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진료실에 지는 석양, 우리는 꽃피울 수 있을까

KAMC 미래의학교육캠프 참가 후기

김동욱 학생(의학과 1학년)

인공지능의 쓰나미 속에 의사들이 허우적댄다. 영상 자동 판독에서부터 상담까지, 인공지능은 많은 분야에서 의사를 위협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 최고의 석학인 제프리 힌튼 교수가 2016년에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5년 안에 딥러닝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능가할 것은 자명하다.”라고 예언할 정도였다. 다행히 의사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무장한 전문성으로 인공지능의 위협을 강인하게 버텨내었고, 제프리 힌튼 교수의 예언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쓰나미는 여전히 매섭게 달려들고 있다. 이 쓰나미 속에서 의학도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지난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KAMC에서 주관한 ‘미래의학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의과대학 학생캠프’에 참여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했다.

미래의학캠프에서는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는 각종 디지털 기술이 의학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사실 예과 때부터 의료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공부하고 있었기에, 나는 의학에서의 최신 디지털 기술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양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본과 공부에 허우적대던 지난 반년 남짓한 기간 사이에, 디지털 기술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해 있었다.

특히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의 안상진 교수님께서 어떻게 매일매일의 연구에 ChatGPT를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강의가 가장 뇌리에 박혔다. 지금까지 ChatGPT를 연구에 활용하는 것은 기껏해야 논문을 작성하고 수정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ChatGPT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신통한 존재였다. 관련 논문의 추천부터 논문 요약까지 모두 ChatGPT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고, 연구에 필요한 코딩이나 논문에 넣을 그림들마저 ChatGPT가 모두 해결해 주기까지 하였다. 새삼 지금까지 ChatGPT를 활용하지 않았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강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치킨 2마리의 거금을 들여 유로 버전의 ChatGPT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정말 의사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캠프 마지막쯤에서 수행했던 조별 프로젝트 활동에서였다. 이 프로젝트는 Chest X-ray를 보고 코로나19인지 아닌지를 판독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전문지식이 필요한 chest X-ray를 판독하는 것인 만큼 인공지능의 성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충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많이 쓰는 인공지능 모델을 다운로드 받아서 간단히 학습시키고 성능을 테스트해 보니, 진단 정확도가 99.9%가 나와버렸다. 1,300개가 넘는 데이터 중에 단 1개만을 빼고 모두 맞춘 것이었다. 인간 의사가 그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환자라면 망설이지 않고 인공지능 의사를 찾아가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것은 캠프가 끝나고 며칠 뒤 개강하여 면역학 수업을 들을 때였다. 미생물학 교실의 김현제 교수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단순히 진료하는 의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깊게 고민해 보라고 하셨다. 진료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decision making을 하는 것인데, 앞으로 과연 인간이 그러한 decision making을 하는 역할을 그대로 맡을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신 것이었다. 다시 한번 뇌 속의 뉴런 하나하나가 인간 의사가 될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라도 더더욱 디지털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언제든 기존 의학의 틀을 훌훌 벗어던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은 깊어졌다.

그러나 내가 내릴 수 있었던 답은 허무하게도 ‘본과 공부나 더 열심히 하자’였다. 나는 미래의학캠프에서 우리 조가 만든 인공지능 모델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이 맞추지 못한 X-ray 사진은 어려워서 인간 의사가 와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랬더니 발표를 보고 계시던 어떤 교수님께서 슬쩍 손을 드시면서, 어디어디가 어때서 코로나19가 있는 것인데 인공지능이 못 본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순간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으로 눈앞이 아득해졌다. “역시 인공지능은 사람을 따라갈 수 없네요!”라고 후다닥 대처하였지만, 괜히 교수님 앞에서 얕은 지식으로 자랑했다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조별활동으로 개발한 ‘코로나19 진단 인공지능’ 발표 >

이는 비록 인공지능이 너무나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더라도, 결국 인간 의사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이렇게 인공지능의 뺨을 때리기 위해서는, X-ray 사진을 보고 “아, 저거 코로나19 양성이네.”를 척척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의사가 인공지능이 조언해 준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여 진단한다면 의사의 존재 가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도 결코 완벽할 수 없는 만큼, 인공지능의 조언이 올바른지 판단하고 자신의 임상적 지식과 결합하여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면 여전히 인간 의사의 의미는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급변하는 의료 현장 속에서 단순히 과거와 같은 의학에서만의 전문성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과거와 같은 의학에서 전문 지식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되, 또한 인공지능과 같은 최신의 디지털 기술들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나의 전문성과 결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나 혼자만의 고민으로 이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료의 물결이 차오르고 있는 이 시기에, 미래의 의료에 대해 많은 사람과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많은 의대생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모여 함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이번 캠프는 방학 기간 내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 캠프 중 VR 체험 >
< 캠프 중 조별 친목 활동 >

