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의학 연구를 마무리하며

본과 2학년 전승연, 한지윤 학생기자

한 학년을 끝내고,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12월. 본과 2학년은 학생 의사로서 한 발을 내딛기 전 의학의 기본적인 기초 과목들과 임상 과목에 대한 공부를 매듭짓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 10주간의 의학 연구를 통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연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역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12월 20일 의학 연구 발표회를 통해 10주 동안 자신의 성장을 나눌 수 있었고, 이와 함께 또 다른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감회도 남달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 이진한 (본과 2학년)

의학연구 발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사거리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9401번 버스를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지난 10주간 매일 두 시간씩,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을 그 버스 안에서 바라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분당 병원을 가지 않은 일주일간, 6시 전에 눈이 떠지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눕곤 했습니다. 실험용 쥐의 무게를 앞으로 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신경외과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을 SNS에서만 보는 것도 아직은 조금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분당 병원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만큼 의학연구 기간은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의 김재용 교수님 랩에서 10주를 보냈는데, 기초연구와 임상연구를 모두 경험하고 싶다는 막연한 신청 동기 이상으로 다양한 부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맡았고 발표했던 연구인 “Combination Therapy of PARP Inhibitor Olaparib with Temozolomide against Experimental Glioblastoma” 뿐만 아니라 “Automatic Intracranial Meningioma Volume Measurement Model: Meningioma Detection Model”이라는 임상연구도 함께 진행하였으며, 매주 서너 건의 뇌종양 수술도 참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대한두개저외과학회 등의 학회와 증례 집담회 등을 다수 참석하며 의사가 된 이후의 지식 공유와 배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의학연구 기간은 정말 배우고 느낀 게 많은 시간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건 의사가 된 후 제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술과 증례 보고, 학회에, 그리고 기초연구와 임상연구에 가까이에서 모두 참여하면서도 당장 저에게 책임 대신 생각해 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주어졌기에, 저는 감사하게도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제가 가진 비전에 반영해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교수님과 선생님, 그리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가치를 보며 바쁜 가운데에서도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돌아보면 의학연구를 하기 전 실험용 쥐를 보정조차 하지 못했던 제가 이제는 마취와 종양세포 주입, 봉합을 할 수 있게 되었고 EMR이 무엇인지 모르던 제가 분당 병원을 거쳐 간 수많은 환자의 MRI를 찾아보고 어디가 종양인지를 타 대학교 인공지능 팀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수술복이 어디 있는지 헤매던 것도 잠시 환자의 종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떻게 수술하게 될지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고, 영어로 된 교과서도 잘 읽지 않던 저는 수십 편의 외국 논문을 읽고 참고문헌 삼아 영어로 스무 쪽의 보고서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습도 경험해보지 못한 제가 병원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려다 보니, 짧지 않은 거리를 통학하는 과정에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저를 충전시켜주었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만으로도 충분한 저에게 우수 발표 상까지 주셔서, 이 기간은 더욱 잊지 못할 기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기회를 주신 김재용 교수님과 황기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 신화진 (본과 2학년)

10월 14일에 시작한 10주간의 의학연구2가 12월 20일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종강을 맞이한 지금, 이동섭 교수님의 랩에서 보낸 10주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VISTA 발현조절 물질 발굴/검증’이라는 큰 목표 하에 저는 ‘EGR1 lentiviral system 구축을 통한 macrophage에서의 VISTA 발현 연구’라는 주제로 연구에 대해 배웠습니다. mEgr1을 cloning하고 RAW 264.7 cell line에서의 VISTA 발현을 보는 연구였는데,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연구를 끝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도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에서 보낸 10주의 시간은 다른 어떤 10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즐거웠습니다. 물론 시작할 때는 연구에 관심도 없고, 10주는 다른 블록 과목에 비하면 그저 길어만 보여서 ‘대체 언제 끝날까’, 이 생각만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연구가 시작되고 선생님들께 실험을 배우면서 차츰 관심이 생겼고, ‘대체 언제 끝날까’하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시간이 아까워서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것도, 밤을 새고 아침 5시에 퇴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제 연구만 했다면 어쩌면 10주안에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또 기쁘게도 제가 있는 랩이 ‘원래 어떤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랩인지’,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 건지’ 관심이 생겨서 제 연구와는 관련이 적은 다른 걸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FCM analysis를 배우며 직접 B6 mouse의 spleen으로 compensation을 잡고, LN와 spleen을 6개 antibody로 염색해서 gating을 해본 경험, tumor에 30/70 percoll gradient를 걸어본 경험을 비롯해 살면서 다시는 못할지 모르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습니다. 그저 즐거웠고,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 많은 걸 제가 배우지 못했을 것을, 10주가 이렇게 까지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을 알기에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지난 10주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3. 강지예 (본과 2학년)

