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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고사, 3학년의 마지막 관문을 넘다

< 좌부터 안성호, 유태웅, 박민재, 강현규 학생(의학과 3학년) >

의학과 3학년은 지난 2년간 쌓은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병원에 첫 발을 내딛는 학년이다. 학생들은 4개의 조로 나뉘며, 1년의 4분기 중 내과를 몇 번째로 도는지에 따라 1턴, 2턴, 3턴, 4턴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1턴은 내과 - 산부인과/소아과 - 외과/응급의학과/정형외과 - 정신과/신경과/영상의학과 순서로 실습을 돈다. 환자 면담, 케이스 발표, 시술 참관, 그 모든 과정이 처음이기에 실습은 늘 두려움의 연속이지만, 사실 3학년 학생들이 진심으로 피하고 싶어하는 일정은 따로 있다. 바로 연말고사다. 1년 동안 실습한 모든 과목, 약 42학점의 최종 시험이 실습 다음 년도 1월 첫째 주에 이틀간 이루어진다. 연초에 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도대체 왜 이름이 연말고사인지 모두들 의문을 가지지만, 그걸 따져 보기에는 당장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 올해 1월 2일부터 3일까지, 지옥의 연말고사를 무사히 버텨낸 3학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보았다.



1턴 강현규 학생

골학 때 선배님들께서 하신 얘기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본과 3학년 때 40학점 넘는 시험을 이틀만에 친다” 당시 예과를 막 마치고 골학의 엄청난 공부량에 압도된 나는 그에 대한 현실감은 전혀 없이 ‘에이 그런 시험이 어디 있어~ 겁주려고 하는 말이겠지’ 하고 애써 부정했다.

결국 3학년이 되었고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첫 번째 내과 실습 전부터 연말고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임상실습을 돌며 2학년 때까지의 공부와 시험으로 칠해졌던 일상은 크게 변했고, 우선 실습에 집중하며 생각을 돌렸다. 그러다 외과 실습을 마치니 9~10월이었고 어떻게든 눈 돌리고 있던 연말고사라는 커다란 산은 다시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몇 달째 책장에서 나오지 않고 있던 내과 KMLE 책을 주섬주섬 꺼내어 봤지만 당연히 기억 나는 건 없었다. 그냥 막막했고 바로 실감했다. 다 볼 순 없다고.

공부 방식은 유지하더라도, 범위를 줄여야 했다.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강의록+교과서+KMLE 모두 보는 건 시간과 능력상 불가능했고, 교과서가 요약되어 있는 KMLE 개념서와 기출문제 위주로 보기로 가닥을 잡았다. 요약되어 있다 해도 내외산소 KMLE 개념서의 분량은 내과 6권+외과 2권+산부인과 2권+소아과 3권이다. 쪽수는 평균 400~500쪽으로 빠르게 여러 번 훑는 내 공부 스타일로 1권 1회에 10~12시간이 소요되었다. 실습을 돌면서 틈틈이 읽어야 했기에 이틀에 한 권 정도 훑게끔 계획을 세웠다. 기출문제 포함 ‘내과 2주, 산부-소아 2주, 외과 1주’ 루틴을 최소 2번 돌리고 나머지 과목들은 강의록 위주로 공부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고 보니 더 착잡해졌다. 아는 게 생길지, 제대로 시험문제를 풀 수나 있을지 아뜩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계획대로 일단 밀어야지. 처음 한 번 훑을 때는 정말 머리에 들어오는 내용이 없었는데 다행히 2번째가 되니 아는 게 조금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어찌 계획했던 공부를 마지막 영상의학과 실습 주까지 했고, 연말고사 직전 일주일이 되었다. 갑자기 각 실습 돌 때만 공부했던 강의록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 안 보니 괜히 찝찝하고 몇 달 전에나 본 강의록 열어서 쭉쭉 내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KMLE 개념서에 있는 기본 개념들도 다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마지막 일주일도 빠르게 기존 공부를 반복하며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과 4일, 산부-소아-외과 4일, 정형-응급 1일, 내과 마무리-신경-영상 1일, 1일차 시험 후 정신과’ 이렇게 계획했다. 변한 건 수면 시간 1~2시간 늦춰진 정도였는데,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하루는 새벽에 멘탈이 나간 채로 게임에 접속해서 뽑기에 현금 40만 원을 쓰기도 했다. 아까워라…

연말고사를 치는 과정 자체도 몹시 힘들었다. 하루 종일 수 백 문제의 의대 시험을 집중해서 치러야 하니, 시간이 갈수록 기력과 집중력은 바닥을 향해 갔다. 시험 칠 때 졸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마지막 시험인 외과 때는 한 문제 풀 때마다 졸고 있었다.

