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회장단의 임기를 마치며
안녕하세요. 제50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회 회장단 조창웅, 김홍현입니다. 무척이나 추웠던 지난 겨울, 당선 이후에 꾸려갈 일 년이 길게만 느껴졌는데 벌써 이렇게 회고록을 쓰고 있자니 ‘하루는 길지만 한 해는 짧다’라는 말이 절절히 와 닿습니다.
1년 전, 함께 학생회를 꾸리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함께한 50년, 함께할 50년’이라는 생각 아래 지속 가능한 학생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든 사업을 진행할 때 후대의 학생회가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연속성을 고려하고, 이를 위한 운영 기반을 잘 닦자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임기 내내 이러한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구체적 언어와 실천적 행동으로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먼저 학생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학생회와 학생 사회와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전 학년의 이야기를 골고루 듣기 위해 회칙을 개정하여 상무위원회를 확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학생 대표자회의에서도 의과대학의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또한 상무위원회의 의견과 조언을 바탕으로 전자투표 플랫폼, 본과 4학년 실기 배정 플랫폼, 공동구매 입금 자동화 시스템, 정보화 본부의 공식 인증을 취득한 SSO 등등 각 학년에서 필요로 하는 시스템들을 개발 및 제공함으로써 매 해 매 학년에서 반복되는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학우들이 직접 참여하여 학생회의 주된 가치를 정립하고 학생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표어 공모전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회의 중심 가치를 시각화하고 동시에 학생 사회의 여론을 학생회가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지속 가능성과 별개로, 학생회는 학생들의 당장의 삶과 맞닿아 있는 복지부문에서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직접적인 학업 환경과 맞닿아 있는 스터디 카페와 멀티미디어실 시설을 확충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학년별, 동아리별 클라우드를 개설하였고, 개설 이후에도 피드백을 꾸준히 받아 개선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서버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학내에서 학생들이 실질적인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사랑의 구급상자, 여성용품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인쇄를 많이 하는 의대생을 위한 ‘마이리틀복사실’을 신설하였습니다. 또한 부족했던 학생 휴게실 좌석을 확충함과 동시에 휴게실 비밀번호 확인 사이트를 개설하여 지속적으로 대두되던 보안 문제의 허점을 해결하였습니다.
끝으로, 이런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과 복지사업의 연장선상에는 학생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좇는 과정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람직한 학생 문화 형성을 위한 선언문을 공표하고 Code of Honor 제정을 위한 컨센서스 워크숍을 진행해 나가며, 학생회 산하기구로 인권위원회를 신설하는 준비과정 속에서 지금의 학생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하였습니다. 더불어 이렇게 정립된 가치가 실제로 학생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녹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믿음 하에 2018 연서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였고, 어린이병원 내에서 음악 공연을 하고 환아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행사 ‘너나들이’를 기획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회의 가치가 실천적인 방향으로 승화될 수 있게 노력하였고, 가치의 실천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목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생회가 놓친 부분들과 임기 내에 이루지 못한 부분들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컨대 학생들의 연서를 받아 상무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는 방식을 대신해줄 청원 사이트나, 학생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중고장터 사이트 개설은 아직도 제작 중입니다. 바뀐 교육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속도는 분명히 학우들의 바람보다 더딘 것이 사실입니다. 신설된 인권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정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여 운영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학생회를 표방한 만큼 이러한 지점들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앞으로도 학생회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사무처에 남아 못다 지킨 공약을 마저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회장단 혼자서는 위에서 말씀 드렸던 모든 일들을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학생회가 진행한 모든 사업에는 상무위원회의 꼼꼼한 검토와 의결권의 행사, 학생회의 실질적인 손발이 되어준 사무처의 집행력, 이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고 총 투표까지 성사시킨 학우 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녹아 있습니다. 올 한 해 학생회와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진정으로 학생회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덕분이었다는 점을 이 글을 빌어 꼭 밝히고 싶습니다.