저는 신경외과 박철기 교수님 실험실에서 [뇌종양 세포에서 텔로미어 길이 유지기전의 변화]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세포는 세포분열을 하면 염색체 말단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데, 일정 수준 이하로 짧아지게 되면 세포는 세포 노화(senescence)에 빠지게 됩니다. 암세포는 이를 막기 위하여 텔로미어의 길이를 지속적으로 늘려주는 텔로미어 길이 유지 기전 (Telomere length maintenance mechanism)을 가지고 있습니다. 85-90%의 암은 telomerase라는 역전사 효소를 발현하여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시키지만, 10-15%의 암은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 (ALT)라는 기전을 이용하여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게 됩니다. 저는 악성뇌교모세포종 (Glioblastoma)에서 anti-telomerase therapy을 처리하였을 때, 텔로미어의 길이 유지 기전이 telomerase-dependent에서 ALT 기전으로 switch이 일어날 것이란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실험 과정 중 troubleshooting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연구 4주차에 어렵게 얻은 첫 실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실험을 다시 시도할 때 protocol의 어떤 부분을 수정해 나가야 할 지 몰라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님과 연구교수님, 그리고 실험실의 다른 선생님들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샘플을 관리하는 방법부터 전반적인 실험 디자인까지 지도해주신 덕분에 이후 실험에서 더 좋은 결과값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연구에는 지름길이란 없고, 끊임없이 토의하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실험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10주 동안 가설에 맞는 실험을 디자인하고 직접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걱정 없이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실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아낌 없는 조언을 해주신 박철기 지도교수님과 연구실의 김소진 연구교수님께 너무나도 감사 드립니다.

 

인터뷰를 한 학생 외에도, 모든 본과 2학년 학생들에게 연구란 무엇인지 배우고, 본과 2학년을 뜻 깊게 마무리할 수 있는 연구 기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10주간의 배움을 위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 배움을 안고 학생 의사로서의 더 큰 걸음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함께 다져봅니다.

2019년 의예인 독서일기 공모전 개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학과장 이정표)에서는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위해 비교과과정 필수 수료요건으로 독서일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인 독서와 글쓰기를 장려할 뿐 아니라 학생과 지도교수님 간 원활한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올 한 해의 좋은 독서일기를 학우들과 공유하고 올바른 독서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취지로, 지난 2019년 11월 4일(월)부터 11월 27일(수)까지 「2019년 의예인 독서일기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총 14건이 접수되어 최우수상으로 의예과 2학년 신정현 학생의 ‘Though the road is long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를 읽고’가 선정되었고, 우수상으로 의예과 1학년 황유리 학생의 ‘시를 가까이할 때 다가올 작은 변화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를 읽고’, 장려상으로 의예과 2학년 김국중 학생의 ‘잘못된 규범 속에서의 희생양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하퍼 리)』를 읽고’가 선정되었다. 수상한 세 작품을 이번 1월호 함춘인사이드에서 소개한다.

 

 

 

<최우수상>

Though the road is long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를 읽고

의예과 2학년 신정현

이번 학기에 ‘개발과 협력의 국제정치경제’라는 수업을 들었다. 개발협력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수업을 가르쳐주시는 박종희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개발 협력에 관해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쉽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책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것이 이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사람, 장소, 환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 있도록 장소를 보장 받고,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절대적 환대를 한다는 말은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벼운 비관보다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이 책으로 날 이끌었다.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성원권을 인정받는 것’이며, 이러한 인정은 ‘사회라는 장소 속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한 개인이 스스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는 그 개인을 온전히 인정할 때에만 그 개인은 자신이 온전히 삶을 산다고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노인, 아이들, 여성,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이러한 인정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은 보편성을 띨 때에만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인정의 개념을 ‘장소’와 ‘환대’의 두 개념으로 설명한다.

