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마당 - 학생기고]

인도 한센병 필드스터디를 다녀와서


한희원 학생(본2)

질병이란 “유기체의 신체적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감기를 걸리는 것부터 암에 걸리는 것 모두 다 단지 신체적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되어 불편함을 느끼거나 고통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즉, 질병의 유무는 사람들의 건강을, 건강만을 설명할 수 있는 지표이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죄가 아니며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사람이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한센병 역시 질병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센병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성경에서도 저주와 같이 묘사된 이 질병은 사람의 형상을 “망측하게”, “흉하게” 만든다. 이 질병은 사람들의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망가뜨리고 심지어 그들의 시야까지 앗아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힘들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한센인들의 고통에 사회는 소외로 보답했고, 이들과 섞여 사는 것이 너무 싫었던 사람들은 그들을 한 지역으로 몰아넣어 격리수용소를 만들고 사회 속에서 지웠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서울의대 건강사회교육센터에서 주최하는 지역의료 희망캠프로 인해 나는 2박 3일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소록도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았던 나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른 채로 소록도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었다. 어르신들의 세 끼를 챙겨드리고 어르신들을 닦아드리고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많은 것들을 해드릴 수 없었지만, 그분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정을, 웃음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그분들의 말씀은 나에게 아픈 깨달음을 주었다.

최만호 할아버지께서는 13살 때 한센병에 걸리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형제들과 자매들은 할아버지를 가두고 세 끼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이 생활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드셨던 할아버지는 길거리 생활을 시작하셨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아무 이유 없이 때렸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할아버지를 때렸고 하셨다. 길바닥생활에서 전전긍긍하시던 할아버지는 소록도에 들어오시게 되었다.

소록도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않으셨다고 했다. 일본강점기 때의 소록도 병원장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막노동을 시키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고 해방 이후의 병원 관계자들의 환자들에 대한 처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힘겨운 생활을 견디셔야 했다고 말씀하실 때 할아버지의 얼굴이 정말 슬퍼 보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소록도에서의 시간이 차라리 더 나았다고 말씀해주셨다. 힘든 막노동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이 사람들의 삿대질과 혐오였다고, 소록도에서는 편견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행복했다는 말을 해주셨다.

소록도에서의 짧았던 2박 3일의 시간을 보내고 버스에 타면서 막연하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질병은 그 질병 자체로만 생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 세상 아무 누구도 어르신들께서 겪으셨던 고통을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견뎌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있는 내내 휴대전화로 한센병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이 질병이 가진 오래된 역사, 이 질병 치료의 간단함 모두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매우 놀라웠다. 하지만 그중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이 질병의 세계적인 유병률이었다.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이 전염성이 매우 낮은, 쉽게 치료할 수 있는, 하지만 무서운 후유증을 남기는 이 질병에 걸리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잔인한 시선들과 편견들로 인해 사회의 변두리로 추방당하고 있었다. 대략 300만 명의 사람들이 한센병으로 인한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매년 약 22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 감염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 후 나는 한센병을 주제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센병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찾아본 모든 책, 모든 논문이 빠짐없이 인도에 대해, 인도에 있어 한센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2012 년에만 인도에서 134,752건의 새로운 사례가 발견되었고 이것이 매우 과소 평가된 수치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내 관심은 자연스럽게 인도로 향했다.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직후 나는 동기 중에서 한센병 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을 물색하였고 결국 마음이 맞는 3명의 친구와 함께 인도로의 필드스터디를 계획하게 되었다. 일단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델리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20개의 한센병 관련 NGO에 내 입장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정말 다행이게도 3개의 NGO로부터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대답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세 개의 NGO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본 후에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LEPRA 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무턱대고 찾아간 인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인도에서 가장 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 중 하나인 비하르 지역에 가게 되었고 비하르의 state coordinator Rajni Kant Singh 선생님과 함께 여러 leprosy colony와 leprosy center 들을 방문하면서 어떻게 환자들이 진단되는지, 어떠한 치료들이 어떤 방법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라즈니 선생님 한 분의 전문성, 관심, 그리고 의지가 수많은 사람의 삶의 질을 증진하는 것을 보고 국제 보건에 있어 훌륭한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라즈니 선생님께서 관장하시는 센터들은 잘 운영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leprosy colony 들이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센병 환자들이 어떠한 편견 속에 살아야 하는지 직접 그들에게서 들은 후이기에 답답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도 정부의 새로운 정책(elimination의 정의를 1 case in 10,000 people로 바꾸어 인도를 leprosy free country이라고 발표함)으로 인해 한센병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의 후원금이 40% 정도 삭감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leprosy의 발병률이 실제로는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마지막 여정은 네팔과 인도의 접경에 있는 Little Flower Hospital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Little Flower Hospital은 마더 테레사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지은 병원으로, 이곳에는 3,000명 정도의 환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Little Flower는 dairy farm, scarves manufacturing 시스템을 운영하며 얻어지는 이익으로 마을에 사는 3,000명을, 그리고 비하르 지역의 다른 leprosy colony 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교육과 의료를 무료로 지원하고 심지어 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일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달 지원금을 주고 있었다. 카비타 바타하리 라는 월드뱅크에서, 캐나다의 여러 NGO에서 일한 경력 있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었다. 카비타 선생님의 Little Flower Hospital에 대한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믿음에 나는 울컥했다.

