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의과대학 본과생들의 방학은 언제나 시작한 듯 끝나버리곤 합니다.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휴식시간이 아쉽지만, 그렇기에 추억이 더욱 소중합니다. 이번 호에는 모네와 고흐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던 본과 2학년 권세리 학생의 여행기와 CaSA 여름 진료를 다녀 온 본과 2학년 이주현 학생의 의료봉사 체험기를 싣습니다.

Paris est toujours une bonne idée: 파리는 늘 좋은 생각이야

권세리 학생(본과 2학년) 권세리 학생(본과 2학년)

드디어 22주만에 1학기가 끝나고 애타게 기다리던 본과 2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1학기 후반의 블록강의들 중 수능의 ‘국영수’에 해당하는 호흡기, 순환기, 그리고 소화기가 3-3-4주 동안 진행된 뒤였다. ‘여름방학 블록’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교육과정의 개편을 통해 3주가 되어버린 짧은 방학을 즐기러 우리는 모두 흩어졌다. 일부는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고 또 일부는 집밥을 먹으러 고향으로 간다. 집밥을 먹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나는 여행과 집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행운아다. 부모님께서 헝가리에 살고 계신 덕분이다. 그렇게 종강 다음 날인 7월 7일 기숙사를 뒤로 하고 헝가리로 출국했다. 집이 외국에 있다는 것은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는 게 여러모로 힘들기는 해도, 방학 때마다 유럽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장점이다.

학기 중에는 공부 외에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참 어렵다. 총 12개의 시험을 보는 동안 얼추 11번의 쉬는 주말을 이용하여 틈틈이 여행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파리다. 파리는 이미 세 차례나 다녀왔어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일반 관광객이 가볼 만한 박물관과 명소는 거의 다녀온 터라 이번엔 특별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꽃이, 특히 연꽃이 피는 계절의 파리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여행지를 가려고 할 때면 나는 그 도시에 관련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곤 한다. 파리의 경우 <Amelie>, <Midnight in Paris>등의 영화와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보고 갔다. 이베리아반도를 여행할 때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책을 읽고 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는 <I, Claude Monet>라는 다큐멘터리와 한국에서는 2017년 12월에 개봉한 유화 애니메이션 <Loving, Vincent>를 보았다. 결국 모네의 연꽃 그림들이 탄생된 Giverny와 고흐의 최종 목적지였던 Auvers-sur-Oise를 가기로 결정했다.

기본적인 일정을 계획하고 숙소 예약까지 마치자 출국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7월 11일 출국 예정이어서 다행히 집에서 한 숨 돌리며 집밥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서 지내다 보니 아침에는 부모님 출근시간에 맞춰 6시에 아침을 먹었다. 졸음을 참다가 8시쯤 잠이 들었고, 11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은 뒤 또 오후에 낮잠을 잤다. 하루 일과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집이 주는 여유를 맘껏 누려보는 것도 행복했다. 10일쯤 되어서야 짐을 싸고 11일에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을 향했다.

나는 혼자 가는 여행을 즐긴다. 뒤따르는 책임이 큰 대신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면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이번 여행도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국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나와 여행 일정이 겹치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파리에 머무는 4박 5일 중 2박 3일을 동행했다. 12일에 친구와 함께 Vernon-Giverny행 기차에서 아침을 먹고 도착한 모네의 마을은 작고 조용했다. 모네가 살던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모습을 꽤 오랫동안 유지했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날씨는 끝내주게 좋았지만 햇빛이 뜨거워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다 관광객 뿐인 것 같았다.

모네의 집이 있는 모네의 정원에 들어섰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잘 정돈된 다른 정원과는 달리 그야말로 부조화의 극치를 보였다. 온갖 모양과 색깔의 꽃들이 뒤섞여 있는 화단은 시간이 좀 지나고서야 적응이 됐다. 전혀 예상했던 광경이 아니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화가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화가들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모네와 고흐라고 할 것이다. 모네의 그림, 특히 연꽃이 있는 연못 그림을 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상상이 덧칠해진 것은 아닐까? 저런 모습을 띠는 연못은 본 적이 없는데 연꽃을 색다르게 보이게 하려고 색을 더 입힌 것은 아닐까? 했었는데, 길 건너편에 있는 연못을 보러 갔다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헝가리어로는 이런 상황을 ‘kellemesen csalódik’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분 좋게 실망했다는 뜻을 갖고 있다. 기대와는 다르지만, 그것이 전혀 나쁘지 않다는 소리다. 연못 주변에 심겨져 있는 식물들과 나무들이 일렁이는 물의 표면에서 그려지는 모습이 모네의 그림에서 표현된 그대로였다. 연못 주위를 도는 내내 사진기의 셔터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1 모네의 정원 그림1 모네의 정원