장소는 단순히 공간을 넘어, 한 개인이 ‘잘못 놓여있지 않다’고 느끼는 주관적 공간이다. 김현경은 ‘오염’은 단순히 더럽다는 것 이상으로, ‘잘못 놓여있다’라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가 주장한 바로서, 그는 “오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체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식탁 위의 신발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 있기에 더럽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위치에도 위계가 존재한다면, 개인은 스스로를 오염된 존재로서 지각하게 된다. 정착을 하지 못한 난민이나,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지체 장애인의 경우가 예이다.

저자가 말하는 절대적 환대는 세 가지 조건으로 구성된다. 첫째, 모든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환대가 한 사람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가치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의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정한 행동양식들로 규정되기 때문에 의례적 평등이 중요시 된다. 셋째는,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체성 서사의 최종 편집권(authorship)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나는 ‘Humans of SNU’라는 중앙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종강까지 버티게 해줄 힘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가벼운 질문에서부터, ‘내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사건은?’과 같은 무게 있는 질문들까지. 다양한 질문을 통해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이었다. Humans of SNU에서의 활동은 모든 개인이 가진 서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뜻 깊은지 가르쳐주었다. 타인의 서사에 대한 온전한 존중은 무분별한 편집을 통한 author로서의 마음가짐이 아닌, listener로서의 마음가짐을 통해 가능함을 배웠다.

일의 보람이 작지만 소중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에 있었다면,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일의 즐거움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왔다. 타인을 환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도 절대적 환대를 베풀었다. 그런 공동체 속에서 나는 안전하다 느꼈고, 존중 받는다 느꼈다. 어떤 사람인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나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정말 따뜻하고 값졌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가능함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구성원의 온전한 장소가 보장되고, 사람 간 절대적 환대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꿈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이 모욕적인 발언을 일상적으로 듣고,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보상을 받기는커녕 상처에 힘들어한다. 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내몰리는 이들의 사정은 무능력으로 너무 쉽게 치부되고는 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모습이 비가시화 되고, 아픔이 무시되는 것을 마주한다. 『사람, 장소, 환대』의 이야기는 너무 아득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또 서로의 ‘가치’를 묻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환대하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들이 있다. 나는 이들을 보며, 변화가 아득해 보일 때에도 더 나은 세상을 바랄 수 있게 된다. 희미한 희망일지라도, 더 많은 이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기를,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환대 받을 수 있기를. 나 자신도 일상 속에서 더 환대하고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우수상>

시를 가까이할 때 다가올 작은 변화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를 읽고


의예과 1학년 황유리 

내 보물 1호는 내 시집이다. 시가 내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온 것은 고등학교 1학년 학교 문학캠프에서였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라는 시집을 낸 박준 시인에게 시의 소재를 어떻게 잡고 어떻게 시를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담을 들으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멋진 주제와 영롱한 언어들로만 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삶의 어떤 것도 시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어떤 형식과 내용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를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부담 없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시가 한 편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이어리에 시를 한두 편 쓰다가 예쁜 시 노트를 사서 내 시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쓰면 쓸수록 절제된 언어로 많은 의미를 전하는 시의 힘에 빠져들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대학생이 된 지금에도 내 시집은 시가 한 편 한 편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난 후 시를 쓰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아쉬움을 많이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며 나를 부르고 있는 이 책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시를 좋아하고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써오고 있기에 시를 읽는 즐거움과 시를 쓰는 기쁨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찬 작가는 시라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역설한다. 길지 않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정리해본 내가 자랑하고 싶은 시의 힘을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나 자신의 감정과 오롯이 마주하게 해준다는 점,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의 첫 번째 힘이다. 시집에 적힌 많은 시들 중 한 시에 얽힌 에피소드를 나눠보자면 고등학교 시절 그날은 야자를 하다가 너무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한 날이었다. 평소에는 잘 풀리던 문제도 괜히 안 풀리고 해도 해도 쌓여 있는 할 일에 지쳤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연필을 내려놓고 시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신기하게도 시를 딱 쓰고 나니까 진짜 시의 마지막 줄처럼 이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시를 준비하며 가장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3년의 학교생할이 행복했고, 치열함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힘들 때 솔직하게 감정과 마주하고 시로써 담담히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이처럼 응어리진 감정을 부드러운 힘으로 풀어주는 능력이 있다.    