하지만 Little flower에도 역시 많은 문제가 있었다. 한센병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들면서 카비타선생님께서 실행에 옮기려 한 많은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겼다. 원자재를 계절에 맞게 저렴하게 구매하여 실크 제작에 들어가는 input을 줄여 이윤을 증가시키려고 했던 노력이 금전적인 지원이 끊기면서 무마되었고, 학생들을 위해 지은 학교는 지붕이 씌워지지 않은 채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제일 심각한 문제는 Little Flower Hospital에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많은 사람을 관리하는 병원에는 단 한 명의 물리치료사 그리고 세 명의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간호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의 환자들이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지역에 있는 또 다른 병원인 Duncan hospital에 refer 하여 돈을 내고 치료를 받는다. 카비타가 말하기를 이 지출만 없어도 자신의 시스템은 sustainable 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안타깝다는 느낌보다 화가 났다. 이렇게 사람들이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의 지원만 있으면 비상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이 지원이 끊김으로써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colony들이 인도에 수 십 개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리고 너무 답답했다. 한국으로 얼른 돌아가서 뭐라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많은 일을 벌여 보고자 한다. 스카프를 팔 수 있는 펀드레이징 이벤트를 세워서 카비타가 건강한 소를 마련할 수 있는, 계절에 맞게 raw material 을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해주는 것을 돕고 싶다. 올해 여름에는 관심 있는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Little Flower를 방문해서 의료 봉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의료봉사를, 아직 그 수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노력봉사를 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한센병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병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보려고 한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인도가 leprosy free country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문을 작성하여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다. 이 많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도전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도움을 보탠다면 변화가, 그 변화가 매우 작든 크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도 후기


손진영 학생(본3)

처음 도착한 파트나의 공기는 차갑고 습했다. 비행기를 놓칠 뻔 하기도 하고 도착지가 아닌 다른 곳에 착륙하기도 하며 도착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난 때에 어렵게 도착한 파트나였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낮아진 상태였다. 그냥 인도에서 안전하게만 돌아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만 했다.

