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 학생기고]


정한별 학생(본과 2학년)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갑작스럽게 꽃이 피었다가 이내 져버려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그렇지만 꽃만 새로운 것은 아니죠. 계절이 돌아온 지금 연건 캠퍼스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고달픈 일정에 금세 지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싱그러웠던 본과 1학년, 정현수 학생과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정현수 학생(본과 1학년)

Q.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정현수라고 하고요, 이번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으로 학사 편입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Q. 그렇군요. 제일 궁금한 건 지난 한 달 간의 소회예요. 어떠셨나요? 어떤 것이든 괜찮아요. 힘들었든 좋았든요.

A. 좀 이상했던 거는… 아. 제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취직을 했고, 그래서 다들 큰 변화를 겪었거든요. 다들 학생이었다가 신분이 바뀌어서 이사를 가느라 집도 바뀌고, 사는 방식도 바뀌고. 전반적으로 변동이 많은 시기예요. 그렇게 친구들이 사회인으로서 한 발짝 나가고 있다면, 저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보니 그런 것에서 오는 묘한 감정이 있어요. 이상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Q. 그렇죠. 밖에 있는 친구들은 다들 직장인인데 또 여기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전부 학생이잖아요. 공감이 많이 돼요.

A. 맞아요. 맞아요. ‘그렇다면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간 걸까 아니면 오히려 물러선 걸까?’ 하는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신입생이면 뭔가 파릇파릇하게,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다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외적인 이유로 고민도 좀 들고…. 나의 전체 삶에서 어느 단계쯤에 있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더라고요.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Q. 들어오면 마냥 좋을 것 같았는데 심지어 학기 초에도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그쵸? 저도 그랬어요. 그렇다면 혹시 즐거웠던 부분도 있나요?

A. 네. 일단 혜화에 사는 게 로망이었어요. 이런 방식으로 현실화될 줄은 몰랐지만, 공연도 보고 그런 거요.


Q. 그렇지만 실현하기 되게 어렵긴 하잖아요.

A. 그렇긴 해요.


Q. 아. 작년에 저는 국제생활관(방송통신대학교 뒤쪽에 있는 기숙사)에 살았었어요. 기숙사에 돌아가려면 마로니에 공원을 꼭 거쳐야 하는데, 내가 그 안에서 로망을 실현하는 주체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 안에 있는 걸 구경하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회복되는 게 있다고 느꼈어요. 비슷한 감정이려나요?

A. 네. 저도 대학교 1, 2학년 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대학로에 와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갔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극장 이름만 들으면 어플 도움 없이도 지도가 그려졌어요. 알아서 찾아갈 수 있을 만큼요. 심지어 공연 스케줄을 미리 꿰고 있기도 하고요. 그때에는 나도 대학로에 살면서 때마다 공연 찾아보며 살고 싶다고 생각 했었어요. 물론 대학로에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충분히 챙겨볼 수는 없죠. 그렇지만 오가다 보면 공연 현수막 같은 것들이 많이 걸려있거든요. 그걸 보면 옛날 생각이 나요. 이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조금씩 다시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또 다들 엄청 착하더라고요. 각자의 배경도 무척 다양하니까 사람 만나는 재미가 있어요. 수업 스타일도 학부 때 들었던 것과 많이 달라서, 힘든 점도 있긴 하지만 그냥 재미도 있고….


Q. 어떤 점이 특히 다르다고 느꼈나요?

A. 학부 때에는 최대한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접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어요. 반면에 의대의 경우에는 대다수 학생이 의사가 될 것이라는 전제를 공유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수업 스타일도 좀 다르달까요? 예전에는 여러 수업 중에서 듣고 싶은 걸 직접 찾아보고 결정했는데, 지금은 의사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지식만 해도 너무나 방대하다 보니…. (웃음) 당연한 거지만 그게 신기해요. 교수와 학생의 관계도, 그리고 학생끼리의 관계도 훨씬 더 ‘공동체’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Q. 그렇죠. 관계가 수업을 넘어서서 전반적으로 장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죠.

A. 교수님들 역시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셨던 분들이고, 거기에서 오는 특별한 동질감 같은 것들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Q. 첫 해부 실습을 하신 걸로 알아요.

A. 네.


Q. 제 기억이 맞는다면 첫 실습을 앞두고 자신의 소회 이런 걸 과제로 냈던 것 같은데…

A. (웃음) 네. 맞아요.


Q. 느낌이 어땠어요? 일단 위령제부터요. 기억나는 분위기나 본인의 감정 같은 것들이 어땠어요?

A. 저는 음…. 뭐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분들이 어떤 마음들이 시신을 기증했을까. 아마도 의학 교육에 이바지 하겠다는 마음이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가지셨을 마음과 우리의 현실적인 상태가 너무 다른 거예요. 다들 하얀 실험복을 입고 왔는데, 포장되어 있던 새 걸 꺼내 입느라 길다랗게 주름이 잡혀있더라고요.