시는 나뿐만이 아닌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시 창작이 가장 잘 되던 때는 모의고사 날 한국사 시험을 다 풀고 남는 시간이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친구들에게 내가 쓴 시 한번 읽어보라며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마냥 장난스럽게 시를 읽고 오그라든다고만 얘기해주던 친구들이었는데 내가 조금 더 솔직하게, 공감 가는 시를 쓰자 친구들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부하다 지칠 때, 쉬는 시간 틈을 내서 친구들이 찾아와 내 시집을 읽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없다. 내가 외롭다고 느낀다면 친구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에게” 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친구들에게 “괜찮아, 잘 될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더 힘이 있지 않나 라고 반문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내 일이 너무 커 보이고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타인에 대한 벽을 세우게 되는 때가 있다. 이때 시의 힘이 나타난다. 내 감정을 녹여낸 시를 같이 읽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 말로는 여러 번 얘기하기 힘든 부분들을 시로 써서 전달한다면 시는 한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 세 번 읽을 때가 모두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한 줄씩 곱씹어서 읽다가 어떤 친구들과는 이 구절에 대해 얘기하게 되고 또 다른 친구와는 다른 구절에 대해 얘기하게 되면서 대화의 물꼬도 트이게 해준다. 

전에 ‘의학과 치유에 관한 시의 도입’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후 관심이 생겨 찾아보던 중 세계 여러 의대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음, 투병의 고통 등 전공서적으로 전달되기 힘든 부분에 대해 시로써 배우는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정한 치유를 주는 의사가 되고자 하는 나는 앞으로도 시와 함께 하면서 의학적으로 활용되는 시의 역할에 대해서도 좀 더 연구하고 실제 치료에 적용해보고 싶다. 시를 매개체로 하여 이뤄내게 될 이 대화의 힘은 의학도들에게는 훗날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소통이 시작되게 할 수 있다. 모든 화해와 위로와 치유의 시작은 소통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의사의 역할은 healer, 즉 기술을 넘어선 진정한 치유라고 생각한다. 이에 발맞춘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시라는 문학이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이다. 

 

<장려상>

잘못된 규범 속에서의 희생양, 앵무새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하퍼 리)』를 읽고


의예과 1학년 김국중

어느 날 장학퀴즈(969회)를 보다가 “이 작품은 1961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의 후속편 <파수꾼>의 분실된 원고가 55년 만에 발간되어 출간되었다. 미국 작가 하퍼 리의 이 작품은 가해자로 누명을 쓴 흑인 청년을 변호한 미국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접했다. 정답이 <앵무새 죽이기>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장시간에 걸쳐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930년대 미국 인종차별 상황을 담고 있는데, 나는 사회 규범과 연관 지으며 이 책을 접근해 보았다. 사회 규범이란 집단, 또는 공동체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행동, 생활, 생각 등의 규칙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규범이란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자 질서인 것이다. 사회적 규범에서 비롯된 차별은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고 모여 형성된 것이기에 강력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면 규범도 바뀔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의 특성이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이 규범의 종류와 규범의 변천을 중심으로 책에 접근해 보았다.

‘앵무새’의 의미와 상징성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바마 주의 메이컴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이 마을의 핀치네 가족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1930년대는 대공황 시기여서 경제상황 자체가 힘들었다. 스카웃 핀치가 서술자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핀치네 가족은 스카웃 핀치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 오빠 젬 핀치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 상에서 백인 여성 강간 혐의를 받고 있는 흑인 톰 로빈슨이 결백하다는 것을 아는 애티커스 핀치는 그를 변호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때문에 스카웃과 젬은 어린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흑인 옹호자’라고 놀림을 받게 된다. 핀치네 가족 흑인 가정부 칼퍼니아는 젬과 스카웃을 흑인 교회로 데리고 가서(원래는 백인 교회와 흑인교회가 따로 있어 피부색에 맞는 교회로 가야 했다.) 그들의 따스함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톰 로빈슨의 재판이 시작되었고, 스카웃과 젬은 재판을 보기 위해 ‘유색인종이 재판을 보는 자리’로 가 유색인종의 자리(입장)에서 재판을 보게 된다. 애티커스는 명료하게 톰 로빈슨이 범인이 아니라 톰 로빈슨이 자기를 강간했다고 신고한 마옐라 이웰이 거짓말 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낸다. 하지만 배심원단들은 톰 로빈슨을 유죄로 평결하고, 이에 실망한 톰은 감옥을 탈출하려다 사살당하게 된다. 스카웃은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포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은 이야기의 내용과 흐름에는 표면상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소설에서 ‘앵무새’라는 단어가 다섯 번도 채 나오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앵무새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나름의 상징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앵무새는 순수성을 상징한다. 순수하고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당해 결국 감옥을 탈출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톰 로빈슨, 그가 이 소설에서 앵무새였던 것이다. 신문 기자 언더우드(Underwood)씨는 그의 죽음을 사냥꾼이나 아이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죽어나가는 노래하는 새에 비유했다. 다른 이한테 피해도 주지 않는 순수한 존재가 잘못된 규범에 의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되는, 앵무새는 사람들에게 사냥감인 것처럼 톰도 사람들에게는, 특히 이웰씨에게는 더더욱 사람의 탈을 쓴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톰 로빈슨이 유죄가 되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들, 젬 핀치와 스카웃 핀치, 그리고 아버지의 양보 없는 종교성과 그 집안 자존심의 희생자로서 마을 공동체의 사회구조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어 어른을 무서워하는 어린 아이 같은 연약함을 지닌 부 래들리 또한 앵무새라고 볼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의 군중, 대중, 공중과 ‘마녀사냥’