그 다짐은 라즈니 선생님을 만난 직후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라즈니 선생님의 아주 신난 목소리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6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하며 우리에게 비하르의 한센병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정도의 시간 동안 라즈니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하르에서는 한센병이 아직도 active phase에 있다는 것, 그리고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면 큰 후유증 없이 지낼 수 있지만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가 늦어지면 심각한 장애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한다는 점, 사회적 낙인이 심각한 질병이라 한번 걸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LEPRA와 Little Flower Hospital 같은 NGO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기는 힘들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함께 돌아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연구 아이디어를 몇 가지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손발의 말초 신경부터 손상되기 때문에 손발의 근육들이 atrophy가 일어나기 쉽다. 또한 발의 한쪽 부분만 땅에 눌리면서 궤양이 생기고 그것을 통한 심각한 감염이 일어나 열이 자주 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것의 해결을 위해 LEPRA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푹신푹신한 소재의 샌달을 만들고 있었다. 시판되는 샌달들은 딱딱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신었을 때 발 보호 효과가 없는 샌달과 달리, 이 샌달은 환자 발 모양에 맞춤 제작된 쿠션을 사용한다. 샌달 장인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환자들에게 신발을 만들어주는데, 이 샌달 사업에 조금 더 힘이 실려서 더 많은 샌달 장인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한센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걸음을 선물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업을 지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연구 주제를 생각해보았다.


LEPRA가 활동하며 샌달을 만들어주고 있는 지역과, 그런 활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 지역에서 한센병 환자들 중 궤양이 생긴 사람들의 비율을 우선 조사한다. 이후 궤양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의 정도와 샌달 사업에 대한 만족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윤(치료비 절감, 질병으로 인해 일하지 못하는 날 최소화)을 확인하는 mixed method 연구를 진행한다면, LEPRA활동의 경제성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2.

라즈니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LEPRA Patna office에 가서 인도의 한센병 현황에 대해 배웠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병률을 비하르에 있는 작은 구역별로 정리해놓고 그것을 매달 추적 관찰한 자료였다. 몇 년 전부터 정리된 자료들이 엑셀 파일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중 어떤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들보다 유병률이 확연히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지역들에서는 한센병 관리를 아주 잘 하기 때문에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를 보이는 줄 알았는데 라지니는 그 반대의 설명을 했다.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제대로 조사가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훨씬 유병률이 낮으며, 실제로는 더 높은 수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병률이 높게 표시된 지역들에서 오히려 추적 관리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라즈니 선생님 개인이 예측한 것이더라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것은 아주 심각한 상황으로, 정부 또는 지역 사회에 허위로 수치들이 보고되기 때문에 유병률이 실제로는 아주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상으로는 아주 낮게 표시되어 제대로 된 지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잘 관리가 되고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유병률이 높아서 지역사회 관료들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수치들이 높게 나온 지역과 낮게 나온 지역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연구를 생각해보았다. 비하르에서 보고된 유병률이 높은 지역부터 낮은 지역까지 총 5개 군으로 묶고, 각 군에서 한센병을 위해 어느 정도 투자되고 있는지, 그 지역들에서 하는 대표적인 유병률 조사 사업 method는 어떤지 qualitative method로 조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기관 중 하나는 Little Flower Hospital Village이다.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 위치한 병원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이다.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을 inpatient, outpatient로 모두 진료하는데 비하르 지역의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먼 지역(예를 들어 델리 등)에서도 환자들이 방문했다. 이 병원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병원이 유지되고 잘 돌아가며 많은 환자들이 찾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원에 초진을 보는 환자들에게 Little Flower Hospital에 오게 된 경로, 그 전에 다른 병원들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어느 지역에서 내원했는지, 해당 지역에 있는 병원의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qualitative하게 연구하면 좋을 것 같다. 미래에 기회가 된다면 연구자로서 이런 주제로 연구를 하여 한센병 환자들에게 거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소외된 질병 환자의 수호자 LEPRA Society


김성환 학생(본2)

LEPRA는 나병을 정복하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 자선 단체이다. 나병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의 삶에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장애를 일으킨다. 세계적으로 매일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단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데 그 중 50명 이상이 어린이다. 치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부족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전 세계적으로 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진단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병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조기 진단하고, 사회적 낙인과 맞서 싸움으로써 이 병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지원하는 것이 이 단체의 주된 활동이다. 작년(2016-2017)에는 25만2천명 이상의 나병 환자들을 만나 치료하고 지원하였고 130만 명의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보건교육을 제공하고 병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현재 이 단체는 다음의 활동을 통해 나병뿐만 아니라 림프사상충증 환자도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1. 나병 진단과 치료. 3.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4. 림프사상충증 퇴치. 5. 보건 종사자 교육. 6. 장애인 생계 지원 7. 지역 사회 보건 교육 8. 환자 맞춤형 신발 제작.