헌신하는 의료, 행동하는 지성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회
또한, 학생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 주시고 늘 소통하려고 애써주신 교수님들, 저희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행정실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늘 마음을 써 주시는 학내의 수많은 직원 분들까지. 아마도 올 한 해 가장 크게 보고 느꼈던 것이 있다면, 학교라는 공간이 학생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분들의 애정과 노고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더욱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일 년을 반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알아가고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1년이었습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많은 분들이 사랑과 능력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채워 주셨고, 그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하나 둘 모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바라보는 과정 역시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물결이 모여 보다 나은 학생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큰 물결로 여울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제50대 서울대학교의과대학 학생회 <파랑>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과 2학년 학생들은 10주간의 의학연구 기간을 통해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공감마당에서는 의학연구를 마친 본과 2 학년 학생들의 소감문을 담아 보았다.
저는 본과2학년에 재학중인 한준용이라고 합니다. 어느덧 추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어 저희 동기들과 본과에서 공부하며 함께 보낸 지도 2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본과 1학년 첫 수업을 듣던 날부터 동기들과 공부하느라 졸린 눈으로 밤을 새던 일들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의학연구는 십대 때부터 공부와 시험의 연속이던 나의 인생에서 매우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 된 기간이었습니다. 처음 주제를 고를 때에는 연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막연히 뇌신경과 과학이라는 과목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ALS라는 질병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어서 신경과 성정준 교수님의 랩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호기심과 흥미로 들어갔던 연구실은 생각보다 큰 목표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내가 있던 랩은 신경과 중에서도 희귀 병을 주로 다루는 곳이었습니다. 현재 많은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명확한 치료가 없는 질병들이기에 연구의 목표를 병의 치료로 잡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목표와 주제 내에서 열심히 논문 등을 찾아보며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의견들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작은 가설을 설정하고 이 작은 가설에서 출발하여 여러 실험들을 해보며 밝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들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이런 실험들이 직접적으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가설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논문이 사용되었듯이, 우리의 연구도 이 분야에 종사하는 또 다른 연구자들에게 가설의 시발점이 되어 결국 언젠가는 이 질환이 치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또한 의학연구 기간 동안 직접 실험을 하며 느낀 것은, 하나의 논문이 나오기 까지 수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듯이 단순히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를 직접 만들고 이것이 맞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해야 하며,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서도 수많은 실험을 거쳐야 하는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한 주 동안 했던 실험이 그 어떤 유의미한 결과도 가져오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엔 이런 실패로 인해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연구실에 계신 박사님, 사수 선생님들께서 연구를 하다 보면 이런 실패와 실수는 수천, 수만 번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하나의 논문을 만들어 낸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여러 실험들을 반복하고 저 나름대로 하나의 논문을 써내려 가면서 연구의 본질이 실험의 성공을 통해 빠르게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실패 끝에 여러 가능성들을 차근차근 지워나가며 하나의 확실한 결과를 얻어내는, 노력의 결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의학연구는 저에게 사명 의식과 꿈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고 의사로서 그저 병에 대한 진단, 치료에만 매진하기 보다는 연구를 통해 더욱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겠다는 다짐과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기간이었습니다.
치열했던 2학년 3분기가 마무리되고, 강의실에서의 수업과 시험에만 익숙했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10주간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다양한 연구주제 속에서 어떤 주제로 내가 관심 있게 탐구해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의학연구 시작 전부터 나에게 새로운 설렘으로 다가왔다. 물론 의학연구 주제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고 각 랩에서 신청한 인원을 모두 수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맞는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이 의학연구에 대한 나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동기로 작용했다.
wet lab에서 직접 실험체를 다루거나 dry lab에서 환자들의 data등을 활용해 나만의 figure를 구성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의학 연구 동안 지금껏 의학 내 깊게 접해보지 못한 분야에 대해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인간·사회·의료 과목을 통해 의료인 윤리 등에 대해 배웠던 인문의학교실에서 나만의 주제를 구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1945년 이후 남북한 의학사’ 라는 주제에서 ‘의학사’ 라는 생소한 용어에 매력을 느끼며 신청하게 되었다.
