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동정]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서평

※ 출처 : 청년의사(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2447

서울의대 의예과 2학년 김세환 학생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다수의 노동안전보건단체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전국의 현장 노동자들이 그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움직이는 단체이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직간접적인 연을 맺고 활동하는 의료인, 연구자, 활동가들을 일컫는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 기록물이다. 

이 책이 필자의 손에 닿은 까닭은 최근 평택 부두 작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23세 청년 이선호의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 등록금을 자신의 손으로 마련하려던 청년의 꿈은 부두 하청업체에서 예고 없이 지시한 컨테이너 내부 청소를 하다 갑자기 떨어진 300kg의 쇳덩어리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안타까운 이와 같은 소식이 처음이 아닌 까닭에 필자처럼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산업재해 및 직업병 관련 소식을 의식했던 독자라면 한 번쯤 접해보아야 할 의미 있는 책으로 여겨진다.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접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웠던 일터의 상황은 다양한 사례들로 가득히 이어진 이 책을 통해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한편 기존에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던 독자들에게는 외면하고 있었던 산업재해 및 직업병을 유발하는 노동 현장을 들추어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과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쳐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이어져왔으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지듯 이 책의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각각의 노동 현장은 우리에게 아직 머나먼 개선의 길이 남아있음을 알려준다. 

필자는 직업병의 현장을 파헤친 본 서적을 통해 직업인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질문으로 다가온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직업인들의 삶의 현장을 그 내부로 들어가 살핀 저자들에게 좀 더 다가갈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서 일하다가 이렇게 되었니?”. 1988년 15세의 소년 문송면은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삶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야 이 질문을 한 의사에게서 받게 된다. 수은을 온도계에 채우는 일을 하는 공장 직원이었던 소년은 이 간단한 질문을 못 받아 자신의 병의 원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을 뻔했다. ‘문송면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례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직업병을 사회 문제로 삼는 불씨가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본격적인 산재추방, 조직적인 노동자 건강 운동의 시발점이 된 점은 그나마 위안되는 부분이다. 본 책은 만일 소년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 의사가 진작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에게 되물으며, 이 책이 이제 그러한 질문을 하는 의사들이 모여 쓰였음을 알려준다. 

‘지금 같은 시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싶지만 여전히 ‘사람보다 우선하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노동 현장의 냉혹함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들은 노동 현장의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눈을 속여 가며 더 취약한 노동자에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책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적나라한 직업병의 현장은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곳으로 다가온다.

이에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자”가 여전히 현장의 절박한 구호로 남아있음을 인지한 의사들이 위태로운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굴뚝 위에 섰고 마냥 슬퍼하고 좌절하지만은 않고 스스로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되어야 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대표적으로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인 저자가 직접 추적연구하여 석면 관련 문제를 파헤친 제일 화학 공장 사례는 충격적이다. 해당 공장에 근무한 적이 있는 수십 명의 노동자가 긴 세월을 거치며 폐 질환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결과를 확인한 순간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그들에겐 그 폐 질환이 본인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줄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석면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가 별로 없던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이를 모르고 있었을 뿐임을 알려준다. 

다른 사례로 가장 극한 직업 중의 하나인 탄광 노동자들의 극악한 노동환경과 직업병에 대한 안내를 맡은 저자의 글은 비극의 수위를 넘어선다. 태백중앙병원을 찾은 저자는 치료법도 없는 진폐증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진폐증은 고농도 분진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 노출 직후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노출 후 수년에 걸쳐 조직 반응이 일어나 그 결과로 시간이 지나 발병되는 치명적 질환이다. 이러한 사례는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과 건강이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쉽게 인식하게 한다. 

책의 말미에 서술된 굴뚝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에 대한 언급은 글의 제목과 이어져 보다 선명한 결과를 바라는 독자에겐 계속적으로 관심을 이어갈 의지를 준다. 저자는 기업은 개인과 사회 사이 어디쯤에서 자본의 운동을 가속할 뿐임을 말한다. 하지만 건강 문제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회복하고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라는 굴뚝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노동자의 건강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탐색해야 함을 우리에게 알린다. 예시로 19세기 영국 하층민 소년들이 굴뚝청소부가 되어 살아갔던 시기를 언급한다. 이 시기 의사들과 사회개혁가들이 암에 걸린 어린 노동자의 신체에 새겨진 흔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살핀 것이 그것이다. 당시 어린 노동자들의 몸에 드러난 흔적에 주목했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낼 수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 직업성 암에 대한 이해를 가져왔다. 그들이 급속히 돌아가던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소음으로만 치부되던 노동자들의 비명을 하나의 명료한 목소리로 번역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는 점은 공감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나 직업병을 산업의 발전에 따른 예외적인 부작용으로 치부하고자 하지만 직업병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책을 통해 현재의 산업구조가 현장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병들게 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구조이기에 이러한 형태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의 노력의 필요성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는 의사가 환자에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현실에선 질문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간단한 질문이 없어 몇 개월 동안 병의 원인을 모르고 죽어가기도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질병의 정확한 진단뿐 아니라 원인을 알고 치료하는데 환자의 현재 하는 일이나 전에 했던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통해 사람의 건강과 삶은 그의 일과 일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다만 이 한 권의 책으로 각계각층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직업병을 모두 담을 수 없었던 점과 각 직군 사람들의 고충과 나름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분명한 것은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직업병의 원인이 되는 현장은 지금도 존재하기에 우리가 함께 그 굴뚝 위에 올라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언젠가 그 굴뚝 위에 올랐을 때 따뜻한 시선으로 해야 할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의사로 성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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