현재 LEPRA는 방글라데시, 인도 그리고 모잠비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인도에서는 현재 Bihar, Delhi, Jharkhand, Madhya Pradesh, Odisha, Telangana 이렇게 여섯 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LEPRA의 프로젝트는 12개에 달한다. 우리가 간 곳은 인도의 동북부에 있으며 네팔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Bihar 인데, 겨울의 Bihar은 밤에는 최저 0도까지 떨어지고 낮에는 따스한 햇빛 덕에 10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일교차가 꽤나 큰 곳이다. 이번 인도 방문 동안 Bihar 주에 위치한 LEPRA Bihar 본부, SPARSH center, Munger LEPRA center, Little Flower Hospital 이렇게 네 곳을 방문하였고 이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고 있는 LEPRA의 프로젝트들을 목격하였다.


1. LEPRA Bihar 본부

위에서 소개하였듯이 LEPRA는 인도의 여섯 개의 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Bihar 주에서 LEPRA의 활동과 나병에 대한 보건 실태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방문 LEPRA 기관은 Bihar에서의 LEPRA 활동을 총괄하는 본부였다. 본부는 Patna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우리는 라즈니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라즈니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반겨 주셨고 우리에게 Bihar 지역, LEPRA 활동, 나병 진단과 치료, 앞으로 함께할 우리의 일정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위의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Bihar 지역의 LEPRA 지원 기관은 네 곳의 Eye care 센터, 한 곳의 Mobile footwear unit, 아홉 곳의 NTDRU-RC(Neglected Tropical Diseases Resource Unit-Referral center)로 구성 되어있다. 라즈니 선생님은 한 달의 30일 중 10일은 Bihar 지역의 보건 실태와 정책 관련된 연구와 논문 작성을, 나머지 20일은 Bihar의 여러 LEPRA 기관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독려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 계신다고 하셨다. 12월 말에 시작된 라즈니 선생님의 여정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고 Bihar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LEPRA의 활동과 나병의 보건 실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Bihar’는 고대어의 단어인 ‘VIHARA’에서 유래한 이름으로서 그 뜻은 수도원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이나 힌두, 불교, 자이나교, 무슬림, 시크교와 같은 많은 종교의 수도원과 신사 등이 위치하고 있고 우리 또한 운이 좋게도 이동 중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에 세워진 불교 사원을 들려 신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겐지스강이 벵갈 지역의 삼각주로 퍼져 나가기 전에 통과하는 지역으로서 비옥한 땅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의 54.4%가 빈곤선(하루 $1.90/1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Bihar의 북부지역의 산업과 경제 수준이 남부에 비해서 현저히 낮기에 빈부격차에 의한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건강, 교육, 위생 모든 부분에서 인도의 평균 아래에 있으며 문맹률과 신생아 사망률도 매우 높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가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종 소외질병에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며 특히나 나병 환자들은 사회적 낙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마을과 가족에게 버림 받아 나홀로 떨어져 살고 있는 환자의 슬픈 하소연은 드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LEPRA의 활동은 많은 소외질병 환자들에게 큰 희망과 든든한 지원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2. SPARSH center