첫날, 인문의학교실에 등교하여 의학연구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의료 윤리적 측면만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사 중 세세한 부분까지 주제로 정해 누구보다도 깊게 사료를 수집하고, 나만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글 쓰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번 더 또 다른 매력을 느끼며, 글 쓰는 즐거움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의학연구 주제와 관련해 가족계획사업 내 이뤄진 1960-70년대 의학사(史)에 대한 배경지식부터 쌓았다. 가족계획사업 내 각각의 피임 기술에 대한 의학사를 공부하기 위해 한자(漢字)투성이였던 1차 사료들을 읽어야 했는데 이 자료들을 읽으며 한 주제에 대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사료 수집을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를 다녀왔는데, ‘내가 의학사 속에서 연구를 하고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연구가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주제 선정 및 글쓰기에 있어서도 연구실의 큰 주제에서 세분화하여 나만의 주제를 정하는 것에도 10주의 절반 이상이 걸릴 정도로 나만의 originality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글을 쓸 때에는,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컴퓨터에 커서만이 깜빡일 때는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10주간의 의학연구 기간이 거의 마무리 되어간다. 새로운 분야를 10주간에 다 알기는 어려웠기에 시간적으로 좀 아쉬웠다. 하지만 기존의 커리큘럼 대로 시험, 강의만 반복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인문학적 글쓰기의 즐거움, 다른 학우들과의 비판적인 토의 과정을 통한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서 오는 기쁨, 그리고 과거 사료들을 읽으며 느낀 인문의학사의 새로움 등은 의학연구 이후에도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10주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주제 선정 및 사료 수집 후 글 쓰는 과정까지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상에 산더미처럼 출력한 사료들과 책들이 그 시간을 알려주는 듯하다. 추후 연구를 한다면 이번 의학연구2를 통해 인문 의학에 대해 더 나은 이해도를 갖게 됐으니 인문의학교실에서 연구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알고, 논문 작성 속에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10주간의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 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이재협 학과장)는 의예과 비교과과정 수료요건으로 매학기 최소 5편 이상의 독서일기 작성을 통해 생활지도 교수님과의 인문학적 소통을 통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꾸준한 독서와 좋은 글쓰기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사제 간 원활한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 하는데 종합적인 취지가 있다.
지난 2018년 11월 12일(월)부터 11월 28일(수)까지 「2018 의예인 독서일기 공모전」을 개최한 결과, 총 29건이 접수되어 그 중 최우수상으로 의예과 2학년 이소연 학생의‘모옌의「개구리」에 담긴 문제의식’, 우수상으로 의예과 1학년 최수연 학생의 ‘다시, 따뜻함으로 -「어린왕자(생텍쥐페리)」, 장려상으로 의예과 1학년 김국중 학생의 ‘전쟁 후 비탈에 서게 된 그들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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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모옌의「개구리」에 담긴 문제의식
이소연 학생(의예과2학년)
대를 잇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라, 이를 두고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이 소설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두 시대에 걸쳐 보여주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60년대와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갖는 것’이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60년대에는 산아제한 정책의 시행으로 더 많은 아이를 갖는 것이 사회악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를 이행하기 위한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낙태가 자행되었다. 현대에는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오히려 아이 갖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염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리모 출산이라는 또 다른 비윤리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낙태와 대리모 출산 모두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의 앞부분, 곧 고모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궁극의 딜레마, 명령과 가치의 대립이 주요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화자는 고모를 위대한 여성, 보기 드문 장군의 기지를 가진 능력 있는 산부인과 의사로 그리고 있다. 젊은 시절의 고모는 늙은 산파의 주술적인 방법을 쳐내고 과학적이고 안전한 산과 기술을 이용하여 숙련되고 열정적인 의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호시절이라고 칭했던, 곧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기 전 시기에, 고모는 만 명에 달하는 아이를 받는다. 새 생명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숭고한 일은 분명 의사로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고귀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희열과 뿌듯함을 느끼던 고모는, 산아 제한 정책을 집행해야하는 실무자가 되면서부터 비극으로 치닫는 삶을 살게 된다. 