 그냥 한번 해보는 고민이 아닌,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이 글을 빌어 처음 밝히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나름 심사숙고를 했던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전공의 특별법이 생기면서 내가 예전에 전공의 신분 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참여했던 연구와 관련된 일은 더 이상 전공의들에게 함께하자고 할 수 없었고, 진료 업무가 이미 충분히 넘치는, 다양한 출신들의 전임의들과 연구를 같이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시간을 더 많이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비교적 적지 않은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는 국책 연구과제를 지원하는 것은, 어렵게 연수까지 갔다 오면서 배워왔던 새로운 주제의 연구를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내 나름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진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썼던 계획서여서 그랬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 최소한의 중개실험연구를 유지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 아닌 연구원들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정부지원 연구비를 대학의 산학협력단이 아닌 병원으로 받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장단점들이 있다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3. 학위 심사위원의 경험

최근 임상교수의 대학교원으로 서의 역할이 조금 더 구체화(?)되면서 올해 내가 새롭게 하게 된 일이 학위논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것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아예 문의조차 들어오지 않았을 일이었을 텐데, 한번 기회가 열리게 되어서 그런지 모교의 기초교실, 임상교실 뿐만 아니라 외부대학에서도 요청이 와서 다양한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직접 학위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보니 막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의 과거 박사학위 과정이 많이 생각이 났었다. 나는 박사학위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진행 해야 했는데, 중간에 장기해외연수까지 겹치는 바람에 일반적인 임상연구논문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정을 통해서(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학위를 받았던 터라 그런지, 적잖은 긴장감을 가지고 본인의 연구결과를 발표를 하는 학위생들의 ‘필사적인’ 모습에서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사장에서 그래도 주로는 ‘방어’를 하셨지만 때때로 역으로 ‘공격’도 하시는 다양한 지도교수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내 학위과정생을 받게 된다면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할 지 생각하면서, 새삼스럽지만 박사학위과정을 지도해 주셨던 나의 지도교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4. 나의 대학원생들을 위하여

비전추진단 단장님께서 이전에 쓰신 글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것처럼 이제 임상교수도 대학원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공동지도교수’라는 꼬리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작년부터 MD가 아닌 이과 석사학위를 마친 박사과정생 한 명, MD인 전임의 선생을 석사과정생으로 한 명씩 처음 받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감개무량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제약조건들도 있는데, 우선은 나의 소속이 현재는 임상 교실이어서 내년부터 가능하다는 단독지도를 정말로 실제로 하게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조금 의문이고, 대학원생을 받으면서 살펴보니 더 이상 ‘서울의대’도 과거 내가 학교를 다닐 때처럼 기초교실과 임상교실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여러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여기에 임상교수라는 신분제가 또 어떤 변수가 될 지, 행정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새롭게 임상교수 신분을 정의한 이후로 나는 내 이메일의 서명 하단에 아주 조심스럽게, 여전히 어색하지만 ‘SNU Medicine’을 덧붙여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에게 이 서명은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의 날개’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본교 졸업생인 나는 결국 병원법인 임상교수로 정년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가 들며 많이 무디어진 탓인지 요즘은 아무렴 어떻냐 라는 생각도 있긴 하다. 결국 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하는 나를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교수라는 직함 앞에 붙은 그 무엇이 아니라, 내가 만난 환자들, 넉넉치 않은 조건에서도 믿고 따라와 주는 연구원들, 그리고 이제 막 함께 연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새로운 학위생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야할 결과물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녹아버린 날개 대신 로켓이 되어, 언젠가는 태양을 넘어 태양계 밖 은하계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되는 날을 한번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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