Dhanbad 지역에 위치한 SPARSH center는 우리를 가장 크게 환대해준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우리의 목에 직원 분들께서 꽃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목걸이를 걸어주셨고, 우리의 이마 한 가운데에는 빨간색 점을 찍어주셨다. 환대를 끝으로 우리는 SPARSH center를 돌아보며 이 곳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2009년에 TATA라는 인도의 가장 큰 규모의 거대 기업과 LEPRA가 공동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곳이다. TATA는 인도에서 철강, 자동차, 소금, 생수, 커피, 화공약품, 방송, 보험회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산업과 서비스업을 생산하는 큰 회사이다. TATA는 회사가 이익을 보는 만큼 어느 정도는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TATA Steel Rural Development Society라는 별도의 공익성 단체를 설립하여 이곳 SPARSH를 후원하고 있다. 현재 SPARSH center는 한센병과 사상충증을 앓으면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삶고 있다. SPARSH center를 Dhanbad 지역에 설립한 이유는 이 지역이 풍토적으로 한센병과 사상충증에 취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이미 한센병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이 1500명에 달하고 사상충증에 의한 합병증을 앓는 사람들이 1200명 가량 되지만 정부 보건 시설에서 이들에게 제공하는 보건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관리 서비스가 절실했는데 SPARSH center를 통해 많은 어린이와 마을 주민들이 작게는 질병을 치료받고 크게는 삶의 변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었다.

Sparsh center에서는 이미 질병에 걸려 이에 의한 합병증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한센병의 영구적 장애를 얻은 이들에게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외과적, 예방적 차원의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한센병으로 인해 손가락이 안으로 굳어 더 이상 펼 수 없게 된 이들에게 손을 다시 펼 수 있도록 재건 수술을 제공하고, 재건 수술을 통해 이들이 일을 계속하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지원을 해준다. 또한 한센병 환자들 중 발바닥에 감각을 느끼지 못하여 발에 상처가 나거나 궤양이 생겨 감염과 괴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SPARSH center에서는 환자의 발에 맞는 보호 신발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안타깝게 발을 잃는 경우를 방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physiotherapist라고 불리는 분들께서 각 환자의 발에 맞는 신발을 직접 제작하고 계셨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신발의 특징은 발바닥에 기계적 압력 혹은 마찰로 인한 상처가 나지 않도록 푹신한 재질로 구성 되어있는 것인데 이런 재질의 신발이 환자들을 여러 궤양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잘 신고 다닐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개발하여 환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신발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신발을 신고 발을 잃을 뻔한 사람들이 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신발 한 짝이 한센병 환자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또 SPARSH CENTER은 한센병과 사상충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합병증 혹은 영구적 장애가 오기 전에 치료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센터의 직원분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병에 대한 증상과 대처방법을 알리고 있으며 어떤 의심스러운 문제라도 발견이 된다면 이 곳으로 찾아와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는 SPARSH center에서 라즈니 선생님께 케이스 진단을 하시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라즈니 선생님께서는 이 곳을 찾은 환자분들께서 SPARSH center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보여주셨다. 환자분들의 사전 동의를 얻고 우리는 총 10명 정도의 환자 케이스를 볼 수 있었고 각각의 케이스에 대한 병리학적 기전과 진단 방법, 그리고 치료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3. Munger LEPRA center

