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코로나 2년차를 맞이하며


53대 학생회장 이호연

재작년 가을, 저는 잠시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정들었던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날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학생회장이 된 뒤 찾아간 학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축제 포스터들과 쌓여있는 우편물들은 여전히 2019년도에 있는 것 같은 익숙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회색이 되도록 쌓인 먼지만이 1년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 본과 생활을 시작했을 때 신찬수 학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서울대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해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오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절대 포기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을 하고 끝까지 환자를 책임지고 치료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연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연구자로서의 의사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은 3차 의료기관을 넘어 4차 의료기관에서 양성된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십시오.”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의학공부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의학공부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들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의학공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언젠가 환자 분들의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혼란을 잠재울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의학, 그 의학을 연구하는 인간이기에, 의학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일 것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학생회가 해야 하는 것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서의 의학, 그리고 불확실성의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우리들이 온전히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우리가 이전까지 살아왔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새로운 역량을 길러야 할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만의 특별한 경쟁력이 무엇일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원격의료가 확장되고 바다 건너의 경쟁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시대사적 전환기에 학생회도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평생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은 뒤, 이전의 흔적들을 보면서 모든 순간 속에서 찾아오는 결정적인 순간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학생회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도 코로나로 떨어져 있는 순간조차 학우들에게 결정적인 순간들로 다가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큼은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일상의 어려움들을 경청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곁에 있는 환자 분들께 삶의 행복을 말씀 드리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만큼, 하루하루를 덤덤히, 하지만 행복하고 굳건하게 그 의미를 생각하며 꿈꿔 나갈 수 있도록 언제나 학우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3대 학생회장 이호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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