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회의학 연구 사례: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를 유발한다는 인구집단 수준의 근거

Causal Effect of Sleep Duration on Body Weight in Adolescents: A Population-based Study Using a Natural Experiment. (Epidemiology: November 2019 - Volume 30 - Issue 6 - p 876–884)

도영경 교수(의료관리학교실, 의료관리학연구소)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와 상관성이 있음을 보인 논문은 다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관성이 곧바로 인과성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의 인과적 요인인지, 아니면 두 현상이 단지 상관성을 보이는 것인지는 공중보건 정책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의 인과적 요인이라면, 인구집단의 비만 위험을 낮추기 위해 수면 부족을 야기하는 생활 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를 갖게 될 것입니다(실제로 미국의 일부 연구자들은 아동과 청소년 비만 예방 대책으로 충분한 수면 시간 보장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수면 부족과 체중 증가가 단순한 상관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면, 수면 부족이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비만 예방 정책으로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비만 예방을 위해 수면 부족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과 그런 주장에 회의적인 진영 사이에서는 꽤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남아있던 핵심적인 문제는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를 인과적으로 유발한다는 인구집단 수준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종류의 논쟁이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에서 벌어졌다면 실험실 내 실험이나 임상시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참여자를 대상으로, 인위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한 군의 사람들은 수면 부족 상태에 노출되도록 하고, 다른 한 군의 사람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도록 한 후, 두 군 사이에 체중, 음식 섭취, 활동량 등을 비교한다면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와 그 작용 기전을 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실험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Markwald 등(PNAS 2013)은 16명을 두 군으로 나누어, 5일 동안 입원실에서 각각 5시간 아니면 9시간 수면을 취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 군의 수면 시간으로 맞바꾸어 다시 5일을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입원실 환경에서 이루어진 연구였으므로 체중은 물론이고 음식 섭취, 활동량, 호르몬 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수면 부족은 체중 증가를 유발하며 이는 음식 섭취, 특히 야간의 탄수화물 섭취에 주로 기인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Markwald 등의 연구는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 기전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인구집단 수준에서 수면 부족과 체중 증가 사이의 인과성을 밝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구 대상이 16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제한점은 물론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5시간 아니면 9시간 자도록 되어 있는 실험의 프로토콜이 실제 생활 세계를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생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구집단 수준에서 수면 부족이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지를 보고자 하는 사회의학 연구는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요?

만일 한 인구집단에서 어떤 이유로 수면 시간이 상당한 정도로 변화하였고 다른 인구집단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두 인구집단 사이에서 수면 시간 변화와 체중 추이를 비교함으로써 수면 시간이 체중에 미치는 인과적 영향을 추정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수면 시간이 다르게 설정된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3월, 경기, 광주, 대구는 학원의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하였는데, 이 규제 정책의 결과로 해당 지역 일반계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의 평균 수면 시간이 다른 지역 학생들의 평균 수면 시간 변화 추이에 비해 상당 규모로 증가한 것입니다. 제가 2019년 11월에 역학(Epidemi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이 자연실험을 이용하여 수면 부족이 만연한 한국 청소년 인구집단에서 수면 시간의 증가가 과체중/비만 위험의 감소를 낳았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결과는 인구집단 수준에서 수면 부족과 체중 증가가 단순한 상관 관계가 아닌 인과적 관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인, 특히 청소년의 수면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짧아 부정적 건강 영향이 우려된다는 점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정책의 관점에서 건강 문제를 연구하는 저에게 수면이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수면은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 외 대부분의 동물까지도 공유하는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인간의 수면 시간은 사회마다 크게 다른 습관을 보이는 제도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일견 매우 개인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는 수면 시간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따라서 수면의 건강 영향을 연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 노동 정책 등 사회 정책을 시야에 포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인의 수면 부족이 환자 경험과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더 넓게는 고속도로 교통사고나 대량재해의 발생 이면에 흔히 인적 요인으로서 수면 부족이 숨어 있다는 점, 수면 부족에 기인한 위험과 손실을 사회가 부담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도 사회의학에서 수면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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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링크>
https://journals.lww.com/epidem/Fulltext/2019/11000/Causal_Effect_of_Sleep_Duration_on_Body_Weight_in.15.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