시험 끝나는 그 순간까지 뭐 하나 안 힘든 게 없었지만, 동기들, 친구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끝나고 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2학년 때 매 블록 마친 느낌을 한꺼번에 받았다. 미뤄뒀던 게임들 다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갔다 왔다. 하지만 방학은 너무 짧다. 시험 문제, 결과 등 더 할 말은 많지만 길이 상 이만 줄이겠다. 임상실습, 연말 모두 파이팅하길!



2턴 안성호 학생

학기 초부터, 2턴에 배정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에 비교적 일정이 여유로울 때에도 시험이 마음에 걸려 편히 쉬지 못하고 미리미리 공부했던 것 같다 (참고로, 2턴은 체력적으로 힘든 외과계 실습이 1년 중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어 모든 턴 중에서 연말고사 준비가 가장 힘들다고 평가받는다). 3학년 실습 돌면서 해당 과를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연말을 공부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바쁜 연말 기간에 어떻게 그게 가능할지 상상이 안됐었다.

2턴의 경우 1학기에 정신의학과, 신경과, 영상의학과, 내과에서 실습을 하는데, 연말고사는 주로 이 시기에 만들어 놓은 정리본을 위주로 공부하였다. 특히 정리본을 미리 잘 만들어 놓는게 중요했는데, 연말고사 기간이 되면 옛날 강의록들을 다 찾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막막한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모든 범위를 완벽히 공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넓게 할 수 있는 데까지 보려고 해서 멘탈은 괜찮았다. 국시 → 연말 범위 → 강의록 → 정리본 위주로 보고 시간이 더 된다면 KMLE 개념서의 문제만이라도 더 푸는 것 추천한다.

이렇게 미리 준비를 했지만… 연말고사 전 마지막 일주일, 머리 속에 지식을 아무리 넣으려고 해도, 예컨대 머리에 들어가야할 양은 1000이라면, 머리는 100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심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시험을 보기 전에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용을 다 알아야 할 것 같지만, 막상 시험을 치고 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다음 연말고사를 치르게 될 본과 3학년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습 성적은 연말고사 시험 한 방 아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보면 느끼겠지만 생각보다 성적 분포가 크지 않기에, 실습도 상당히 중요하다. 너무 연말시험을 걱정하지 말고 실습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연말을 대비하고 싶다면 미리 정리본을 만들고, 남는 시간에는 실습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턴이어도 미리미리 공부하면 성적은 다른 턴과 큰 차이가 없고 본인을 위한 공부이므로 일찍부터 준비해도 나쁠 것 없는 것 같다. 1학기 틈 날 때 많이많이 노세요~



3턴 박민재 학생

의학과 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과정이 있고는 했다. 여기에는 개인마다 이견이 존재하나, 3학년의 통과의례를 묻는다면 연말고사로 쉬이 의견이 합치될 것이다. 그만큼 이전부터 연말고사에 대해 들어본 바가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 중 하나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화된 추억이었다. 작년에 필자는 연말고사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수없이 많이 치러지는 다른 의학과의 시험에서는 일종의 시행착오를 거칠 겨를이 있었으나 단 한 차례, 그것도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시행되는 연말고사의 특성이 마음에 은근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후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해석을 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입에서 입을 거치며 과장되고 와전되는 일이 많아 단순한 시험이 아닌 마치 철인을 뽑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연말고사가 끝난 지금 생각해 보건대,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천차만별인 개개인의 영웅담을 귀기울여 듣기보다는 자신의 방향성과 속도를 유지하는, 이른바 ‘꺾이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많은 도움은 되지만 거기에서 오히려 조바심이 느껴지고 다급해질 때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만 않다면,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면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시험이 다가오는 겨울에는 학습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예상하였던 것보다 충분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이때 머릿속에 우겨 넣은 지식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휘발성이 대단하여 때로는 단지 시험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할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연말고사의 시험범위는 이전 시험들과 다르게 단순히 강의자료의 표와 글자를 외우는 것을 뛰어넘어 지난 3년간 학습해온 방대한 지식을 하나의 흐름에서 엮어내는 능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물론 기본적인 학습이 제일 중요하나, 그 외에 필자는 일 년간 실습을 돌며 다양한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당시에는 소 귀에 경읽기만 같았던 각종 컨퍼런스를 참관하며 강의를 통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먼 훗날 2022년을 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을 것은 실습에서 얻은 경험과 그때의 느낌이지 시험을 위해 학습한 내용은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이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이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짧은 글을 마친다.



