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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고백

나의 삶, 나의 고백

올해 여름,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의사수필가협회가 주관한 제12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이 개최되었다. 전국 의과대학생, 의학전문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이 대회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4학년 배정현 학생이 금상을, 3학년 강지형 학생이 은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배정현 학생의 『제대로 위로하기』, 강지형 학생의 『위선자의 고해성사』는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으로 읽는 이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여기, 가장 개인적인 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두 학생에게 감사를 전한다.



『제대로 위로하기』

의학과 4학년 배정현


병원에 다닌 지 꽤나 오래되었다. 의대생으로서 6년, 그리고 환자로서는 11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일주일 가량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좀 떨어지는가 싶더니 온 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고도 차도가 없고 심해지기만 했다. 힘들게 추가 검사를 하고 난 며칠 뒤 의사가 병실에 들어와서 부모님을 따로 데리고 나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날 밤새 울었다. 독서 수업에서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나요?" 수업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떠올려 보려고 했다. 가족들이랑 바다에 놀러 갔던 것?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 어떤 게 내 터닝포인트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선생님이 말했다. "터닝포인트라는 것은 본인이 모를 수가 없어요. 겪으면 바로 이거구나, 하고 알게 되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몇 년 후 병원에서 단숨에 알아버렸다. 아, 이거구나, 이게 바로 그 순간이구나.

의학 공부를 하다 보니 내 병에 대해서도 자연히 배우게 되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주로 젊은 여성에서 발생한다. 전신을 침범할 수 있다. 가능한 증상으로는 피부 발진, 극심한 피로감, 관절 통증. 장기를 침범하게 되면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수많은 동반 가능한 질환들. 강의록에 적혀 있는 글자들은 건조하고 납작하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어떤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말은 평생 완치가 없다는 말.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말은 그러니까, 네 친구들은 다 멀쩡한데 너만 이상할 거라는 말. 평생 나만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듯한 그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말. 오랫동안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의대생들은 강의록 너머의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그들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의대에서 쉴 새 없이 공부하고 평가받다 보면 당연한 결과다. 병원에서는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는 전국의 중한 병이라는 병은 다 모이는 4차 대학병원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효율을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환자는 증상이 되고 의무기록이 되고 검사 결과가 된다. 내가 병원에서는 그냥 부종을 주소로 내원한 21세 여성이었을 뿐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지, 내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미안해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말이 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남들도 다 힘들어." 하지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런 말이었다. 나는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내 친구들은 다 아무렇지 않은데. 다들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데 나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산정특례를 받으면서 대학병원에 다니지 않았고 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퉁퉁 붓고 뼈가 약해지고 관절이 아파 걷다가 주저앉을 일이 없었다. 나에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즐겁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도무지 들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건은 영혼의 각도를 틀어놓는데, 결코 수정될 수 없는 비틀림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여러 차례 관통하다 보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백은선, 1g의 영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그날 이후로 내 영혼의 각도는 비틀렸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사실 지금도 꽤나 마음에 든다. 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이제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 것.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행복을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가 각자의 아픔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애써 미워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그 사실을. 나는 그 사실들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어서 삶의 모든 순간이 충만해졌다. 놀랍게도 나는, 다른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지금보다 행복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나도 그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아픈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누군가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 제대로 위로하기 위해, 진짜로 마음에 와 닿는 말을 해 주기 위해서.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나는 분명 내가 어떠한 연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앞으로, 이런 말을 해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저도 그랬어요. 젊은 나이에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살아 보면 막상 그렇지만은 않아요. 다 괜찮아지는 날이 오더라고요. 가끔은 내가, 남들보다 훨씬 행복한 것처럼 느껴져요.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거든요. 지금이 인생의 최저점이에요. 이것만 이겨내면 뭐든 견딜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잘 살아 봐요. 제가 계속 옆에서 도울게요."




『위선자의 고해성사』

의학과 3학년 강지형


오후 2시, 소독포에 싸인 수술 도구들을 들고 저는 지하의 수술장으로 향했습니다. 일회용 덧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는 헤어캡을 한 채 덧버선을 신고는 양손에 라텍스 장갑까지 끼는 중무장을 마친 뒤 클린 벤치가 놓인 수술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평소에는 일개 본과 학생에 불과한 저지만, 그 순간만큼 저는 이 수술의 집도의이자 담당 마취과 의사이자 스크럽 간호사였습니다. 오늘의 환자는 지금 제 앞에 놓인 철망 속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새까만 실험쥐 세 마리였습니다. 수술명을 굳이 붙이자면, ‘암 절제 후 안락사’가 적당했을 겁니다. 물론 그 암은 제가 직접 세포를 키워 손수 쥐들에게 주사한 것들이었지요. 우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쥐 한 마리의 꼬리를 잡아 꺼냈습니다. 갑작스러운 봉변에 버둥거리던 쥐는 이내 이소플루란 마취가스에 정신을 잃고는 픽 쓰러졌습니다. 충분히 마취가 되기를 기다리며 저는 쥐의 귀에 달린 이름표에 적힌 번호를 읽어봤습니다. 906번, 그게 그의 이름일 테지요. 실험실 내의 고요한 적막은 사람을 감상에 젖게 만듭니다.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면 ‘두부’나 ‘말랑이’같은 이름이 붙어 어느 가정집에서 귀여움을 받고 살았을 법도 하건만, 애석하게도 그는 의과대학의 한 사육실에서 태어나 죄도 없이 수감번호를 이름으로 달고 짧은 한평생을 살았군요. 왜 하필이면 그인가, 거기에 이유는 없습니다. 쥐들에게도 까뮈가 있었다면 지금 이 광경을 바로 부조리라고 일컬었을 겁니다. 지극히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목적이 존재에 선행하는 그들에게는 실존주의가 무의미하겠지만 말입니다.

