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동반자란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본 내용은 서울대학교 교수사회공헌단 뉴스레터 10월호에 실린 내용과 동일합니다.


“동반자란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려는 곳이 어디든 함께 갈 것이고 도울 것이다. 당신과 잠시 운명을 함께하겠다.’ 여기서 ‘잠시’란, 말 그대로 잠깐이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끝났다고 여길 때까지 그 일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 故 폴 파머

2009년부터 약 13년간 우즈베키스탄에 심장수술 역량강화 의료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교육자이자 동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노력에 대한 화답인 걸까, 한국정부의 노력의 결실로 우즈베키스탄국립어린이병원(이하 NCMC)을 2020년 10월 개원하였고 개원 이래 1천 건의 심장수술을 시행했다. 2022년에는 COVID-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상반기에 이미 500건의 심장수술을 시행하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세계적인 어린이심장병전문병원이 생긴 것이다.

너무나 기뻤다. 최첨단 의료기술이 중저소득국가에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서 시작되고 지속가능함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팩트였으니까.

2022년 6월 22일부터 10일간 ‘우즈베키스탄국립어린이병원 의료인력 역량강화사업’으로 현지를 방문했다. 해당 사업은 현지 중증질환 진료 핵심 의료진을 양성하며 지속적인 의료진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방문기간 동안 현지 의료진들과 함께 8명의 심장병 아이를 수술했다. 다들 각각의 마음 아픈 사연이 있지만, 이 중 세 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 한다.

6월 27일 월요일, 좌관상동맥폐동맥이상기시증이 있는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수술했다.

이 병은 신생아 30만 명 중 1명에서 나타나는 매우 희귀한 관상동맥의 선천성기형으로 대개 병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집에서 지내다가 돌연사하게 된다. 이 아이는 최근에 우연히 심장이 매우 커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병원을 방문하여 심장병을 진단하게 되었다. 현지 의료진들은 보다 안전하게 수술하고자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긴 기다림 끝에 10년 만에 태어난 보물과도 같은 아이가 언제 급사할지 모르는 병이라고 들었을 때 그 부모의 참담함을 어찌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현지 의료진들은 한국 의료진과 함께 수술을 진행했고, 무사히 수술을 마쳤으며 아이는 순조롭게 회복하였다.

“men sizga judayam minnatdorman.”(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즈베크어를 알지는 못하지만, 부모의 감사 인사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음에 닿기 때문이었을까.

같은 날, 심장 판막 질환이 있던 2살 아이도 수술을 받았다.

아이의 부모는 수술을 위해 키질테파(Qiziltepa)라는 도시에서 NCMC가 있는 타슈켄트까지, 차로 약 8시간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아이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인공판막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판막을 성형해서 다시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 생명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현지의료진과 한국의료진은 하나의 팀과 같았고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였다.

특히 이번 출장 기간 동안에는 생후 2주 된 환아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타슈켄트에서 남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베코보드(Bekobod)라는 소도시에서 심한 대동맥 협착으로 급속하게 상태가 나빠지고 있던 신생아가 NCMC로 응급 이송되었다. 출생 후 저절로 막히게 되는 동맥관이 막히면 이 아이는 사망하기 때문에 현지 의료진과 함께 응급 수술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급박한 사투 끝에 생후 2주 된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의료진도 부모님도 간절한 시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취약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어려운 심장병을 진단하고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특히 응급한 상황 속에서 인공호흡을 시행하면서 150km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한국의 도움으로 잘 운영되고 있음에 감사했다. 이마저도 어려워 죽어가는 많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진단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했을 때, 병명도 모른 채 부모가 겪어야 하는 상처와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아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건강하게 다시 부모의 품으로 가는 순간은 의사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번 사업을 돌아보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육한 NCMC 심장수술팀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의료진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체감하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

故 폴 파머가 이야기하는 ‘동반자’로서, 우즈베키스탄에 첫발을 내디디며 나는 그들의 동반자가 되었고, 여전히 그들의 동반자로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들은 어느덧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의료인으로 성장했고, 그들도 곧 누군가의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2022년 8월 9일
김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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