다음으로 들린 곳은 Munger 지역의 LEPRA center였다. 이 곳 Munger 지역 또한 한센병과 사상충증 그리고 리슈만편모충증이 풍토병인 지역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5년 이 곳에 LEPRA center가 설립되었다. 이 곳 지역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가정 중 60%는 한달 수입이 12만원 이하인데 이들은 집에 화장실이 없어서 열린 공간에서 대소변을 해결해야하고 때문에 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에 노출 되어있다. 한센병, 사상충증 등의 병에 걸리면 평균 3일 정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 곳 지역의 6분의 5에 해당하는 인구가 한 끼 밖에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 중 3분의 1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보였다. 이렇듯 빈곤과 질병은 서로 큰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으로 인해 빈곤은 더욱 더 심해지고 병도 더 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곳 Munger center에서는 몇 가지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었다. 첫째로, 사상충증과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가족 구성원도 의무적으로 검사하여 질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질병들은 조기발견과 치료가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런 활동은 미래의 환자 수를 줄이고 질병에 맞서 싸우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또한 이 센터에서는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한센병과 사상충증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홍보 축제와 전시회를 기획하며 열고 있었다. 무료로 발 보호용 신발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SPARSH center와 동일했다. 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늙은 의사 선생님 한 분께서 진료를 보고 계셨다. 이 곳을 찾은 환자들에게 치료약을 제공함은 물론 이들이 제대로 약을 먹는지 확인하고 이들이 약을 꾸준히 먹고 완치할 수 있도록 환자 개개인에 대한 장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약을 잘 먹지 않는 경우에는 상담을 통해 그들에게 약을 잘 먹고 더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기에 체계적으로 병을 관리하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우리는 이 곳에서도 여러 명의 환자 케이스를 보며 그들의 고통과 센터의 노력을 통해 얻은 삶의 변화를 목격하였다. 그들의 고통에는 단순히 질병과 장애에 의한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는 한 환자와 그녀의 딸이었다. 환자는 한센병에 걸린 후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구타를 당했고,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로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직 직업을 얻지 못한 이 여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한 걱정보다도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걱정이 크다며 Munger center에 자신이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며 사정하였다. 딸을 데리고 다니며 직업을 구하기 위해 절실하게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도 그녀의 딸은 이 곳의 장학금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당시 환자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센터가 단순히 질병의 극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극복을 넘어서 환자가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재활 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4. Little Flower Hospital

이 곳은 이번 인도 여정에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다. 네팔과 인도 사이의 국경에 위치한 이곳 Sunderpur의 겨울은 꽤나 쌀쌀했다. 이 곳은 유난히도 하늘을 새까맣게 가릴 정도로 까마귀들이 많이 있었다. 덕분에 자주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이 곳의 이름은 Little Flower Hospital이지만 의사는 한 명도 없다. 사실 이름은 병원이지만 2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물론 한 명의 의사라도 간절하게 원하는 곳 임에는 틀림없다. 다행히도 바로 옆에 마을 옆에 사립병원이 하나 있어서 급하게 건강이 나빠진 분들은 Duncan Hospital을 찾는다. 하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자주 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곳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라즈니 선생님을 통해 이 곳의 설립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북부 인도의 한 마을에 살던 여자는 한센병에 걸렸지만 주변에 마땅히 치료받을 만한 곳이 없었기에 당시 테레사 수녀가 의료봉사를 하며 계시던 델리의 한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열차를 타고 델리로 가던 중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테레사 수녀는 이 일을 안타깝게 여겨 함께 일하던 Christdas 형제에게 비하르 지역에 가서 그 곳의 한센병 환자를 위한 의료활동을 해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1981년 11월에 비하르의 Sunderpur의 오두막집으로 이사하여 지금의 Little Flower Hosipital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지금의 Little Flower Hospital이 세워진 곳이 바로 그 사고를 당한 여인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덕분에 비하르 지역의 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이 곳에서 약과 치료를 받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한센병 환자들은 그들의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Little Flower Hospital은 2천명 규모의 마을이 되었다. 당시 이 곳을 설립했던 Christdas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카비타 선생님께서 이 곳을 돌봐 오셨다.

