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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의학연구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사항/의견은 아래 메일을 통하여 비전추진단에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임상교수는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입니다.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후속 세대이고, 서울의대 후속 세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임상교수님들이십니다. 김정은 학장님 이하 현 학장단에서는 비전추진단을 통해, 병원 임상교수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대학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비전추진단은 카카오톡 채널 [新서임당: 새로운 울의대-상교수 소통마]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에서의 소식을 임상교수님들께 전달하고, snuh@snu.ac.kr 메일 계정을 통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와 질문을 받을 계획입니다.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서울의대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추진단 올림

생성형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의학연구


전기현 교수
전기현 교수(분당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의학연구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도구가 있습니다. 이미 의료의 영역에서 AI는 진단 보조, 영상 판독, 신약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최근 주목받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연구실의 풍경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현재 연구실에서 실시간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의학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전업 연구자들과 달리, 임상 현장에서 매일 환자의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결정의 순간에 서 있는 의사들에게는 연구에 몰두할 충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반면, 의학 연구는 방대한 문헌 검토부터 데이터 정리, 복잡한 통계 분석, 그리고 논문 작성과 투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시간이 필요한 연구’와 ‘시간이 부족한 현실’ 사이의 괴리는 임상의가 연구를 지속하는 데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이 과정의 여러 구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ChatGPT 같은 언어 생성 모델은 논문 초안 작성, 문법 교정, 문헌 요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데이터로 어떤 분석을 하면 좋을까?”라는 막막함 앞에서, 생성형 AI는 분석 설계를 도와주고, 코드 예시를 제시하며, 결과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이전까지는 통계 전문가나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던 작업들이, 이제는 대화창 하나로 가능해진 셈입니다.

연구실에 찾아온 지적 동반자

의사들에게 통계는 늘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복잡한 분석을 수행하려면 고급 통계 이론뿐 아니라 R이나 SPSS, SAS 같은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 필요한데, 바쁜 임상 일정 속에서 이를 배우고 익힐 시간은 좀처럼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성형 AI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비전문가에게도 문을 연다는 점입니다. 이제 통계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복잡한 코드를 작성하지 못해도, 누구나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연구자가 “이 두 그룹을 Propensity matching을 하여 분석해줘”라고 입력하면, AI는 분석 방법을 제안하고, 필요한 코드를 생성해 주며, 결과 해석까지 도와줍니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섭니다. 연구자의 아이디어가 기술적 제약 없이 빠르게 실행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이 도출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다시 말해, AI는 연구자가 통계와 프로그래밍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도록 도와주는 통역사이자 조력자가 되어 줍니다.

생성형 AI는 단지 분석이나 작성 도구를 넘어,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데에 특화된 도구입니다. 예컨대, ChatGPT에게 “이 연구 주제를 어떻게 논문화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면, 논문의 전체 구조, 섹션 구성, 필요 자료까지 제안해 줍니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 정리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가 갖고 있는 개념적 구상을 구체적인 연구 계획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쪼개어 단계별로 서술할지, 어떤 논리의 흐름이 독자를 설득하는지에 대한 감각도 반복적인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습니다. 또한, 특히 비영어권 연구자들에게는 논문 영작 과정에서 큰 장벽이 되는 언어 문제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초안 작성부터 문법 교정, 어휘 선택, 논문 투고를 위한 커버레터 작성까지, 생성형 AI는 일관된 문체 유지와 학술적 표현을 다듬고 어휘를 선택하는 데 있어 세심하고 일관된 도움을 줍니다. 과거에는 연구 아이디어보다 영어 표현 능력 때문에 논문 작성이 지체되었던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AI가 그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구체적인 계획하에 분석하는 ‘Deep Research’ 기능이나, 특정 목적에 최적화된 ‘Custom GPT’ 등 맞춤형 도구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분석의 일관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며, 연구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반복 가능한 분석 구조를 갖출 수 있게 함으로써 연구의 전반적인 흐름과 완성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단순한 보조도구가 아니라, 연구 과정을 동반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의학연구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

물론 생성형 AI의 도입이 마냥 장밋빛은 아닙니다. AI가 생성한 내용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연구의 질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특히 숫자와 통계가 포함된 분석 결과의 경우, 잘못된 입력값이나 문맥 해석 오류로 인해 부정확한 해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그대로 논문에 반영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 저자 문제, 표절 가능성, 데이터 보안 등의 윤리적 이슈도 함께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텍스트가 기존 자료와 유사할 경우 표절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민감한 의료 데이터가 모델 학습에 포함될 경우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존재합니다.

이와 함께, 미래의 연구자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단지 AI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이 중요해졌습니다. AI는 언제나 정확한 답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안과 조언을 주는 도구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교육은 기술 중심이 아니라, 해석과 비판적 사고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AI와 인간 연구자 간의 협업에서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이 가져야 하며, 그 중심에는 사고력과 윤리의식, 문제 해결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전공의 시절 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님께서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한 문장 한 문장 교정해 주시고, 표와 그림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cover letter와 rebuttal letter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정성스러운 지도를 통해 글쓰기의 논리와 연구자의 태도를 배웠고, 그 가르침은 지금도 저의 논문 작성과 후배들의 논문 지도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대일 지도를 통해 축적된 연구 감각은 단순히 결과물을 내는 능력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AI가 생성해 낸 결과물만을 바탕으로 논문을 완성한다면, 과연 진정한 연구 역량이 길러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처럼, 생성형 AI의 도입은 기존의 연구 및 교육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는 곧 의료 교육과 연구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암기하거나 기술을 습득하는 단계를 넘어서, 생성형 AI와의 협업 속에서 인간 연구자의 사고력, 윤리의식, 문제 해결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향후 연구자 교육 과정에서는 AI 리터러시(AI literacy)를 필수 요소로 포함시켜야 하며, 이를 통해 기술 의존을 넘어서 기술과 함께 성장하는 사고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생성형 AI는 강력한 조력자이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 연구자의 자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성형 AI와의 협업은 ‘맹신’이 아닌 ‘비판적 수용’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인간 연구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심에 있으며, AI는 그 역할을 보완해 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데에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흐름을 잡고, 문장을 다듬는 일련의 과정에서 ChatGPT는 훌륭한 동료였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구조를 결정하고, 논지를 설계하고, 전달 방식을 고민한 것은 철저히 인간 연구자의 몫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연구의 새로운 시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은 더 이상 침묵 속의 고독한 공간이 아닙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말 많은 동료와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데이터와 씨름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대화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AI에게 ‘질문하는 힘’. 그리고 그 대답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생성형 AI와 함께하는 의학연구는, 결국 사람과 기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지적 공동작업’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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