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용일 명예교수님을 추모하며 (병리학 교실)

김용일 명예교수(1935-2019)

병리학교실 김용일 명예교수님께서 2019년 9월 7일에 향년 85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소화기병리학과 간병리학 및 신장병리학 등 대한민국의 외과병리학이 오늘의 국제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병리학자로서, 또한 의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 교육자로서, 평생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오신 큰 스승이자 진정한 멘토(mentor)이신 김용일 교수님의 일생을 돌이켜보며, 스승님의 명복을 빌고 후학 병리의사로서 살아가는데 큰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는 1935년 6월 13일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김천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196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63년)와 박사학위(1968년)를 취득하셨습니다. 1964년 7월부터 1967년 7월까지 육군 군의관으로 근무하였고, 1967년 9월에 서울의대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1968년 6월부터 1970년 9월까지 미국 신시내티대학 병리과에서 레지던트 및 전임강사로 근무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병원병리학과 학생 교육의 질을 대폭 발전시키셨습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는 군사독재시절에 의과대학의 보직을 맡아 젊은 후학들을 감싸느라 애쓰시면서도 의학교육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의학교육연수원을 이끌어 오셨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의 발전을 이끌어 오셨을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병원 병리과장 및 제2진료부원장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대한병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셨으며 대한신장학회와 한국의학교육학회, 대한소화기학회 및 WHO-서태평양지역 의학교육협회 회장직을 두루 성공적으로 역임하셨습니다. 1998년에는 그 동안의 활동과 업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셨습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는 17명의 박사학위생과 14명의 석사학위생을 지도하여 배출하셨고, 재임기간 중에 7권의 단행본 저서와 8권의 chapter 저술을 하셨으며 555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아울러 일본병리학회지와 Pathology International 및 Human pathology 등의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으로 왕성한 학술활동을 하셨습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 이루신 빛나는 학문적 업적들은 병리학교실 후학들로 하여금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는 병원 진료나 논문 작성, 학회 발표 등 모든 학술 활동에서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는데, 이는 당신의 스승이신 이성수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학문을 추구하는 기본 태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업무 처리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치열한 삶을 사셨지만, 전공의와 전임의 및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하셨던 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주 대학원 강의가 끝나면 병리과 전공의들을 데리고 OB호프에 가서 독일식 족발 등 푸짐한 안주와 함께 생맥주를 사주시며, 병리과 전공의가 병리의사로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도록 시간을 같이 보내주셨음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병리교수의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매주 전공의들을 배려해 주시느라 애쓰신 스승님의 사랑에 새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병리 전공의 도중에 포기하고 진로를 바꾼 제자들을 아쉬워하면서, 병리 전공의 과정 중에 누구나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에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언제나 얘기를 하라고 격려하시던 말씀은, 제가 교수가 되어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 3개월 간격으로 병리학교실의 함의근, 이상국, 김용일 명예교수님께서 차례로 별세하시니, 이제는 진짜 병리학교실 역사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학문적 어버이이신 김용일 교수님을 떠나 보내며, 생전에 교수님께서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많은 교훈과 추억을 되새기게 됩니다. “착오를 통한 배움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슬라이드와 이야기하고 그 말에 귀 기울이면서 진리를 향해 다가가라”. “병리의사가 된 기쁨과 자기 성찰의 슬기를 배우라”. “가르치고 동시에 배우면서 터득하는 지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 “두드려라. 그러면 열린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해라”. “학문의 세계에서 큰 그릇을 빚으려면 조급하게 성과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 꾸준히 정진하라”. “마음에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병리학회에 참석하고 전공의들과 함께 방문한 성산일출봉 둘레 바위들을 보며, membranous nephropathy를 말씀하시던 김용일 교수님의 병리학적 위트가 문득 생각납니다. 이제는 그 모든 기억들이 과거형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김용일 교수님께서 그토록 애정을 갖고 가르침을 주신 후학들이 교수님을 좇아 열심히 병리학에 매진하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 보시리라고 믿습니다. 교수님의 날카로운 눈빛과 천진한 미소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2019년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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