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죽음을 기억하며

- 학생호스피스회 활동 후 소감문


김동현
(의학과 4학년)

초등학생 때 말기 암 환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어 수술도 안 되고 항암제도 듣지 않는 환자였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숨 쉬는 것도 점점 어려워하던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보름 정도 사경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운 환자의 모습에 슬퍼하다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도 나중에 큰 병에 걸리면 비슷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차가운 기계들에 둘러싸여서 외로이 숨을 거두기보다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곁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은데.

중학교 사회 시간 때 존엄사에 대해 배우면서 생각이 확고해졌다. 만약 모든 의학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여야지. 마침 비슷한 시기에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처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 이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수년간의 검토 이후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당시 대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주제로 소논문을 작성해보기도 했는데, 죽음이 가까운 환자가 입원하여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는 특수 시설인 ‘호스피스’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폭풍 같은 본과 1, 2학년 블록 수업이 모두 끝나고 3학년 병원 실습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을 즈음, 인간·사회·의료 수업 시간에 본원 혈액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께서 완화의료 및 임종의학에 대한 강의를 해 주셨다. 임종기, 완화의료 등 오랜만에 들어보는 용어에 다시금 존엄사와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강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대·간호대 학생호스피스회 회원을 새로 모집한다는 공지가 학년 채팅방에 올라왔다. 호스피스를 주제로 활동하는 학교 동아리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임종기 의료인 호스피스에 대해 학생들끼리 모여 공부를 하고, 병원에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한다는 동아리 홍보글에 매료되어 바로 동아리에 지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동아리 활동을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올해 초부터 전염 확산세가 줄어들면서 3년 만에 활동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동아리를 이끌던 선배가 졸업하게 되어 얼떨결에 1년간 동아리 의대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아직 한 번도 활동해본 적 없는 동아리의 대표가 되어 부담감이 앞섰지만, 이전 의대 대표님과 간호대 대표님, 그리고 예전부터 동아리 활동에 큰 도움을 주신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홍진의 간호사 선생님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덕분에 올 한 해 동아리 활동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호스피스회 활동은 크게 세미나 개최와 봉사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여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암병원에서 학생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는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소속의 많은 선생님들께서 참여해 주셨다. 센터장이신 김범석 교수님, 센터 유일의 전담의사이신 유신혜 교수님, 임상윤리팀의 최원호 간호사 선생님 및 완화의료팀의 홍진의 간호사 선생님께서 말기 암 환자의 돌봄, 그리고 임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윤리적 갈등 상황에 관해 강의해 주셨다. 실제로 말기 암 환자들을 대하고 치료하는 병원 선생님들께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어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환자에게 나쁜 소식 전하기, 환자 가족과의 관계 형성,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방법 등 의대생이나 간호대생이 평소에도 궁금해했을 법한 주제에 대해서도 한 번씩 짚고 넘어갔기 때문에 학생들의 몰입도가 굉장히 높았다.

가을부터는 병원 내 봉사활동이 허가되어, 매달 한 번씩 본원에서 암 환자 손 마사지나 시화 제작 등의 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손 마사지조차 받기 어려웠고, 보호자 역시 장기간의 환자 간병으로 많이 지쳐 보였다. 마지막 봉사 때 뵈었던 보호자는 말기 암 환자의 아내 분이셨는데, 병동의 간이형 침대에서 1주일 넘게 주무신 이후로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환자 손 마사지를 끝내고 남은 아로마 오일로 보호자의 허리 마사지까지 해드렸더니 시원하다며 굉장히 좋아하셨다. 환자는 주말까지만 우리 병원에 있고 그 다음 주부터는 다른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될 예정이었다. 서울 내 호스피스 병동이 많이 없어 걱정했는데 한 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보호자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호스피스 병동으로 보낼 때 어떠한 마음이 들지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래도 호스피스 병동에 가면 환자분께서 증상이 많이 나아지고 더 편안히 지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보호자 분께 힘주어 말씀드렸다.

2학기 첫 세미나 때 김범석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해 주신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교수님께 질문했다. “교수님께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말기 암 환자를 대할 때 많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병원실습 때 종양병동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도 항상 마음에 품었던 의문이었기에, 자연스레 교수님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교수님의 답변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왜 그들에게 해줄 게 없다고 생각하시죠?” 아파하는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고, 숨이 차서 괴롭고 불안할 때 증상을 낫게 해주고, 그마저도 안된다면 매일 한 두 번씩 병동에 들러서 오늘 기분이나 상태는 어떤지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는 그 어떤 치료보다 값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완치가 되지 않는 환자에게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을까?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 하더라도, 환자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도록 돌보는 방법은 수없이 많으며, 이러한 돌봄의 영역 역시 병원 내 의료진이 힘써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망각했다. 교수님께서 3학년 강의 때 여러 번 강조하신 cure(완치)와 care(돌봄)의 차이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이다.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인 격언이지만, 곧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여러 환자를 대하게 될 나 역시 이 문구를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은 수많은 질병의 병태생리와 진단 및 치료에 대해 학습한다. 즉 아픈 사람을 낫게 하고, 위중한 환자를 살리는 공부를 한다. 하지만 환자가 여러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이 되지 않고, 죽음이라는 필연을 향해 떠나갈 때 환자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배울 기회가 없다. 학생호스피스회 활동을 통해 이 부분을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었다. 죽음을 결과가 아닌 삶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환자가 원하지 않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도 의학적 방임도 아닌 최선의 치료 및 돌봄을 제공하고, 환자와 가족에게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윤리적 갈등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 그것이 호스피스회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 의료인으로서 항상 마음 속에 지니고자 하는 덕목이다. 1년 동안 많은 깨우침과 도움을 주신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의 여러 선생님들 및 동아리 회원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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