인간 의사가 지배하는 진료실에도 어느덧 석양이 진다. 태양처럼 의사에게 내리쬐던 의학에서의 전문성이 더 이상 인간 의사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진료실을 지배하는 캄캄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할지, 아니면 다시 태양이 떠서 여전히 인간 의사들이 진료실에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토록 큰 위기는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있어,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를 비춰주던 태양보다도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네팔에서의 국제의학,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의 네팔 심장수술 역량강화 교육사업 참가 후기

유석균 학생(의학과 4학년)

선천 심장 질환은 가장 흔한 선천적 기형 중 하나로, 개발도상국의 유아 사망률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천적 심장 질환에 관련하여 여전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는 이를 위해 현지 의료인력을 교육하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량강화 사업을 펼쳐왔다. 네팔의 경우는 2021년부터 교류를 시작하여 특히 ‘팀 접근법’을 기반하여 임상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본과 4학년 심화선택 과정 중 일부로, 7월 14일부터 7월 21일의 기간 동안 네팔 강갈라 국립 심장센터에 심장수술 역량강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연구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가하였다.

처음에 ‘네팔’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 때는 '국기가 특이하게 생긴 나라', '히말라야 산맥'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았고, 이렇게 생소한 나라에 처음 가는 설렘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의료를 처음 마주하러 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기대되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의료, 그것도 좁게 보면 서울대학교병원의 의료만 경험한 의과대학 학생으로서, 완전히 다른 의료현장을 통해 환경의 ‘차이’ 속에서도 의료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다.

< 네팔 환아 진찰 중인 모습 >

네팔에 도착했을 때는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공항에는 에어컨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길들과 제대로 된 횡단보도가 없어 무단횡단을 당연한 듯 하는 사람들, 또 이를 아슬아슬 피해 다니는 차량들이 차선의 개념이 없이 오고 갔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어딘가 매우 불안한 느낌의 건물들이 계속되는 것이 딱 우리나라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는 건물들을 보는 것 같았다. 수도인 카트만두가 그나마 가장 발전한 도시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각오는 하고 갔지만 이러한 환경이 쉽게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의료의 현장에 들어가고 의료진 및 보호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의료진은 환자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본인들의 부족한 부분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보호자들은 환아를 치료해주는 의료진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의료진들이 매우 열정이 넘치고 신념이 강하며, 여러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보며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 네팔 심장수술 역량강화 교육사업에 참여한 학생들 >

네팔에서는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실습을 할 때 가끔은 피곤해서 가기 싫었던 다학제적 conference의 개념이 없었으며, 이로 인해 외과의사, 마취과의사, 소아과의사가 소통하는 일이 적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환자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당연하게 사용하던 의무기록이 있었으나, 환자에 대한 정보를 종이에 적어 이를 들고 뛰어다니며 일일이 종이들을 들여다보는 등, 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팔의 의료진을 보며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나는 환자를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 의학적인 부분 이외에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네팔의 의료진들은 매일 4건에서 6건의 심장 수술을 진행하면서, 잘못을 하더라도 서로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이 걸린 수술을 많이 하면 예민해질 수 있는데, 환자를 위해 함께 책임을 지기 때문에 서로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일을 그렇게 많이 하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환자를 위한 것이라며 담담히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의료진 간의 갈등에 대해 어떻게 하면 갈등을 원활히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또한 본인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에 대해 별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서로 비난하지 않고, 조금만 더 희생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의학적인 부분 이외에도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신 김웅한 교수님께 크나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 또한, 같이 가서 봉사해주신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님들과 부천 세종병원 교수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체외순환사 선생님들께 존경한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거기에 더해 해당 프로그램 및 연구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움과 큰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항상 학생들과 의료진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신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연구원 김소정 선생님, 박재영 선생님, 김은실 선생님께 감사하다. 여러 의료진과 보호자 인터뷰 및 이를 정리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불평불만 없이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임해준 동기들인 윤의정 학우, 윤한나 학우와 본인 일이 아닌 데도 같이 열심히 인터뷰를 해준 Miami 의과대학 재학생이자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인턴이었던 Blair Chang에게도 함께 해서 즐거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김웅한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아프리카 격언이다. 내가 언제 다시 네팔이라는 나라를 갈 지 모르겠지만, 이번 1주일의 기억은 평생 남아 내가 의료를 행할 때 기억 속에 자리 잡아 있을 것이다. 네팔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환자를 위해 나아가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협력하며, 주변의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돕고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의료, 더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धन्यवाद(dhanyavaad)* Nepal!
*धन्यवाद: 네팔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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