연꽃의 마법에서 풀리지 않은 채로 모네의 집과 정원을 돌아본 후 파리에 돌아와서도 친구와 나는 Giverny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친 김에 오래된 화방에도 들러 스케치북과 도구들을 샀고, 함께 그림도 그렸다. 다음 날 친구가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에 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또 몇 개월 동안 못 보게 될 터였다. 그렇지만 각자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는 만큼 지금 함께 하는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카페에 앉아서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림2 친구와 나. 화방의 벽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림2 친구와 나. 화방의 벽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다음 날도 우리는 좀더 같이 있고 싶어 새벽에 에펠탑을 보러 갔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느긋하게 사진을 찍은 뒤 센느강을 따라 걷다가 에펠탑이 보이는 어느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그림을 그리다 친구의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서 작별인사를 했다. 혼자 여행하는 게 좋다는 나였지만 곁에 있던 친구가 떠나고 나니 허전해서 얼른 이동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파리에 머물기로 한 날이어서 보고 싶었던 박물관들을 둘러본 뒤 호텔방에서 낮잠을 잤다. 그리고 저녁 시간 때쯤 룩상부르크 공원에 갔다. 묵고 있던 호텔에서 버스로 30분 정도의 거리라 부담 없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다음 날 예정된 고흐의 도시를 보러 가기 전에 고흐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감정 이입을 하고 싶었다. 룩상부르크 공원은 부모님과 함께 왔었기에 좋았고, 공원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때문에도 좋지만, 오기 전에 읽은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때문에 더욱 아끼는 장소가 되었다. 과거에 김환기 선생님과 김향안 선생님이 파리에 살았을 때 거닐었을 룩상부르크 공원에 내가 와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김환기 선생님과는 다르게 고흐는 사랑과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죽기 전까지 한 여자 곁에 정착하지 못했고, 예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 고흐는 다양한 도시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만 봐도 얼마나 고흐가 힘겹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Arles이라는 도시가 <예술가의 방>,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의 작품이 탄생한 곳이라면, Auvers-sur-Oise에서는 그가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내면서 <우아즈의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밭> 등의 작품을 그린 뒤 묻히게 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날은 7월 14일로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불꽃놀이나 퍼레이드 등의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Auvers-sur-Oise로 향했다.

고흐는 Gachet 박사와 상담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동생의 지원금을 아껴가며 숙식을 해결했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지도를 확인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Gachet 박사의 집부터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고흐가 실제 살았던 라부 여관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좁은 방과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있었다. 이들을 보고 나오면서 고흐의 무덤에 가져다 줄 해바라기 한 송이를 샀다. Gachet 박사의 집을 향해 걸었다.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인데 그늘 한 점 없는 시골길이라서 그런지 너무 덥고 지루했다. 그만 돌아갈까 생각할 때쯤 정원이 있는 2층짜리 집이 나타났다. Gachet 박사는 이곳에서 딸, 도우미와 함께 살았는데, <Loving, Vincent>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공휴일이어서 조용히 혼자 구경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직 품 안에 있는 해바라기의 주인을 찾기 위해, 마을의 반대쪽 끝에 있는 고흐의 무덤과 고흐가 그리던 밀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보다는 높은 곳에 있는 밀밭까지 등산을 하다 보니 이 길을 걸었을 고흐가 그려졌다.

