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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국 사회의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까?
- <우리 몸이 세계라면> 서평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 민낯 중심으로 -

이번 호에서는 의예과 2학년 황유리 학생이 자유주제탐구 수업에서 작성한 서평을 소개합니다. 황유리 학생의 서평은 청년의사에 투고하여 기사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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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과 2학년 황유리 학생>

작년 스승의 날 찾아간 모교에서 뜻 깊은 선물을 하나 받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제일 의지하고 생각을 많이 나누었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고3 졸업식에 못 주셨다며 스물의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전해주신 책 한 권이었다. 바로 읽고 싶었는데 대학 새내기 생활을 즐기며 동시에 다른 과제와 관련된 책들을 먼저 읽다 보니 계속 내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그저 꽂혀 있기만 하다가 자유주제탐구 수업을 통해 감사하게도 꺼내 읽게 되었다.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짙게 묻어 있는 작가의 단단한 신념과 담담한 필체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나가게 했다. 작가는 스무 살 때 찾아가서 본, 동학농민전쟁의 봉기가 처음 시작된 백산을 이후에 떠올리며, 어떻게 그 자그마한 언덕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꿈을 감당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곤 했다고 적는다. 그리고 자신의 공부가 어떤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었던 일상성과 언제든 오를 수 있었던 낮음을 간직한 백산으로부터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작가의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질문하고 검증하는 과학적 사유라는 일관성을 간직한 채 전개된다. 본 서평에서는 책을 관통하고 있는 “불평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여 어떻게 한국 사회의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책 내용 중에 1347년 유럽 남부에서 시작되어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전염병인 흑사병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한다. 흑사병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가혹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한다. 먼저, 흑사병은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고 말한다. 혹사병 유행 당시 환자를 돌보는 일은 그 일이 아니면 생계가 막막했던 ‘늙은 노파나 허드렛일을 하던 하층 계급의 여성들’이 했다는 기록이 있다. 타인의 건강을 돌보는 그들의 건강은 누구도 보살피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에서 여성이 흑사병 예방과 치료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사망했을까?’ 이 질문에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어떻게 답할까? 2017년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대니얼 커티스 박사 연구팀은 1349년부터 1351년까지의 흑사병 유행 시기 벨기에의 한 지방에서 사망 시 작성하는 부동산 영구양도 데이터를 분석했다. 남성과 여성의 사망비를 비교하였는데, 흑사병 유행이 없던 시기 1.18:1, 흑사병 유행 시기 0.89:1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망률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흑사병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도가 남성보다 여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흑사병이 특정 사회계층에게 더 가혹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데이터를 새롭게 찾아내야 하는데 그런 데이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알바니대학의 새논 드위트 교수와 동료들은 간접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은 흑사병 유행 이전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받았을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연구팀은 흑사병 사망자들의 유골들과 흑사병 이전의 유행병이 없던 시기에 만들어진 시신을 비교했고 그 결과 영양 상태가 취약했던 하층 계급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더 많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사실 흑사병이 여성과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었을 거라는 연구 결과 자체는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가 있었기에 죽음의 불평등을 명확히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대규모 재난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오늘날, 그에 대해 보다 적절히 대응하고 또 그 피해 상황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는 작가의 생각에도 동의하는 바이다. 흑사병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불평등은 사실 전세계 의료 체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현 시점에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 재난의 불평등함이 정말 피부로 느껴진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어 누군가에겐 더 가혹한 코로나19 재난에 대해서 글을 전개해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겐 더 가혹한 코로나19 재난’. 오늘 오후에 한 포털 창에 떠있었던 기사 제목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불평등’에 대해 콕 집어서 말하는 듯한 제목을 마주하고 그 동안 기사나 매체에서 하나하나 접해왔던 아프고 슬픈 우리 사회의 사연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외면하거나 감춰져 있던 우리 사회의 아픔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지만 그로 인한 위험과 고통은 실제로는 취약한 이들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다.

얼마 전, 서울시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이 큰 이슈였다. 콜센터가 있던 11층 종사자 216명 중 94명이 감염되었는데, 43.5%라는 상당히 높은 감염률이어서 더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높은 감염률은 오랜 기간 개선되지 못한 콜센터의 취약한 노동환경에 기인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제약 받고, 1인당 1평이 채 안 되는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콜센터 직원들은 바이러스에 특히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마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콜센터 직원들의 집단 감염에 대해 과연 우리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콜센터와 같은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사각지대는 요양병원 같은 집단 거주시설이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들은 밀집된 공간에서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생활한다. 청도대남병원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자 100여명의 코로나19 감염 사례를 살펴보자. 정신병동의 특성상 창문을 열지 못하게 되어 있어 자연 환기가 어렵고, 여럿이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 인식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등 부실한 환자 관리도 문제가 됐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이기에, 전염병 확산이 이어지는 이 상황은 장애인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활동보조사를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장애인주간보호센터, 학교 돌봄교실 등의 복지시설은 대책 없이 문을 닫으면서 장애인 돌봄에 대한 모든 부담이 부모, 가족에게 쏠리는 것이다. 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그들의 외침 이면의 상황을 들여다볼 때 바람직한 사회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자와 난민은 공적 마스크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사회적 약자가 마주하는 코로나19 질병 자체를 넘어선 일상의 공포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젠더 불평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례로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배달업과 운수업 노동자, 취약계층에 대한 마스크 지급사업에 돌봄 노동자가 빠져 있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지만, 공식적인 보건의료 체계로 인정되지 않는 간병과 재가서비스, 장애인 활동지원 노동자들은 개인 보호장비뿐만 아니라 최후의 보호 수단인 마스크조차 제공되지 않은 채 근무에 계속해 나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누가 더 감염의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는가에 대한 답만이 불평등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노인들에 대한 비난의 시선을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면서 마스크 가격은 폭등했고, 가격이 올랐음에도 품절현상은 지속되었었다. 검색이나 온라인 구매가 익숙치 않은 노인들, 비싼 마스크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공적 마스크 판매 시작 후에도 재고 알리미 등 정보 활용의 불평등으로 긴 줄을 섰지만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사회의 불평등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자연발생적이지만, 우리가 대처해야 할 이후의 모든 상황은 사회적인 측면이 강하다. 백신이나 치료제, 진단키트 등을 연구 개발하는 의학적, 과학적 대응책만으로는 코로나 19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재난에 대처하는 힘을 키우고 시민의식이나 위생의식을 올바르게 함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난 상황에 더욱 아파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보호해줄 안전망 구축과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 등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산발적인 유행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가장 취약하고 불안한 곳을 살펴야 한다. 그 다음엔 앞으로 닥쳐올 재난에서 이런 불평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리하고, 대비하며,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코로나19를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의료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할 때 우리는 아픈 개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원인을 찾고 사회가 이 아픔을 어떤 책임과 공감의식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고,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어떻게 이들을 도울 것인지 고민하고 접근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난 사회 속에서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의사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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