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학생기고 -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와서

한희원 학생(본과 2학년) 

 

 

10월 5일 금요일, 인간 사회 의료 수업을 마친 후 벅찬 마음으로 바삐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드디어 가을이 되었고 전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세상에 막 나오는 따끈따끈한 영화들을 보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1호선을 타고 서면역에서 갈아탄 후 센텀시티에 도착하는 길 내내 예매해 놓은 영화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아직 세상에 선보이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첫 번째로 본 영화는 만타레이(Aroonpheng, 2018) 라는 몽환적인 영화였다. 한 어부가 죽어가는 한 사람을 구해주고 그와 같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일들로 구성되었는데,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였다. 엔딩이 모호하여 감독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나에게는 로힝야족이 처한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로 느껴졌다. 태국과 로힝야족의 관계를 두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매우 신선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첫번 째 영화를 재미있게 본 후 잠을 청하러 숙소로 향했다. 

거센 바람 소리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창 밖을 바라보니 나무들이 뽑힐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해운대 바다가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섭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밖에 나가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나는 친구와 함께 현장에서 판매하는 표를 구하기 위해 7시에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다. 티켓 판매처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원하는 영화를 보려고 꼭두새벽부터 태풍을 뚫고 왔을 그들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서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8시 30분이 되어 직원들이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 있는 모습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열심히 카탈로그를 뒤지며 티켓을 구입했다. 우리도 역시 원하는 티켓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 티켓 세 장을 가지고 영화의 전당을 나섰다. 하지만 상영관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태풍 콩레이의 위세에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매서운 바람은 사람들의 우산을 모두 다 뒤집어 놓았고 쏟아져 내리는 비에 하나 같이 물 폭탄을 맞은 생쥐가 되었다.  간신히 영화를 보리라는 일념으로 비바람을 뚫고 상영관에 도착하니 저마다의 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처절한 것 같으면서도 야릇한 승리의 기쁨으로 상영관에 들어갔다. 

두 번째로 본 영화는 친구를 살인한 혐의를 받은 한 여성이 겪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 피고인 돌로레스(Tobal, 2018)’라는 아르헨티나 영화이고,  세 번째로 본 영화는 한 유치원 교사가 자기 반 한 학생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 천재성을 발굴하는 데에 집착하게 되는 ‘킨더가든티쳐(Colangelo, 2018)’라는 미국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스토리가 매우 탄탄해서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영화를 연달아 보았는데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영화들이었다.

네 번째 영화를 볼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친구와 같이 숙소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결코 쉬지 못했다. 우리가 나간 사이에 문이 열려서 물이 방으로 들어와 매트리스가 물에 흠뻑 젖고 바닥에 물이 흥건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는 수건을 가지고 열심히 물을 닦으며 조금이라도 상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말리고 닦으면서 시간을 보낸 후, 오늘의 마지막 영화를 보기 위해 다시 센텀시티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번째 영화는 ‘벌새(Kim, 2018)’라는 한국영화로 중학생이 일상에서 겪는 일에 대한 잔잔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2병” 이라는 시기가 “오글거린다고” 단순히 희화화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고 개개인에게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인지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을 화면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주인공과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고 우리는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6시 반 까지 영화의 전당에 도착하여 티켓 구매를 위해 줄을 섰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보았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라는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다섯 번 째 영화는 ‘매직 랜턴(Naderi, 2018)’인데, 영화와 현실이라는 두 공간을 넘나드는 미국 영화였다. 한 남자가 영화와 현실 속을 드나들며 사랑하는 여자를 찾는 내용으로, 영화의 주인공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발상이 신선해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여섯 번 째 영화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만든 ‘이미지 북(Godard, 2018)’이라는 프랑스 영화로 아카이빙 영상들을 편집에 만든 실험적인 영화다. 영화가 매우 난해하여 잘 이해할 수 는 없었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훌륭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도그맨(Garone, 2018)’이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았는데 한 착한 수의사가 친구를 잘 못 사귀게 되면서 타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화 자체가 좀 잔인하여 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영상미와 미장센이 매우 뛰어나서 보는 내내 친구와 함께 감탄했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곱 편의 영화를  3일 동안 보았다. 태풍에, 물난리에 힘들기도 했지만 평소엔 자주 볼 수 없는 영화를, 그것도 완성도가 높은, 잘 만든 영화들을 이렇게 여러 편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 영화제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더 즐겁게 한 것 같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듣고 있으니 영화제에 다녀온 것이 마치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말했듯이 영화는 꿈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만타레이(Aroonpheng, 2018)  /  킨더가든티쳐(Colangelo, 2018)  /  이미지 북(Godard,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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