마오 주석이 산아 제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중국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 순간부터, 고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수장이 하는 모든 말은 곧 법이었기에, 그의 말에 복종하고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당대의 통념이었고, 고모는 특유의 충성심을 발휘하여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공산당원으로서 공산당이 사회악으로 규정한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열심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이 되고 만다. 고모는 자기 최면을 걸곤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이고, 마오 주석의 말씀은 장기적으로 틀림없이 옳기 때문에 국가와 인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했다. 전범재판에서 히틀러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던 그는 유대인 학살을 집행한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죽기직전까지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수많은 이들을 경악시켰다. 본인은 히틀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은 사회악이므로 그들을 처리하여 게르만 민족의 순혈성을 보존해야한다고 주장했기에 본인은 따라 열심을 다해 그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스키너의 사회 심리 실험을 보면, 인간이 권위에 대하여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실험에 의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위자의 말에 끝까지 복종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복종한 것일까? 이것은 일면 세뇌를 당하거나 권위가 두려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 ‘이성’을 사용하여 가치 판단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이성’이란 칸트가 말한 이성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가치이다. 어떤 겉모습을 가지고 있든지 우리는 모두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데, 이러한 이성 사용하기를 포기한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히만의 경우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보지 못했다. ‘생명’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자기 이성으로 바로보지 못한 것이다.
고모도 이와 비슷하다. 마오 주석의 말을 그렇게까지 지켜야했을까 의아할 정도로 고모는 한마디로 미친 듯이 낙태시술과 피임시술을 실시한다. 특별히 막판에 왕단의 출산을 막기 위해 급류를 타고 통나무배를 뒤쫓아 가거나, 왕런메이의 출산이 가까워졌을 때 무리하게 낙태를 시행해 둘 다 죽게 만든 일은,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무자비했다. 당시에는 의학지식이 부족해서 그 시술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몰랐고, 특히 출산이 가까워졌을 때 하는 낙태는 곧 산모를 죽이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몰랐겠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와 산모를 죽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자체가 비극적인 역설이었다.
다행히 고모가 아이히만과 다른 점은 세월이 흘러 온 마음을 다해 반성했다는 것이다. 철썩 같이 옳다고 생각해서 청춘을 다 바쳐가면서,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혀가면서 했던 일이 사실은 피지도 못한 생명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고모는 아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기의 삶은 살인자의 인생이 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고모가 강력히 세뇌되어 있는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작은 양심의 소리는 한밤중 개구리 떼를 만나며 폭발하게 된다. 절규하는 개구리 떼의 울음소리와 끈적이는 촉감은 마치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자기를 옥죄고, 벌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모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인형을 빚기 시작하는데, 중국어로 인형의 발음이 [와와], 곧 개구리 와(蛙)와 같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현대에는 출산과 관련된 인간의 욕구와 자본주의적 탐심을 결합한 비윤리적이 대리모 사업이 진행된다. 이를 비유하는 때에도 개구리가 쓰이는데,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휘말리게 되면서 딜레마가 심화된다. 이제는 아이를 낳아서가 아니라 낳지 못해서 문제가 되었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소망은 다양한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데, 대리모 회사가 성행하고, 아이 닮은 인형을 만드는 장인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사당에 사람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두 번째 부인 샤오스쯔의 열망은 이 세태를 보다 와닿게 했다. 친구의 딸이기도 한 천메이를 대리모로 임신시켜 아이를 낳았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다가도, 아이 잃은 천메이의 절규를 무시, 아이를 얻게 된 것에 기쁨을 느끼고 마는 작가를 통해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대를 잇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시대를 막론하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일까. 생명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생명의 절대 가치, 복종의 죄악, 모두 지금까지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고도로 심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를 곱씹을수록 비극적인 쓴 맛이 감돌았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눈에 들어온 제목, 개구리는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혀졌다. 이 안에 담긴 인류 보편적인 문제는 무거운 짐처럼 마음에 남아. 한동안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었다.