4턴 유태웅 학생

의학과 3학년에 진학하자 선배들로부터 4턴은 연말고사 준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어서 연말고사 기간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의학과 1학년과 2학년 시간을 보내며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많이 내려놓았고, 연말고사 역시 열심히 실습하고 열심히 시험 준비하면 못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두에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실제로 연말고사 기간이 되자 나의 무지함에 매일 놀라웠다.

1학기 초반에 산부인과와 소아과 실습을 하였다. 실습 초반이다 보니 정리본을 만드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습 기간에는 환자 증례발표 준비와 실습 시험 준비에만 집중하였다. 그런데 막상 연말고사 준비 기간이 되니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이나 정리본이 없지 않는가? 순간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물론 1학기에 열심히 실습을 했다고 해서 모든 지식이 기억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논리와 순서를 정리하였다면 연말고사 기간에는 그 틀에 구체적인 지식을 채워 넣으면 된다. 마치 실습기간에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만들고 연말고사 기간에 최대한 많은 잎을 채워 넣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2과목이나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부담감이 어떠했겠는가? 고육지책이라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정리본을 공유해 달라고 했고, 선뜻 건네 준 정리본으로 공부해보니 다행스럽게도 실습 기간의 기억이 떠오르며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실습 경험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모든 과목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모든 실습 중에 만난 환자가 새로웠고, 배웠던 질병과 치료방법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은 정신의학과라고 말하고 싶다. 의학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신의학과만큼 이 구분이 어려운 것이 없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다른 분과에서 만난 환자들이 ‘아프다’라는 느낌을 주었을 때 정신의학과에서 만난 환자들은 ‘다르다’라는 인상을 주었다. 실습뿐 아니라 공부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도 인상 깊었다. 실습 기간 중에 치르는 실습 시험이 DSM-5라는 진단기준을 주관식으로 적어야 하는 문제가 많아 각 질병에 대한 진단 기준을 외우고 각각의 치료방법을 공부했는데 이때 정리한 지식이 무척 체계적이었고 기억이 오래갔다. 실제로 연말고사를 준비할 때에도 정리본을 보자 잊었던 기억들이 금방 새록새록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마디를 남기자면, 의학과 3학년은 지난 의과대학 기간과는 또 다른 의미로 새롭고 귀한 경험의 시간이다. 연말고사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는 없지만 오직 시험 때문에 환자를 처음 만나는 순간의 감동에 소홀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습 기간 중 한 교수님께서 내게 “환자를 통해 배워라, 책 보고 공부한 지식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실제 환자를 통해 깊이 고민하고 정리한 지식은 절대 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로 시험공부를 하는 내내 내가 만났던 환자에 대한 지식은 잊어지지 않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 환자가 내게 호소한 증상이 그 질병의 주증상이었고, 그 환자의 lab 검사 소견이 그 질병의 진단 기준이었다. 연말고사 기간 동안에도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미리 준비한 정리본과 환자에 대한 impression을 가지고 다가갔으면 좋겠다.



“만약 가능하다면, 예과 때로 돌아가고 싶어?”는 의대생들에게 하는 단골 질문 중 하나이다. 연말고사가 끝난 후 3학년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연말고사가 힘들어서라도 못 돌아가겠다는 대답이 다수였다. 그만큼 고생했던 시험이지만, 끝내고 나니 성취감과 뿌듯함은 다른 시험에 비해서 배는 컸던 것 같다. 끝으로, 시험을 출제하고 시험 감독을 하신 교수님들, 1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실습생들을 도와준 전공의 선생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험 치느라 고생한 3학년 학생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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