나는 우연히 철학자 프라이스의 여론에 대해 적은 글을 읽어보았다. 그는 여론의 성격을 구분하기 위해 군중(crowd), 대중(mass), 공중(public)의 차이점을 분석했다. 군중이란, ‘정치적인 군중심리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쉽게 흉내 내며, 이들의 감정이나 행동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한다. 대중은 ‘구성원 사이의 상호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서도 사회 전체의 범위에서 동원되는 힘을 지고, 개인적이며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이다. 공중은 ‘어떤 이슈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성적인 담론 과정에서 형성되는 집단’이다. 여기서 나는 군중에 주목하였다. 군중은 군중심리가 크게 좌우하기에, 군중 속의 개인은 다른 사람의 설득에 대해 무의식적인 무방비 상태에 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백인인 재판의 배심원단들, 그들은 ‘군중’이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방식으로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내리는 불공정한 사람이었다.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재판의 마지막 부분에서 배심원들에게 했던 “법정에서는 모든 인류가 평등해야 합니다. (중략). 인종차별주의에 사로잡혀 진실을 숨기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잘못된 규범에서 파생된 군중심리의 노예가 되는 군중이 되지 말고, 단지 피부색 때문에 편향된 생각을 지니지 말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컴에서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재판이 피부색 때문에 잘못된 판결을 하여 죄 없는 흑인, 아니 앵무새 한 마리를 죽게 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흑인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전염적인 군중심리로 가득한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 군중심리에 맞서는 애티커스 핀치와 아이들 모습에 감동을 느꼈고,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앵무새 죽이기>의 주제와 나의 변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앵무새의 의미, 군중심리, 규범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 경험에 비추어 보니 <앵무새 죽이기>의 주제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느낌이 왔다. 이 책의 전체적인 갈등은 마치 ‘선과 악의 갈등’과 유사했다. 스카웃은 처음에 무척 순수한 시각으로 ‘메이컴의 모든 마을 사람들은 똑같이 착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재판을 보고 아버지에게 여러 가르침을 얻으며 성숙해지자 이웰과 같은 악한 사람도 있음을 알게 된다. 톰 로빈슨, 부 래들리와 같은 사람이 그 ‘악마(이웰뿐만 아니라 메이컴을 둘러싼 잘못된 규범)’의 희생양이 되어 파괴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젬이 믿고 있었던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가 깨지게 되었다. 하지만, 애티커스 핀치가 항상 젬, 스카웃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그는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똑같은 사람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공감’과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에는 다수의 구성원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구성원의 의견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기에 갈등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공감과 역지사지의 태도라는 것이다. 또한, 애티커스 핀치와 같은 훌륭한 부모님과 올바른 가르침 덕분에 젬 핀치와 스카웃 핀치가 한층 더 성장하게 되었고, 도덕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소설 속에서의 스카웃이 11살짜리 내 동생하고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내가 동생에게 애티커스 핀치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1930년대의 잘못된 규범과 군중심리에 의한 차별을 고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것은 계급사회와 다를 바가 없음을, 흑인과 백인을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행위는 두 집단 모두에게 파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앵무새는 아무 죄가 없었지만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다. 나는 차별 없는 사회, 앵무새를 지켜주는 사회가 되기 위해 앞장서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인 <파수꾼>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의 두께에 겁을 먹지 말고 스스로 자신이 스카웃이 되어 천천히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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