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이 흰 가운을 입으며

아직은 쌀쌀한 2월의 볕 좋은 오후, 정장 차림에 흰 가운만을 걸친 이들이 추위도 잊은 채 삼삼오오 행정관 앞에 모여 웃고 떠들며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준다. 본과 3학년 학생들의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 날이다. 이제 이 147명의 학생은 선배 의사이신 교수님들이 걸쳐 주신 가운을 입고 학생의사가 되어 실제 환자를 만나러 간다. 설레고 벅차며 조금은 두렵기도 한 오늘, 처음으로 흰 가운을 입게 된 학생들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김지윤(의학과 3학년)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에 소감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며칠간 제 소감이 무엇일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입학 당시부터 지금까지 4년간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행복합니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뭉클하고, 무엇보다 설렙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수험생 시절의 제가 간절히 바라던 꿈이자 장래 희망입니다. 어릴 적 샤워하면서나 하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일 뿐이었던 흰 가운을 입은 제 모습이, 오늘로써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북받치던 감사함과 설렘을 동기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을 입고 실습을 하는 본과 3, 4학년 2년이 또 다른 간절한 꿈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긴장되고 기대됩니다. 여러분 모두 올해도 화이팅입니다!





신아라(의학과 3학년)

안녕하세요, 본과 3학년 신아라입니다.

의대 생활을 되돌아보니 제가 올해 5년째 총무를 맡았더라고요.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햇수로 세어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직 이 흰 가운을 입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확답을 내릴 수 없지만, 그 자격에 걸맞은 성품을 길러내는 시간이 본3 학생실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떠올리기만 했던 환자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지난 2년간 각 블록 때 배운 내용을 임상에 적용해서 넓은 분야의 지식을 더욱더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의 맛보기를 지난 2주간 임상추론 CBL 시간에 경험했는데,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시행해야 하는 검사, 정보를 통합해 내릴 수 있는 진단, 치료까지 도출해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뿐더러, 환자를 진료할 때는 문제에 주어진 정보마저 문진과 신체검진으로 알아내야 한다는 점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화요일 CBL 시간에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와닿아서 그 말씀을 나누면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뭔지 고민해 보고, 모르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자.’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까먹기 바빴던 저희에게 어떤 자세로 학생실습에 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자세로 계속 사고하고 공부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임상의 모호함이 즐거움과 묘미로 느껴지는 날들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 과정을 여러분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유승준(의학과 3학년)

동기들을 처음 만나고, 관악의 여러 교양 수업과 예과 전공 수업을 들었던 날을 지나, 힘들었던 본과 1,2 학년을 거쳐 오늘 화이트 코트를 입게 되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때론 즐거워하고 때론 괴로워하며 드디어 병원이라는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고 애쓴 저에게 정말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저는 오늘 이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를 준비하면서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과 스파이더맨의 슈트를 떠올렸습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은 스파이더맨이 오롯이 거미줄만으로 빠르게 달리던 전철의 속도를 늦춰, 빌런의 만행으로 강 속으로 떨어지려던 것을 막았던 장면이었습니다. 후배 스파이더맨들에 비해 갖춘 장비도, 수트의 기능도 볼품없었지만 그의 슈트를 빛나게 하는 것은 슈트 자체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의 힘과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스파이더맨은, 흰 티에 청바지만 입고도 그 일을 해냈을 것입니다.

오늘 양어깨에 흰 가운을 걸치며, 이 무게를 느껴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 그의 말처럼, 흰 가운에 걸맞은 유능하고 똑똑한 의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유니폼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백의 고혈압’을 일으킬 만큼 누군가에게는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이 옷을 잠시 벗고, 환자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저 스스로가 병에 걸릴 수 있고, 때론 여러 상황 속에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자리에서, 서울에 올라가는 저를 위해 부산역 앞에서 저희 아버지께서 해 주셨던 기도를 되새깁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아들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고칠 수 있는 의사가 되게 해주세요” 인턴, 레지던트도 잘 모르고 허리가 아프면 여전히 한의원에 가시는 저희 아버지셨지만, 저를 길러 주신 분께서는 의학의 본질을 꿰뚫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문장 뒤에 제가 예과, 본과를 지내며 깨달았고 앞으로 제 삶을 지탱할 문장을 덧붙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 몸과 마음, 영혼을 치유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힘 있게 나아가겠습니다.





정민서(의학과 3학년)

안녕하세요, 현재 대표단 학습부장이자 사진반 학술부장을 맡고 있는 정민서입니다.

눈이 펑펑 오던 날 교육관에서 면접을 본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학생의사가 되어 병원 실습을 돌게 된다고 하니 진부한 표현이지만 역시 시간이 참 짧은 것 같습니다.

지난 4년, 그러니까 예과 2년과 본과 2년은 이전부터 궁금했던 인체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여러 가지 질병들을 공부하고, 심지어 의학연구에도 직접 참여해 보는 기회까지 정말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때로는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의대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한 덕분이었던 것 같아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은 제가 이제 교실을 벗어나 환자를 마주하고 실습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니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멋진 친구들과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함께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다 같이 힘내서 멋진 의사가 됩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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