<우수상> 다시, 따뜻함으로 -『어린왕자(생텍쥐페리)』를 읽고
한 달 남짓이 남은 2018년,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어른이 되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오랜만에 만난 소설 <어린 왕자>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외딴 별에서 홀로 지쳐 있는 나 자신의 거울이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서울대 의과대학에 왔다는 명예에 가득 차 고등학교 때의 감정으로 치열했던 삶을 잊어버렸다.
본래 소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매번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고 한다. 처음 독후감을 썼었던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며 날카롭게 부서진 인간 관계 사이를 걷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는 ‘관계’의 의미, 즉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타인을 아끼듯,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했다. 2년이 지난 후, 다시 <어린 왕자>를 읽으며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한 외로움에 빠져 버린 어른들을 보았다. 술꾼, 왕, 허영심 많은 남자, 사업가, 탐험가. 이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라 권력과 허영심, 물질, 술로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보며 나는 어린 왕자와 약속했었다. 개인주의적 사고가 강해지고 공동체가 분열되는 이 사회에서 적어도 나는 물질적 이득 보다는 인연을 소중히 하는 ‘아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린 왕자와 같은 위치에 서서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를 비판하는 쪽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라도 나는 내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마음, 타인을 사랑하며 쓸쓸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자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고 있었다. 소설 속 사업가는 별을 세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냥 그것들을 소유하는 거지.” 다른 동기들처럼 나는 매주 아르바이트를 했고, 단기 과외를 알아보기 위해 과외 사이트를 수없이 들어갔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행복하거나 수입 이외의 가치를 느낀 적이 없었다. 어느 순간 과외 학생을 인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수단으로만 보는 내 모습에 큰 자괴감을 느꼈다.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일을 했고, 다시 후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마치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부끄럽기 때문에 술을 마시던 술꾼이 되어 있었다.
통학길에, 잠들기 전에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나는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서 친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2학기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친구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믿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오로지 돈을 위해서 하고, 성적도 그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하다보니 인간관계도 ‘~하기 위한’ 것으로 변모하였다. 누구는 통학할 때 같이 가는 친구, 다른 이는 수업 때 같이 앉는 친구, 동아리 때 활동을 같이 하는 친구로 나누어 보며 그 시간이 아닐 때는 굳이 만나지 않았다. 나는 쓸쓸했기에 마음의 공허를 채우려 물질적인 것을 찾았고,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할수록 외딴 별에 갇혀 있었다. 수없이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관계’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개념만 알지 현실에서는 사회적 관계맺음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아무 이유도 없고 나에게 쓸모도 없지만 칵테일을 배우기 위해 온 여름 방학 동안 서울역에 있는 학원을 다녔고,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오로지 기타 소리가 좋다는 이유로 클래식 기타를 올해 처음 손에 쥐었고 연주회 며칠 전에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새 기타를 샀다. 나 스스로 목적을 세우고 몰입했던 경험은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리고 분명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하루 종일 공부하며, 놀며 붙어있던 것처럼 대학 친구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동아리 친구들과 심심할 때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연주회도 하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찾았다. 어쩌면 의예과 2년는 학점도, 동아리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목적을 설정하여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고마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동안 내신과 수능을 마치 삶의 마지막 가치인 것처럼 추구했던 버릇을 버리고 내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삶을 꾸려가는 방법을 익히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때로는 힘들어하며 이 2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삶에서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다. 