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기]

Division of Gastroenterology, Stanford Medical Center 해외 연수기

김상균 교수(내과학교실)

제가 해외 연수를 처음 계획했던 시기는 지난 2009년이었습니다. 당시 막 새로운 기술의 concept이 시작되던 시점에서 frontier 역할을 하고 있던 한 기관에 연수를 하기로 하고, 비자 업무도 거의 완성되던 시점에 갑작스런 개인적 사정으로 연수를 무기한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존의 paradigm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분야를 이끌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으나,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그 기술은 아직 답보 상태에 있어 오히려 전화위복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근 10년이 지나 안식년을 맞아 장기 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10년 전과는 달리 이번 안식년은 새로운 기술이나 학문을 더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15년 가까운 시간동안 병원과 대학에서 한 가지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동안 사고의 시야가 너무 좁아졌음을 절실히 느껴왔습니다. 그동안 나름 약점을 극복해보고자 시도해왔던 방법은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보거나, 가급적 일주일에 한번 2,3시간 동안 혼자 등산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 정도로는 점점 변해가는 환경에서 교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서는 대개 “쉼”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전진”만이 미덕이라고 여겨 온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 휴식은 발상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또한 그 휴식은 잠깐이라도 자주, 또 아무런 계획없는 긴 휴식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무언가를 한다면 그건 진정한 휴식이 아닐테니까요. 일주일에 한번 주말, 7년에 한번 sabbath가 있는 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입니다.     

안식년을 보내기로 한 Stanford Medical Center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모태가 Stanford University인 점을 감안한다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의료 관련 전반을 경험할 수 있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와는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으며, 우리보다 큰 장점이 있는 반면, 오히려 그렇지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와 다른 부분과 장점은, 새로운 부문으로의 도전에 대한 기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고 결과가 별 의미없이 보이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수 없이 반복되다 보면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이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효율이 극히 낮다는 것은 우리의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물론 이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그런 시도 자체와 실패에 따른 반복이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는 대학, 병원, 연구재단, 정부의 규제가 너무 많아, 그것을 만든 기안자 조차도 모두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시도를 반복할 수 있는 노력, 시간, 비용에 대한 지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린 지금까지 fast follower로서 연구, 진료, 교육에서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추었으나, 새로운 paradigm을 창출하는데 있어서는 약점을 보여 왔습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현실이 따라주지 못함을 한탄해 왔습니다. 이제는 fast follower로서 2인자의 역할을 공고히 할 것인지, 주어진 환경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frontier의 역할을 주장할 것인지 고민하여야 할 시점입니다. 같은 환경이라면 우리가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단점으로, 규제가 적은 대신 비효율적인 관습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 만의 효율을 발휘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서의 교수 역할의 정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선두로 꼽히는 곳에서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기존 강의실 중심의 교육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함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대안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도 역시 새로운 시도가 늘 진행 중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발표된 자료를 보면 대학 교육에 만족한다는 비율이 매우 낮았습니다.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여서는 안되겠지만, 급변하는 환경에서 이에 걸맞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 절실함을 느꼈습니다. 

미국내에서도 전공의 혹사가 문제가 되어 9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 주당 8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근무 환경은 좋아졌으나 근무 시간을 엄수하여 일반 직장인화된 전공의와 교수가 마주 할 시간이 거의 없어, 전공의 교육은 과거에 비해 나빠졌다고 합니다 (실제 전공의 교육은 hospitalist와, 근무는 nurse practitioner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공의와 전임의의 진료 수준은 우리보다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우리도 과거에 비해서는 오히려 뒤쳐지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전공의 혹사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니, 합리적인 대안이 꼭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지난 수 년간 늘 고민인 문제였는데, 여기서도 같은 고민은 하는 것을 보며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게 한국의 실황을 묻고 조언을 구했는데, 저도 고민 중인 문제라 난감했습니다).

전 이제 대학과 병원에서의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일년은 앞으로의 후반기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쉼없이 달려온 전반기가 fast follower를 공고히 하기 위한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후반기에는 frontier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스탠포드 메디컬 센터 전경>



​※ 본 원고는 편집과정에서 원글의 취지와 다르게 편집되었다는 원저자의 우려가 있어 원글 그대로 다시 올렸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향후 기고문의 경우 기고자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편집과정에 만전을 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