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같은 봄은 없었다. 매년 삶이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연이라는 예술가는 얼어붙었던 땅 위에 따사로운 봄 햇살과 나른한 봄바람으로 겨울잠을 자고 있던 봄의 전령들을 깨운다. 깨어난 봄의 전령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누군가는 푸른 잎사귀로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꽃잎들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한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에도 어김없이 봄의 전령들은 부드러운 봄기운을 전한다. 이번 호에서는 스치고 지나가기 일쑤였던 캠퍼스 내 꽃과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라일락
‘수수꽃다리’ 라고도 불리는 라일락(Lilac)은 4월에서 5월경에 개화하는 작고 아름다운 꽃이다. 꽃 하나하나는 작지만, 대롱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잎들이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무리로 자라 마치 작은 꽃밭을 연상하게 한다. 라일락은 그 이름처럼이나 기분 좋은 향을 품고 있다. 그래서 향수나 섬유유연제의 달콤한 향으로 친숙한 꽃이다.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영국의 오래된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라일락은 가슴 아픈 비극을 담고 있다. 영국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가씨는 한 귀족 남자를 만나 서로 깊이 사랑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 귀족 남자가 아가씨와 잠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변심을 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아가씨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매일매일을 슬픔과 괴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가족과 고향 친구들은 그녀의 슬픈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무덤 위에 보라색 라일락 꽃을 올려 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녀의 무덤 위에 놓였던 보라색 꽃잎들은 모두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첫사랑(보라색 라일락의 꽃말)이 마음 한 켠의 아름다웠던 추억(하얀색 라일락의 꽃말)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에서 라일락은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과 신비로운 상황을 그릴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옛날 한 고을에 서로 친한 두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장원 급제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상경하였고 다른 한 친구는 깊은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산에서 수양을 시작하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른 친구는 산으로 들어간 고향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 친구가 있다는 산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하룻밤을 꼬박 산 속을 헤매다 지칠 무렵 그의 코끝에 달콤한 라일락 향기가 감돌았다. 뒤를 돌아보자 도를 깨달아 신선이 된 친구가 서 있었다. 그 둘은 너무 반가워 밤새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밝고 벼슬길에 오른 친구는 신선이 된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한 노인이 문 앞에서 말하기를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수십 년 전에 신선이 된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며 집을 나선 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아 생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신선이 된 친구와 만나 나눈 하룻밤이 지상세계에서는 수십 년이 지난 것이었다.
꽃과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라일락의 꽃잎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함춘회관에서 행정관으로 들어서서 학생관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라일락 나무는 비록 크고 멋진 나무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것 같다.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서울대학교의 교목이자, 우리나라 마을들의 정자나무 혹은 신목이다. 느티나무의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된 질서를, 단정한 잎들은 예의를 상징한다. 또한, 느티나무의 잎은 먼지를 타지 않고 벌레가 적은 깨끗한 성질 때문에 귀인의 상징으로 쓰였다.
느티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보고 있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 새롭고 싱그러운 계절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싱그러움은 비단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서울대학교가 느티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이유도 모든 지식을 수용하는 이 포용력을 닮기 위해서라고 한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가지들을 바라보면 하늘을 가릴 만큼 풍성한 잎사귀들이 그 푸르름을 과시한다. 또한 나무의 가지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여 살고, 마을 사람들은 넓고 깊은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느티나무라고 한들 묘목이었을 무렵부터 그 광활함과 푸르름을 가졌겠는가?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비와 바람을 견뎌낸 후에야 단단한 줄기와 풍요로운 가지와 잎사귀를 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느티나무는 여유를 상징한다. 크게 자란 느티나무가 그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를 전한다면, 어린 묘목 느티나무는 시간이 흐른다면 지금의 작은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커다란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위로로서의 여유를 전한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교정 곳곳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며 그 강인함과 풍요로움을 닮아야겠다는 마음이 자연히 들었다. 자연은 때로는 그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때로는 그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사색과 교훈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벚나무
봄을 이야기할 때 벚꽃을 말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 낭만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모습에 이따금 넋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연건학생생활관 앞에도 커다란 벚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벚꽃이 만발할 때에는 학생뿐 아니라 병원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된다. 벚꽃은 그 자체로 봄의 기운을 전해주는 전령이자,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도 산뜻한 봄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벚꽃과 관련한 재미있는 우리나라 설화가 있어 이번 기회에 전하고자 한다.
어느 먼 옛날, 제주도에 효성이 지극한 만수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한라산 기슭에서 나무를 하며 어려운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홀어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감사하며 사는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고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던 중에 한 스님에게 한 가지 방법을 듣게 된다. 그것은 백록담 주변에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찾아 그 뿔을 베어다 어머니께 달여 먹이면 어머니의 병이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슴의 뿔을 베어 산기슭을 내려오는 동안 누가 부르더라도 절대 대답하지 말고 뛰어내려오라고 스님이 당부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만수는 백록담에서 사슴이 나타나기를 조용히 기다리다가 사슴이 풀을 뜯으려는 찰나 뒤에서 덮쳤다. 한참을 사슴과 실랑이를 벌이다 사슴의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뚝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만수는 부러진 사슴의 뿔을 들고 냅다 집으로 달렸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뒤를 돌아볼 뻔하였지만,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스님의 이야기처럼 사슴의 뿔을 달여 어머니께 먹이자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 낫게 되었다. 만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자신을 부른 그 여인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백록담으로 다시 올라가자 사슴 무리 사이에 선녀처럼 앉아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 대신 사슴을 지키고 있다는 그 여인은 만수의 사정을 듣고 자신이 대신하여 아버지께 사정을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만수는 그 여인의 고운 마음씨에 반해 청혼하였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보니 아내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무를 하기 위해 한라산에 오르던 중에 아내를 처음 만난 곳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벚나무의 뿌리에 누워 잠에 들었다. 그때 꿈 속에서 아내가 나타났다. 아내는 본디 자신은 한라산 산신령의 외동딸인데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편인 만수를 숨겨주고 혼인한 것으로 아버지의 노를 사서 벚나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꿈에서 깬 만수는 며칠이고 그 나무 곁을 지켰지만, 아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떠난 아내처럼 벚꽃은 지고 말았다.
따사로운 봄의 전령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실어 보낸다. 소개한 설화들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학생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다짐을 되새기기도 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혼자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빛을 내는 자연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꽃이 아닌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바쁜 시간 속 우연히 길가의 꽃이 눈에 들어온다면 봄바람처럼 따뜻한 미소 한 번 건넬 수 있는 여유를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4월호를 봄의 전령에 실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