네팔 출신의 카비타 선생님께서는 카트만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방콕에서도 자연자원 개발과 관리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 그 뒤 미국의 하버드에서 공중행정학을 공부하신 후 네팔,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의 농촌 지역 프로젝트와 에베레스트 산의 수자원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키워오셨다. 이 분과 Little Flower 와의 인연은 그녀가 네팔에서 microfinance 프로젝트 일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셨다. Microfinance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그 것으로 그들의 삶을 지원하는 금융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Little flower마을을 30년 동안 후원해온 캐나다의 Leger Foundation의 컨설턴트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Little flower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곳을 몇 번에 걸쳐 방문하게 되었고, Christdas 선생님은 그녀에게 Little flower 마을의 관리위원회의 일원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현재는 Christadas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마을을 관리위원장으로 마을의 시스템을 개선시키는데 큰 힘을 쏟고 계시다. 카비타 선생님께서는 마을이 어느 후원단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고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계시다. 그것이 달성된 후에야 마을을 떠나 자신의 인생에 계획해 놓은 다른 일들을 또 하실 예정이라고 한다.

이 곳 Little Flower Hospital이라는 공동체는 점점 성장하여 후원단체들의 도움을 통해 학교와 집을 짓고, 가축을 사육하는 꽤나 큰 규모의 마을로 성장하였다. 그곳 구성원들은 현재 자력으로 먹을 것을 생산하고 있고 방직 공장을 가지고 있어 이 곳 여성들은 이 곳에서 스카프를 만들어 외부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력으로 이 지역의 삶과 생계의 모든 영역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구축하면서 한센병 환자와 그들의 가족은 자부심을 되찾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상처를 치유해 오고 있다. 그래서 이 곳 Little Flower Hospital의 목표는 한센병 그 자체의 치유를 넘어 자력으로 마을을 세우고 마을 속에서 자신의 의미와 역할을 찾으면서 사회로부터 받아온 상처를 치유 받고 자부심을 되찾는 것이다.


Little Flower 에는 풀 타임으로 약 225 명이 고용되어 있다. 또한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노약자와 장애인 85 명은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며 그에 따른 월급과 연금을 받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Sunderpur 바깥 지역의 인력거 운전사, 식당 웨이터, 택시 운전사로, Duncan 병원의 요리사로서 일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가족과 함께 마을에 살고 있다. 현재 Little Flower의 임금은 그곳이 속한 Bihar이라는 인도의 가난한 주에서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ittle flower는 비하르 주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과 가장 높은 건강 관리 시스템을 자랑한다.



추후 활동 계획


이기윤 학생(본2)

1. Little flower hospital과 연계한 fund raising

우리가 초반부에 견학했던 Lepra Bihar 본부, SPARSH 본부, Munger LEPRA center는 Lepra 또는 Tata와 같은 비정부기구와 정부, 그리고 거대회사의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비록 시설은 개선의 여지가 있었지만 시설의 운영을 담당하는 Lepra의 노력과 정부와 회사의 지속적인 지원이 어느정도 밸런스를 유지해 우리가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정 말기에 방문한 Little Flower 공동체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고 외부지원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공동체에 살고있는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은 누에고치를 가공하고 재봉틀로 한땀 한땀 스카프를 짜서 팔고 있었으며 소에서 젖을 짜서 우유를 생산하고 biogas로 전등을 키는 등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각종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Little Flower에겐 카비타 라는 노련한 지도자와 라즈니 선생님을 통해 Lepra의 신발과 약과 같은 지원을 종종 받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산성과 발전을 직접 경험한 우리는 그들이 조금의 도움을 받으면 공동체가 완전한 자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동안 Little Flower를 견학하고 마련해주신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냈었다.


1. 한센병관련 카카오톡 이모티콘 제작 후 수익 기부.
2. 인도 택시는 릭샤와 같은 간이카페를 한국에 만들어서 전통적인 인도 음식과 음료인 라씨, 차이, 젤레비 등을 팔아 수익 기부.
3. 한센병관련 다큐멘터리 제작 후 수익 기부.
4. 적십자와 같이 우표 또는 쁘띠셀 제작 후 초등학교에서 한센병에 대해 교육하고 팔아 수익 기부.
5. Little Flower에서 만든 스카프를 한국에서 팔아 수익 기부.
6. 공대와 연계하거나 학교에서 동아리를 만들어 Little Flower에서 필요한 의료 또는 생활 도구 또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보내주기.

