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상국 명예교수님을 추모하며

이상국 명예교수(1929-2019)

병리학교실 이상국 명예교수님께서 2019년 6월 9일에 향년 91세로 별세하셨습니다. 41년간 서울의대 병리학교실에서 근무하시는 동안 현대의학의 도입기와 안정기 그리고 발전기를 거치면서 한국전쟁 후의 교실 재건과 이후 발전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셔서 오늘의 병리학교실을 이룩해 놓으신 큰 스승 松原 이상국 교수님의 일생을 돌이켜보며 스승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국 명예교수님께서는 1929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셨고, 1953년 2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제7회). 그때는 전쟁 중이라 졸업식이 부산에서 열렸으며, 서울대학교가 개교한 이래 입학한 졸업생으로는 처음으로 병리학교실에 입국하였는데, 한국전쟁의 어려운 여건에서 병리학을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교실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당시 교육요원 특명으로 군 징집 보류를 받고 조교로 임명되어 교실에 남았습니다. 한국전쟁 후 복잡하고 어려웠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선생님께서는 꿋꿋이 교실을 지키시고 교실 내의 온갖 어려웠던 일들을 순리대로 풀어나가셨습니다. 윤일선 교수께서 1946년 대한병리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계속 학회 사무실이 서울의대 병리학교실 내에 있었으며, 이상국 선생님은 총무로서 오랫동안 봉사하셨습니다. 

이상국 선생님께서는 1955년 8월부터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대학원과 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3년간 유학하시어 미국의 선진 병리학적 지식과 면역병리 지식을 축적하고 1958년 7월에 귀국하셨습니다. 이상국 선생님께서는 오랜 조교 생활 끝에 1961년 2월에 전임강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3월에 군 동원령이 내려 일년간 군복무 후 교실에 복귀하였습니다. 이상국 교수님께서는 1970년부터 안긍환 선생의 ‘상기도 종양의 병리조직학적 검색’을 지도하신 것을 비롯하여 이현순, 서정욱 선생 등 11명의 석사를 배출하셨고, 또한 1978년부터는 알레르기성 또는 면역병리학적 연구의 지도로 이현순, 이정빈, 박성회, 김우호 선생 등 13명의 박사를 배출하셨습니다. 또한 13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셨고, 4권의 저서를 출판하심으로써 병리학을 육성하는데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이상국 교수님께서는 1976년 3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병리학교실 주임교수를 맡으셨고, 1976년 3월부터 1978년 7월까지 그리고 1982년 7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두 번에 걸쳐 서울대학교병원 병리과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아울러 1984년 3월부터 1986년 4월까지 법의학교실 창설에 따라 법의학교실 초대 주임교수를 겸직하셨습니다. 1977년 10월에는 대한병리학회 회장에 선출되셨고, 1988년 6월에는 대한세포병리학회 회장에 선출되셨습니다. 

이상국 교수님의 선각자적 혜안이 오늘날 병리학교실이 교육, 연구 및 진료 전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애쓰신 면역병리학분야의 기초연구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울러 병리학교실의 업무 중 환자 진료와 관련된 병원병리학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시고, 의과대학 부속병원 시절부터 서울대학교병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병원병리학의 보급과 발전을 위하여 전력하신 보람이 있어, 이제 서울대학교병원뿐 아니라 국내 어느 종합병원에서도 병리전문의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당연한 상식으로 부각되었습니다. 

1994년 2월에 열린 이상국 교수님의 정년기념 모임에서 당시 윤택구 동문회장의 헌정사 중 일부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오늘로 약 40여년간의 교직생활에서 정년퇴임하시는 松原 李尙國교수님을 제가 처음 뵌 것은 부산 광복동의 전시연합대학이 피난살이를 끝내고 서울로 환도하여 개강한 첫 병리학 강의시간이었던 1954년 봄이었습니다. 그날 어느 늘씬한 한 젊고 말쑥하신 조교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고 윤일선 교수님의 강의내용이 흑판에 가득 차면 흑판 한구석부터 조심스럽게 지워 나가시던 모습과 특히 기초교실의 다른 조교선생님들에 비해서 유독 선생님의 까운은 새것 같이 깨끗할 뿐 아니라 장신의 거구에 무릎 밑 정강이까지 닿는 까운을 입으시는 것이 특징 이었음이 아직도 제 눈앞에 선 합니다.” 당신께서는 조교 시절 칠판을 지우는 수업보조 일을 성심껏 하셨지만, 제가 전공의 1년차 때 같은 일을 하려 하였더니 전공의가 칠판을 지우지 못하게 금하시고 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라고 배려하시며 칠판에 판서하신 것을 직접 지우시던, 희고 긴 까운을 입은 멋진 교수님의 모습이 제게도 선합니다. 

한국전쟁 후에 병리학교실을 재건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순리대로 행동하시며 기초병리학과 병원병리학의 발전을 이끌어 내신 병리학교실의 역사 그 자체이신 이상국 교수님, 부디 평화롭게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2019년 6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최기영

함의근 명예교수님을 추모하며

함의근 명예교수(1933-2019)

병리학교실 함의근 명예교수님께서 2019년 3월 8일에 향년 87세로 별세하셨습니다. 호흡기, 부인과, 유방, 골연부조직, 피부, 세포병리 등 외과병리학과 세포병리학의 주요 세부전공을 넓게 담당하시며, 동시에 관련분야 연구와 학생 강의 및 병원 행정 등 병리의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활동적으로 일하시고, 대한병리학회와 대한세포병리학회의 발전을 선도하여 오신 함의근 교수님의 일생을 돌이켜보며, 스승님의 명복을 빌고 후학 병리의사로서 살아가는데 큰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함의근 교수님께서는 1933년 4월 20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신안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5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서울의대 대학원에 입학하셨습니다. 바로 군에 입대하여 육군야전의무시험소 및 중앙의무시험소 병리과에 군무하시면서 틈틈이 병리학교실에 들러 교실 일을 도왔습니다. 교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던 1950년대 후반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군복무를 연장해가면서 국가에 봉사를 하여야 했고, 5년간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경찰병원 병리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석사학위는 1960년에 그리고 1966년에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1963년에 해부병리과 전문의제도와 1964년에 임상병리과 전문의제도를 창설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시면서 초년도 전문의(해부병리 면허 4호, 임상병리 26호)가 되셨습니다. 