돈도, 권력도 내가 없는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시간만은 내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자기 실현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다른 누구보다도 불쌍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소설 <어린 왕자>는 나에게 어느 순간 피폐한 어른이 되어버렸다며 직설적으로 나를 비판했다. 그리고 나의 삶이, 시간이 수단화 되지 않도록 돕고, 그 시간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정신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올바른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겠지만, 그런 삶이 물질적으로 풍족하다는 거짓 행복 보다는 훨씬 가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장려상> 전쟁 후 비탈에 서게 된 그들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를 읽고
황순원 작가는 <소나기>, <카인의 후예> 등 여러 소설을 지으신 분이며,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히, <소나기>는 책도 읽어보고 영상으로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던 날 외삼촌의 추천으로 <나무들 비탈에 서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전쟁 전후의 상황과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내재적 성향을 띤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전장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태와 윤구는 술집에 자주 가고는 하였지만, 동호는 현태와 윤구와 조금 다른 성격을 띠었고, ‘시’이라 불릴 만큼 순수했었다. 동호는 숙이라는 애인이 있었다. 그는 전장에서, 군대에서 숙이와의 추억을 자주 회상하고는 하였다. 나중에 동호도 현태와 윤구에 이끌려 술집에 가게 되고, 동호는 그곳에서 서울 색시를 만난다. 처음 서울 색시를 만났을 때, 동호는 수치심과 모독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 동호도 순결함을 빼앗기게 되고, 욕망을 멈출 수 없어 숙이를 점차 잊고 색시 술집에 계속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청년 단장과 서울 색시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총으로 쏘고 괴로움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동호는 소토고미에서 산 술을 꺼내며 현태에게 “우린 이번 동란(6.25 전쟁)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우린 죄다 동란의 피해자야”라고 말하고 아무도 안보는 사이에 자살한다.
<2부>에서는 <1부>의 시간적 배경과 다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윤구와 현태는 제대했다. 윤구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마저 폭격으로 몰살당했다. 그는 가정교사를 해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현태 도움으로 양계장 사업을 하고 있었다. 동란 후에는 윤구는 은행원을 하게 된다. 현태, 윤구, 석기 이 세 사람은 토요일 저녁마다 모임을 가졌고 술을 마셨다. 어느 날 현태가 윤구한테 할 말이 있다며 다방으로 끌고 간다. 사실 숙이(동호의 애인)가 현태한테 찾아와 동호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현태는 전쟁 당시의 기억을 지우고 싶기도 하였고 차마 동호가 바람피우고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말 할 수가 없어 계속 거절한다. 하지만 숙이는 끈질기게 더 물어봤고 결국 사실(동호가 어떤 여잘 총 쏴 죽였다. 어떤 술집 여자였고, 나머지는 알아서 상상하라)을 말한다. 말하면서 현태는 오랜만에 잔인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현태는 숙이에게 동호의 유서를 전하기 위해 숙이와 함께 인천의 한 호텔로 갔지만, 유서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숙이는 놀라며 눈물을 흘리고, 현태는 ‘동호가 그 하찮은 꿈의 세계를 헤어나오지 못해 죽고 만 것이다’라고 말하며 숙이와 하룻밤을 지낸다. 인천에 간지 2주 후 숙은 현태에게 ‘당신과 동호는 모두 구원 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현태는 평양집의 계향이를 돈을 주고 그녀를 취하지만 계향은 자신의 불행함을 토로하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현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단도를 주며 죽으라고 말하고, 현태는 자살 방조죄를 넘어 살인행위로 간주되며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숙이는 현태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윤구에게 ‘선생님이 받은 피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의미에서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 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 씨도 그 중의 한 사람이도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제가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에서 각 인물들(현태, 윤구, 동호, 숙이)의 서로 다른 내면적 성향이 각 인물들의 삶을 결정지었다. 현태는 전란의 가혹한 현실 상황에 반발하는 허무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숙이가 동호의 자살에 대해 물어보러 왔을 때 그는 무시하려고 하였고, 결말에 그는 극심한 자학과 자살 방조 후 무기징역을 당함으로써 삶에서 일종의 ‘패배’를 하게 된다. 