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의예과 학생이 의학연구멘토링 과정을 통하여 SCI 논문을 쓰기까지

글 : 동명훈 학생 (의학과 3학년) 

 


구승엽 교수
(산부인과학교실)

동명훈 학생
(의학과)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1학년 기간에 의예과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선택과정으로 의학연구멘토링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주제로 의학연구멘토링을 이수할지 고민을 하다가 stem cell에 대해 연구를 하고 계신 구승엽 교수님의 연구실에 가장 흥미가 끌렸습니다. Stem cell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stem cell에 대한 분야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낯선 분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stem cell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stem cell을 이용하여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만들 수 있어 재생의학에 중요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특히 ovarian stem cell은 다른 stem cell과 달리 존재여부에 대한 연구자체가 여러 실험들마다 갑론을박인 상태였기에 이런 미지의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의 연구실로 의학연구멘토링을 신청하게 되었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의학연구멘토링을 시작하기 위해 연구실에 가서 교수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교수님께서는 바로 저에게 어떻게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바로 ovarian stem cell에 관한 논문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그때 교수님께서는 ‘수영을 배우려면 배우는 과정에서 물도 먹게 되지만 겁내지 말고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1학년인 입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논문을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단 ovarian stem cell에 관한 논문들을 모두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ovarian stem cell과 관련된 논문들을 읽으면서 김윤영 연구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읽은 논문은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논문을 점점 읽을수록 ovarian stem cell에 관한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 정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을 정한 후에는 교수님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논문 작성 틀을 정하고 정리해 놓은 논문을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19년 8월에 시작한 의학연구멘토링은 거의 1년이 넘어서야 논문이 완성되었고 ovarian stem cell(OSC)의 identification에 대한 review article을 작성하여 “Identification of stem cell-like cells in the ovary”라는 제목으로 ‘SPRINGER NATURE출판사의 Tissue Engineering and Regenerative Medicine 잡지’에 투고가 되었습니다.

의예과기간에 연구를 하고 SCI급 논문을 쓴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좋은 연구실에서 연구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의학지식이 전무하고 알바도 하고 놀기도 바쁜 의예과생이 하기엔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쓰면서 너무 힘들지 않은 연구실에서 쉽게 의학연구멘토링을 수료하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과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이 든 점이 구승엽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열심히 논문을 읽고 또 새로운 논문을 작성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과 기간에는 논문을 찾아 읽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배운 점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왜 교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학생에게 ‘겁내지 말고 일단 해 보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Ovarian stem cell은 아직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성한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실려 SCI급 논문으로 투고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쓴 논문이 SCI급 논문이 되었다는 사실은 본과 공부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저에게 힘이 되었고 자존감을 올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전공을 공부하고 또 의대를 졸업한 후에 의사가 되어 논문을 쓰는 일들이 있어도 구승엽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경험한 이런 과정이 저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환자만큼이나 많이 마주하는 환자 가족들을 보며

글: 대외협력실 학생장 유태웅, 최수연 (의학과 3학년)

 


유태웅 학생
(의학과)

최수연 학생
(의학과)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은 바로 우리 가족이다.” 권미경 작가의 저서 ‘아랫목’에 적힌 글귀이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무신경하고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길을 잃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떠올려보면 역시 가족이 먼저 떠오른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하며, 가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남긴다.

의학과 3학년이 되어 병동 실습을 다니다 보면, 환자만큼이나 많이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환자 가족들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환자의 옆에서 자기 ‘가족’을 보살피는 보호자들을 볼 때면 마음 한 편이 묵직해져 오는 것이 느껴진다. 의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여 환자들이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적어도 남은 시간을 편하게 보내다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환자의 가족들도 의료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환자를 원활하게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환자를 위로하는 것처럼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배웠다. 나 역시 이 말을 곱씹으며 병동 실습을 돌며 환자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주어야겠다고 여러 번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옆에 누이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께 나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소아병동에서 어느 환자와 만난 이야기이다.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 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어느 날 두통과 발열로 동네의원을 방문하였다. 감기로 며칠 병치레를 하겠거니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픈 것이 가시지 않고 오히려 구토하며 괴로워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자가면역 뇌염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아이는 타 병원에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발작하며 쓰러졌고, 팔다리가 경직된 채 의사가 지금 만지고 있는 발가락이 몇 번째 발가락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많은 검사를 하고, 여러 치료를 시행했지만 아이의 증상은 기대만큼 호전되지 않았다. 지금은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이 아이를 면담하기 위해서 나는 병실로 찾아갔다. 아이는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날 만큼 순진했고 똘똘했다. 면담을 진행하며 아이의 어머니께 아이의 첫 증상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하시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셨다. 밝고 잘 뛰놀던 아이가 그저 감기에 걸린 줄로만 알았던 그때가 기억이 나셨던 것 같다. 나는 그제야 환아에게만 고정되었던 시선을 옮겨 환아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는 지치고 슬픈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비단 아픈 사람만 환자가 아니라 환자 옆의 가족들도 어떤 의미에서 ‘환자’일 수 있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병원을 지나다니다 보면 다양한 모습의 ‘환자’와 다양한 모습의 환자 ‘가족’을 만날 수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애써 웃는 얼굴로 가족을 대하기도 하고, 때론 속상한 마음에 버럭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환자가 자기 가족이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본인이 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병에 걸린 가족을 보며 같이 아파해주고 억울해해주고, 또 위로해준다. 병원에서 만난 가족들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 ‘가족’ 역시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아픈 사람에게 집중하고, 자기 가족인 그 사람이 얼른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다시 일상 속으로 그리고 편안한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런 당연해 보이는 상식들로 인해 병간호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병간호를 한다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당신의 몸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아픈 환자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서라고 한들 지친 어깨와 무거운 눈꺼풀을 감출 수는 없다.

문제는 환자 가족들이 지치는 것 정도에서 그치지 않아 보인다. 병간호하던 환자 가족이 아프고 지치게 되면 자연스레 환자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불화가 생기게 되고, 서로 격려하고 감싸 안아줘야 하는 가족이 서로 모진 말을 던지게 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아픈 환자를 두고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몸과 마음의 상처는 점점 깊어져만 간다. 물론 의사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매일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환자보다 더 많은 환자 가족들 기억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병동 실습 중 교수님 외래를 참관하다 보니 또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환자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그러지 못하는 핑계만 이리저리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몇 마디 가벼운 격려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으로 환자 가족이 위로를 받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헌신하며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노력을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병동에서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SMA syndrome 환아와 환아 어머니를 만난 적 있다. 환아가 어릴 때부터 뭐만 먹으면 장염에도 잘 걸리고, 알레르기성 비염도 있어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문진을 진행하다 그 이야기가 공감되어 나도 환아 만할 때 아토피가 심하여 어머니께서 신경 쓰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말씀드리며 환아 어머니께서도 걱정이 많이 되실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환아 어머니께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내게 아이의 어릴 적 이야기와 아플 때마다 걱정했던 이야기를 실컷 이야기해 주셨다. 이 사건을 통해 교수님들께서 항상 강조하시던 공감이 큰 위로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공감해주며 위로하는 말이 기대한 것보다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사람은 혼자 와서 혼자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의 인생은 밤하늘의 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별들은 하나하나가 홀로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 중에는 눈에 띄는 밝은 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별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하늘에서 우리는 어떻게 밤하늘의 지도를 그리는가? 그건 여러 개의 별들을 이어 만든 별자리를 통해서 일 것이다. 비록 별들은 하나하나 빛나고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별들이 별자리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우리네 인생은 가족이라는 별자리 속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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