함의근 교수님께서는 1965년 2월에 서울의대 병리학교실 전임강사로 임용되셨고 1998년 8월에 정년 퇴임시까지 33년 6개월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969년 7월부터 2년간 China Medical Board 장학금으로 미국 Baylor 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유학하여 선진의학을 배우고 귀국하셨으며, 그 후에도 미국 Baylor 의과대학(1977), Michigan 의과대학(1983), Toledo 의과대학(1988)의 객원 교수를 역임하시면서 선진 의학을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함의근 교수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1985-1989)와 법의학교실 주임교수(1985-1987) 및 서울대학교병원 병리과장(1986-1988)을 역임하여 병리학, 특히 병원병리학과 세포병리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제2진료부원장(1988-1992)을 역임하시어 서울대학교병원의 법인화와 발전기에 병원 행정을 통해 병원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셨으며, 재임 시 원칙에 따른 합리적이고 공평한 의사결정으로 정평이 나셨고 그 결과 관련 진료부서로부터 큰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아울러 대한병리학회장(1988), 대한암학회장(1991), 대한세포병리학회장(1991), 한국전자현미경학회장(1989) 그리고 대한법의학회와 대한결핵협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왕성히 활동하셨습니다. 

1961년에 발표하신 논문 ‘기관지 상피의 화생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람 폐암 발생의 초기 병리학적 변화를 규명하여 병리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후 실험동물의 기관지 상피세포의 화생, 만성 폐쇄성 폐질환, 뉴모시스티스 감염 폐의 전자현미경 소견에 대한 연구 등은 외국 학술지에 실려 호흡기 병리학 발전의 역사로 기록되었습니다.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부인과, 골연부조직, 피부 병리학 그리고 종양학과 전자현미경 분야의 논문을 200여 편 발표하셨고 30여명의 석사 및 박사 학위생들을 지도하셨습니다. 

교수로서 재직하시던 기간이나 그 이후에도 전국의 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등에 출강하시어 세포와 조직의 변성과 대사질환 등에 대한 병리학 강의를 매시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함의근 교수님의 강의하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쩌렁쩌렁한 힘찬 목소리, 눈이 마주치면 피할 수 없는 짙은 눈썹,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신 병리소견과 관련된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 등 교수님의 열정적인 명강의를 꼭 배워서 따라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염증성 폐질환과 폐암, 부인과 질환과 골종양, 피부병리학 그리고 세포병리학 분야에서 전공의와 전문의를 위한 각종 연수교육과 전문의 시험 출제와 문제은행 관리에도 모범을 보이시어 우리나라 병리학의 교육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호흡기, 부인과, 유방, 골연부조직, 피부, 세포병리 등 외과병리학과 세포병리학의 주요 세부전공을 다양하게 담당하셨기 때문에, 항상 많은 양의 슬라이드를 판독하셨습니다. 담당하신 세부전공이 모두 난이도가 높거나 검체량이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진료에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었으며 각 진료과와의 관련 집담회에도 자주 참석하셔야만 하셨습니다. 병원병리학을 담당하는 전문의, 특히 특정 세부전공을 담당하는 병리의사가 어떻게 진료하고 교육하는지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신 교수님의 롤모델을 잊지 않고 후배들에게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의 외과병리학과 세포병리학에 폭넓은 전문성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정년퇴임 후에도 병원병리학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셨습니다. 2008년 8월25일부터 11년 동안 부천세종병원에서 병리과장으로 근무하시면서 손수 현미경 판독과 진단을 하셨습니다. 2016년 12월 대장암이 발견되어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지만 병원 근무를 계속하셨습니다. 당시 84세이신 교수님께서 지하철로 부천세종병원까지 출퇴근하셨다는 것은 평소 건강과 체력 관리에 철저하셨고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동안은 주 3일로 업무량을 줄이기는 하셨지만 먼 거리를 출퇴근하시면서도 병리학 진단에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함의근 교수님께서 일생을 통해 보여주셨던 인내와 뚝심, 병리의사의 미션에 대한 성실한 일상, 저도 교수님처럼 지금 당장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 일의 가치를 믿고 꿋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사회공헌적 병리의사의 삶, 그리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본받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년 동안 30여 차례의 항암 치료를 거치면서 이제는 종양도 사라진 상황이어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활력을 되찾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황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교수님께서 다시 일하시는 모습을 뵐 수는 없겠지만, 한 평생을 바치신 병리학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가르침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교수님을 보내드릴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2019년 1월까지도 현직 종합병원 병리과장으로 근무하시면서 영원한 현역 병리의사의 삶을 보여주셨던 우리 나라 병리학의 큰 기둥 함의근 교수님, 보여주신 학자로서의 품위와 스승으로서의 가르침 그리고 포용과 화합의 인간미를 깊게 되새기며, 교수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 올립니다. 

 

2019년 3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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