동호는 인간의 순수성과 고귀함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는 소설 <1부>에서 ‘시인’이라 불릴 만큼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나, 소토고미의 기생 술집에서 서울 색시를 만나 순수함을 포기하였고 결국 서울색시(옥주)를 총으로 죽이고 자살한다. 윤구는 혼란의 와중에서 물욕을 키우는 현실주의자이다. 미란이를 자신의 성욕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의심 때문에 죽음으로 몰고 갔고, 양계장 사업과 은행원의 일을 하며 금전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는 결국 속물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고, 정신적인 패배자가 된다. 이들은 각각 ‘비탈에 선 나무들’로, 전란이 초래한 위태로운 한국 사회의 윤리적인 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숙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이는 원래 동호의 애인이었으나, 동호가 자살하고 현태와 윤구에게 동호의 자살 원인을 묻다가 현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나머지 인물은 모두 일종의 전락을 하게 된 데에 비해 숙이는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한 말, 이 소설의 결말로써 숙이의 대사가 이러한 것은 작가는 숙이를 통해 구원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6.25 전쟁을 겪은 세대, 또는 그 후 세대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숙이와 같은 인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숙이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비탈에 선 나무가 이제 비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6.25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청년들의 대다수가 윤구, 동호, 현태와 같은 부류의 희망을 잃어가는 패배자들이었을 텐데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 /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종하려마 /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 어버이 정 그리워 우는 이 마음 // 대동강 한강물은 서해에서 만나 / 남과 북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 너처럼 네 마음도 울고 있단다 //』
위의 가사는 6.25 전쟁 당시 전쟁 관련하여 인기가 있었던 노래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의 가사이다. 현재 분단의 상황과 전후에 민족의 아픔, 고향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화해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위의 노래와 같이 6.25 전쟁의 흔적은 우리 세대까지 전해지고 있고, 나 또한 전쟁의 참혹함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번 소설을 계기로 6.25 전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터넷 상에 조사를 해 보았다. 6.25 전쟁은 3년 1개월 2일, 약 1000일에 육박하는 장기간에 걸친 전투였다. 전쟁 발발의 표면상의 이우는 미, 소련의 영향을 받은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이였지만, 전쟁의 피해는 무척 컸고, 아픔과 상처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인명 피해는 약 450만 명이고, 국토는 쑥대밭이 된 지역이 많았으며,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초토화 되었다고 한다. 휴전 한 지는 50년이 넘었지만, 말 그대로 ‘휴전’일 뿐이고, 남과 북의 대립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은 연평도 포격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각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나는 숙이를 통해 한국적 특수성인 한, 비극보다는 인류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특히, 숙이의 마지막 대사가 현태의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에서 작가의 낭만적인 세계관을 느꼈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과 치유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겪은 젊은이들의 전쟁 당시의 정신적 방황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전쟁이라는 상황뿐만이 아니라 동호의 순수함이나 이상과 현태의 현실주의적이라는 내적 인간성도 인간이 회복해야 할 것이라는 걸 느꼈다.
6.25 전쟁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찍은 사진도 여럿 봤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기에 직접적인 경험을 하지는 못하고 글과 사진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내가 본 사진은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 포탄 공세로 인해 끊어진 한강 철교, 보병 24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는 모습, 인민군에 피살된 사람의 사족들이 오열하는 모습, 인천 상륙 작전 때 월미도 앞바다 포연이 만든 검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사진들, 경험 하나하나가 6.25를 겪으신 분들의 깊은 마음속에 상처로 자리잡고 있고, 우리의 역할은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6.25와 같은 아픔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