그림3 고흐의 무덤으로 가는 길의 밀밭- 부지런했던 그는 매일 그림도구들과 이젤, 그리고 캔버스를 들쳐 메고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림3 고흐의 무덤으로 가는 길의 밀밭- 부지런했던 그는 매일 그림도구들과 이젤, 그리고 캔버스를 들쳐 메고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밀밭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에 묘지가 있었다. 이 묘지에는 지금도 동네 사람들이 묻히고 있고, 한쪽 구석에 고흐와, 그의 남동생 테오가 같이 묻혀 있다. 둘의 무덤 위에는 담쟁이 넝쿨이 잔뜩 자라 마치 하나의 무덤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고흐의 무덤 위에 해바라기를 얹어 놓으면서 테오 몫까지 준비하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그렇지만 우애가 깊은 형제였기에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묘지를 나왔다. 무겁고 귀찮았어도 고흐가 좋아했던 해바라기 사기를 잘 샀다는 생각을 하며 파리로 돌아왔다.

짧디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지금은 강의실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다. 일상을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의 색다른 경험들이 힘든 일을 버티게 해주고, 모험을 하면서 맺은 인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다. 채찍에는 당근이 적절하게 필요하다. 본과 2학년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2018년 하반기의 당근은 10월의 제주도 여행과 1월 겨울방학 때 가게 될 아이슬란드 여행이다. 물론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장의 시험들을 헤쳐 나가는 게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이렇듯 힘든 일상을 잘 이겨내려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데, 나에겐 그게 여행이다.

CaSA 여름 진료를 다녀와서

이주현 학생(본과2학년) 이주현 학생(본과2학년)

7월 18일 오전 6시. 조용해야 할 학생회관 앞이 50여명의 학생들로 북적입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120인분의 요리기구, 침낭, 진료소에서 빌려 온 각종 의료기구들을 차례대로 버스에 싣고 나니 비로소 학생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드리웁니다. 서울대 간호대, 의대, 치대, 약대, 그리고 연세대 물리치료과가 연합하여 진행된 CaSA의 꽃이라 불리는 여름 진료의 시작입니다.

강원도 고성에서의 4박 5일은 모두에게 저마다 다양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CaSA를 들어오고 처음으로 여름 진료에 참가한 62기 후배들에게는 정체 모를 설렘으로, 내년 여름 진료를 책임져야 할 우리 61기 친구들에게는 긴장감으로, 집행부의 끝자락에 들어선 60기 선배들에게는 시원섭섭함으로, 그리고 이런 우리를 바라보시며 함께 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에게는 뿌듯함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사실 학생들이 주최하는 봉사 캠프가 과연 얼마나 짜임새 있게 진행될까 하는 의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진료소 세팅조와 지역사회답사조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에 진지하게 임하는 학생들을 보니 앞으로 다가올 3일간의 진료가 허황된 규모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고성군의 의료 소외지역이라 여겨지는 몇몇 마을을 돌아다니며 비상약품을 어르신들께 나눠드리고 혈압 및 혈당을 측정해드렸던 지역사회답사가 참 진하게 남습니다. 뜨거운 땡볕에서 쭈뼛거리며 문 앞에 서 있던 저희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 주시며 선뜻 당신께서 누워 계시던 이부자리까지 내주시던 할머니, 얼마나 더웠겠느냐며 손수 냉커피를 타 주시던 할아버지, 다음에 고성을 오게 되거든 꼭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며 버선발로 배웅해주신 할머니, 혈당 측정을 위한 채혈이 서투른 저희에게 몇 번이고 연습해 보라며 손을 내주시던 할아버지까지. 전해드렸던 비상약이 무색하리만큼 따스한 사람내음이란 선물을 오히려 저희가 받았던 것 같습니다.

3일간의 여름진료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약국, 물리치료, 치과, 예진, 접수, 진료과 모두가 정신 없었습니다만, 쉬어가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표정만은 한없이 밝았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과 이런 기회가 주어졌음에 대한 감사함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학생들 뒤에는 직접 모범이 되어주신 선생님께서 계셨습니다. 고성이라는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피곤하실 텐데도 점심까지 걸러가며 환자를 먼저 생각하시는 선배님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눈이 어두워 잘 안 보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큰 글씨로 주의해야 할 음식 등을 손수 적어드리며 설명해주시는 그 모습이 제가 생각한 의사의 소명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여름 진료가 드디어 끝났을 때 아마 모두가 CaSA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짙어졌을 것입니다. 선후배가 보다 가까워지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낸 연대 물리치료과, 서울대 치대, 그리고 약대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어색해진 지난 4박5일은 분명 어려움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는 가슴 따뜻해지는 추억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모두가 이번 여름캠프에서 받은 행복감을 잊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시 이 행복을 나눠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