마취가 충분히 된 것을 확인한 저는 상감에서 깨어나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손재간을 발휘해, 최대한 피가 나지 않도록 조직 사이에 파묻힌 암덩어리를 드러냈습니다. 물론 실혈을 피하는 것마저도 쥐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요, 조직 사진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조직을 촬영하려는데, 쥐가 숨을 쉬며 흉곽이 움직여 영상이 안정적으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쥐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미경의 초점을 다시 처음부터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순간 울컥 치솟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당할 쥐를 앞에 두고도 내 시간이 추가로 10분 뺏기는 것에 더 분개하는 나는 어찌 이리도 이기적인가, 저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시 데이터 수집에 매진했습니다.

필요한 데이터를 다 얻었으니 이제 안락사를 시킬 차례였습니다. 안락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목을 고정한 채 꼬리를 잡아당겨 경추를 탈골시키기도 하고, 심장에서 직접 피를 뽑아 죽이기도 합니다. 얼핏 봐서는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방법처럼 들리지만, 쥐는 마취된 상태에서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숨이 멎을 테니 ‘안락사’라 부르는 것일 터입니다. 쥐를 대(大)자로 묶어놓고 심장을 정확히 겨냥해 붉은 생명을 1밀리리터 주사기 속으로 뽑아내면, 쥐는 목을 까딱거리다 숨을 거둡니다. 쥐의 죽음을 애도할 겨를도 없이 저는 첫 쥐의 사체를 치우고, 바삐 두 번째 쥐를 꺼내 마취 챔버에 집어넣고, 다시 마취를 기다리며 수술대를 치웠습니다.

실험이 모두 끝났습니다. 청소를 끝낸 뒤 쥐 세 마리의 사체를 냉동고에 집어넣고, 냉동고 옆에 놓인 대장에 실험실의 이름과 함께 ‘종류 C57BL/6, 마릿수 3, 무게 70g’이라 적어넣었습니다. 실험실로 돌아와 오늘 얻은 실험 결과를 톺아봤습니다. 촬영한 사진도 너무 흔들렸고 조직의 상태도 기대와 달라 보고서에 사용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실험은 다시 해야겠습니다. 오늘 희생당한 세 마리의 쥐들이 존재했다는 흔적은, 이제 사체처리대장과 실험 노트 속 기록으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의학 발전을 위한 필요악. 인류의 건강을 위한 숭고한 희생. 이 쥐들의 죽음을 포장할 수사적 표현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 이 쥐들에게 암세포를 집어넣고, 그 암을 키운 뒤 쥐를 죽였다는 본질은 변치 않습니다.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의학을 한답시고 수없이 쥐를 죽입니다. 그것도 대부분은 논문 출판은커녕 랩미팅 때 언급되지도 못할 실험을 위해.

한 괴담이 떠올랐습니다. 외계인의 본거지에 자폭 공격을 감행해 외계인과 인류 사이의 전쟁을 인류의 승리로 이끈 한 영웅이 있었더랍니다. 영웅은 자신이 틀림없이 천국으로 갈 것이라 믿었지만, 외계의 별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가 도착한 저승은 외계인들의 저승, 그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테러리스트를 위해 마련된 최악의 지옥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괴담처럼 쥐들의 저승이 있지 않을까, 제가 죽는다면 그곳에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인류를 위해 그대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노라는 제 항변에 쥐들의 염라대왕은 저를 무어라 꾸짖을까요.

저의 이런 실없는 걱정은 가장 비열한 형태의 위선일 수도 있겠습니다. 절대 쥐들의 저승에 갈 일이 없고 정죄당할 일도 없음을 알기에, 「전락」에 나오는 변호사 클라망스처럼 저는 짐짓 벌벌 떠는 척을 하며, 이렇게 고해성사를 하며 제 고매한 동물윤리의식을 한껏 뽐내는 것입니다. 어쩌면 일 년에 한 번 실험동물 위령제에 참석해 고개를 푹 떨구고는, 희생당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는 김에 제 죄책감도 함께 덜어버리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인류의 의학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쥐들을 마취하고, 실험을 진행하고, 또 그들을 죽일 테죠.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나 이 일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걸 보면, 저는 위선자가 맞나 봅니다. 단테는 위선자를 위해 예비된 지옥에는 금으로 치장된 납덩어리 옷을 걸치고 영원히 행진해야 하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뽐내기 좋아하고 외식하던 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로입니다. 저는 이 동물들의 희생을 열심히 활용해 언젠가는 유명한 학회지에 논문을 낼 수도, 그래서 저명한 의학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그런 황금으로 된 옷을 입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제가 안에 덧대진 납덩이의 무게를 느끼기를 바랍니다. 해부학 실습을 위해 당신의 시신을 내주신 어떤 기증자님의 존재, 병원 실습 때 기꺼이 신체검진을 허락하신 환자분들의 존재를 잊지 않듯, 연구를 위해 희생당한 동물들의 존재도 잊지 않기를, 그래서 위선자로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겸손한 위선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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