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추진단뉴스레터]

임상 밖의 세상에 대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사항/의견은 아래 메일을 통하여 비전추진단에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임상교수는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입니다.

서울의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후속 세대이고, 서울의대 후속 세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임상교수님들이십니다. 김정은 학장님 이하 현 학장단에서는 비전추진단을 통해, 병원 임상교수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대학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비전추진단은 카카오톡 채널 [新서임당: 새로운 울의대-상교수 소통마]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에서의 소식을 임상교수님들께 전달하고, snuh@snu.ac.kr 메일 계정을 통해 임상교수님들의 건의와 질문을 받을 계획입니다. 임상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서울의대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추진단 올림

임상 밖의 세상에 대해


노두현 (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노두현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비전추진단에 글을 의뢰 받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의료에 큰 장애가 발생하였습니다. 정부는 정책 강행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의료시스템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각자의 내면을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삶에 있어 가치관은 특히 이런 쉽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대의 집단 지성 그리고 집단의 건강한 가치관들이 이런 문제를 슬기롭게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 현안인 의대 증원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 신기술을 좋아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기술 집약시대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서 제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수학·과학을 좋아하고 기계 프로그래밍 등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컴퓨터를 7세 때 처음 접했는데 그 때는 제가 알파벳도 모르고 컴퓨터를 한다고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과학자를 꿈꾸며 살았었고 지금도 그 꿈을 갖고 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기계와 역학(mechanics)을 좋아해서 정형외과에 몸담게 되었고 전공의 과정을 거치며 여러 기술의 발전이 임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감명 깊게 느꼈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기술들이 존재하고 대다수 기술들은 인간 삶의 질 향상, 질병치료, 수명연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의 예를 들면 재료공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공관절 재질이 향상되었고, 설계 기술의 발전을 통해 디자인 개선, 맞춤형 수술 등의 개념이 발전하였습니다. 이런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어 최근 3-4년간의 발전이 지난 20년간의 발전과 맞먹는 정도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정형외과 슬관절 분야에서는 수술의 기본 원리가 바뀌고 있는데 이는 1. 로봇기술, 2.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의 발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비 수술 정확도가 향상되고 센서 기술이 발전하며 기존 시도가 어려웠던 새로운 개념의 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고, 빅데이터 인공지능 연구를 통해 개인별 차이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하고 이를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학회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과거에는 수술자의 수술 기법 비교 연구와 같은 의사 주도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로봇이 접목된 연구들에 조금 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아쉬운 것은 의료 기술 발전에 있어 의사의 역할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수술 기법과 같은 연구는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으나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들은 의사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기술 발전의 본질 자체가 병원보다는 실험실에서 그리고 실험실보다는 더욱 큰 기업 단위로 옮겨 가고 있고 이런 트렌드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거대언어모델(LLM)을 임상에 적용하는 연구들은 미국에서 Nuance 사, Microsoft 사, Epic 사와 함께 대규모로 진행되었고 제품 또한 출시되었습니다. 이런 연구 및 제품들은 앞서 수술의 원리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의료의 본질적 가치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의료 시스템이 더욱 고도화되고 분업화되는 세상에서 진료, 연구, 교육의 가치는 다시 고민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로봇 기술을 포함한 흔히 딥테크 기술이라고 하는 기술들은 발전 속도가 빨라 우리가 점차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되었을 때 의대 교수의 연구라는 가치 부분은 더욱 좁은 임상영역으로만 한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대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실험실 및 도전적 연구를 육성하고 많은 기업과의 상호작용을 늘리는 것이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생각으로 인공지능, 로봇연구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쓸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진료실 밖에서 많은 엔지니어, 연구자, 투자자, 정부기관들을 만나며 다양한 생각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훌륭한 인적자원, 인프라 등을 잘 활용하여 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면 서울대학교병원이 당면한 여러 위기들을 잘 해결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시기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졸고이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의 가치관과 나아갈 길을 돌아보고 여러 생각을 청취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생각되어 부족한 말씀 올립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잘 극복해내는 서울대학교병원 특유의 DNA를 믿고 있습니다. 선배님. 동료 그리고 후배 교수님들 모두 힘내시고 위기를 잘 이겨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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