Q. (웃음) 뭔지 알아요. 다림질도 채 되지 않은 날것의.

A. 그걸 입고, 다들 행정관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고 쫓아가는데.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의 뜻과 우리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가 있는 것 같은 거죠. 그게 이상했어요. 그분들은 정말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기증을 하셨을까….


Q. 그 숭고한 정신에 충분히 합당한 사람인지 자신이 없죠.

A. 맞아요, 맞아요. 우리가 너무 어린 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위령제 분위기가 되게 엄격하잖아요. 혹시 울거나 하는 친구들은 없었어요?

A. 감성적인 분위기가 있긴 했는데, 그런 친구들은 못 본 것 같아요.


Q. 그렇군요.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가도 나중에 가면 해이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그렇다면 첫 실습은 어땠어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제모부터 했던 것 같고…. 그쵸?

A. 다들 그렇잖아요. 사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이고,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정확히 맞는 건지 잘 모르거든요. 심지어는 이 카데바를 뭐라고 지칭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더라 고요. 이 분이라고 하면 되는 건지, 이것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지. 다들 아무 것도 모르는 와중에, 그래도 쿨한 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익숙한 척.


Q. (웃음) 어른스러운 척. 의연한 척.

A. (웃음) 선생님이 시작하라고 하시는데 ‘어떡해~’ 이러면 안 될 것만 같아서 그저 익숙한 척,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했어요.


Q. 첫 실습을 지나서 이제 또 첫 시험을 앞두고 있잖아요. 기분이 어떠세요? 주변 분위기라든지, 본인의 감정이라든지.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A. 다들 정말 열심히 해요.


Q. 3월이 특히 살벌하죠.

A. 그냥 다같이 공부하러 가는 만큼 공부 자체에 대한 큰 불만은 없는데, 음…. 좀 기초 과목들 공부를 할 때에는, 제가 아무래도 생화학, 생리학 같은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 있어요. 남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공부 의욕이 조금 저하될 때가 있거든요. 실컷 공부를 해서 ‘아 이제 이해를 했어!’ 라고 느끼는 순간,


Q. 이제 간신히 선을 맞췄다는 생각이 드는. (웃음)

A. 네. (웃음). 그렇게 돼요. 시간이 넉넉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또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1등을 해야만 하고, 그런 욕심은 또 없거든요.


Q. 걱정하지 마세요. 결국 다들 잘 하더라고요. 요령을 체득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다른 전공을 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대부분 적응해서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전 물론 아니에요. (웃음)

A. 적어도 쓸데 없는 지식을 배우는 느낌이 없어서 좋아요.


Q. 다행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목마다 호오가 있기 마련이고, 또 듣기 싫은 수업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A. 아직까진…. (웃음) 아직까지는 없어요. 언젠가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불만 없어요.


Q. 정말 좋은 생각 같아요.

A. 감사합니다.


Q.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은 따로 있나요? 자신만의 대처 법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 동안 활용해온 것이어도 좋고 이번에 새로 고안한 것이어도 좋아요.

A. 음…. 저는 집에 고양이가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고양이에게 이야기하고…. 산책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음악을 들으면서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요. 음악에 관심이 많아 동아리 활동도 하고 했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조금 어려운 상태예요.


Q.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각자 알아서 풀어야 하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혹시 제도적으로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은 있나요? 사실 혼자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첫 시험은 더 그렇고요.

A. 아! 생각났다. 저는 예전에 필라테스를 했었는데, 그럴 때 스트레스가 정말 많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좀 웃기긴 하지만, 그런 맥락에서 단체적으로 할 수 있는 신체활동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외부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학교 일정하고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9시 수업이면 7시 정도에 한 시간짜리 요가 클래스가 있다든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시험기간에야 다들 바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정말 호응이 좋을 것 같단 생각도 드네요. 그러면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개인적으로 꿈꾸는 의사상이 있나요? 아직 이른 질문 같기도 하지만, 혹시 추상적인 수준에서라도 꿈꾼 것이 있다면 궁금해요. 롤모델도 좋고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뭔가 자기소개서를 다시 봐야 할 것만 같은….


Q. (웃음) 거기에는 뭐라고 썼어요? 정서적인 답변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기술적으로 어떠한 진로를 꿈꾸는지 이야기하셔도 되고요.

A. 남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전부터 그렇게 성장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의사가 된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테니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학교를 한 달밖에 안 다녔지만, 저는 벌써 정말 많은 것을 받았어요. 의과대학 입학을 하기까지 과정에서도 그렇고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으로 얻은 지식이라면, 다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걸 쓰는 게 당연하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