다음날 라즈니 선생님과 마타지 선생님 과의 미팅에서 우리는 위의 아이디어를 건의해보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의 아이디어가 조금은 naive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건의가 의도는 좋지만 많은 부분이 공동체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보단 부가적인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이 더욱 이런 지원에 대해 민감한 이유는 그들과 오스트리아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된다.


Little Flower는 오스트리아와의 연계를 통해 스카프를 판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스카프 판매를 맡은 Claudia는 회계를 불투명하게 운영하고 판매 장부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수익의 큰 부분을 자신의 월급으로 쓰고 건축학을 전공하는 아들을 위해 거액의 돈을 들여가며 Little Flower 안에 고급 숙소를 건축하고 이를 Little Flower에게 청구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을 경험했다.

Little Flower 공동체는 따라서 밖의 지원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밖의 조력자보다 공동체에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타지 선생님께서는 Little Flower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다음의 리스트를 제시했다: 저렴한 가격의 젖소 (마리당 50,000-60,000 루피, 10마리): 소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이다. 인도에서 우유는 한국의 김치와 같이 음식 조리에 빠질 수 없다. 따라서 우유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있고 소의 이용가치는 높다. 한 마리의 젖소는 하루에 10-15L의 우유를 제공할 수 있고 1L의 우유는 40루피에 팔린다. 따라서 소 한 마리는 그 가치 이상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경제 수단이다. Little Flower 공동체는 안에 목장을 개설해서 현재 35마리의 저렴한 젖소를 가지고 있지만 총 45마리의 젖소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들의 목장은 여러 관리가 필요한 고급 젖소를 들여올 형편이 안되므로 저렴한 젖소가 더 유익하다고 한다.

면 또는 실크 원재료 (1,500,000 루피): Little Flower는 면과 실크 원재료를 가공해서 스카프를 만들어 팔고 있다. 하지만 기본 자금이 부족하기에 그들은 원재료를 저렴한 시기에 대량으로 살 수 없고 수요가 있을 때 원재료가 비쌀 때에도 사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원재료 1 quintel에 약 100,000 루피가 들어가므로 15 quintel을 살 수 있는 1,500,000 루피가 있으면 그들은 원재료를 저렴하게 사서 스카프를 만들어 이윤을 볼 수 있다.

안과 클리닉 (1,000,000 루피): Lepra에서 치료 가능한 실명을 목표를 삼을 정도로 인도에서 안과는 절실합니다. 특히 눈질병이 있으면 멀거나 비싼 병원으로 가야 하기에 부담이 큰 편이다. 따라서 Little flower에서는 안과 클리닉을 건축하기 위해 약 1,000,000 루피를 필요로 하고 있다. Little Flower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에겐 무료로, 밖의 환자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를 제공하고 있기에 안과 클리닉이 생기면 공동체 안과 이웃을 모두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와 랩 (연당 1,000,000 루피, 2-3년): Little Flower에서는 physiotherapist와 간호사는 있지만 아직 의사가 거주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퇴직한 의사도 적당한 월급을 주며 고용할 의사가 있다. 또한 2-3년간 월급을 줄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면 추후의 자금은 Little Flower 밖의 사람들의 방문을 통해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위에 제시한 4가지는 Little Flower에게 일시적이고 직접적인 도움도 주지만 장기적으로 지원금보다 많은 효과를 생산하기에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마타지 선생님과 라지니선생님은 의료기구와 같은 도움도 좋을 수 있지만 생산에 드는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한 후에 더 저렴하고 효과적인 도움이 다른 방안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수정한 후에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생각해보았다: 자체적으로 스카프 팔기 (실크 개당 600-800 루피, 면 개당 350루피): Little Flower에서는 Fair Trade에 가입되어 있으며 공동체원들에게 합리적인 월급을 주며 스카프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Little Flower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으로 광고를 제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스카프를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카프에서 판매한 이윤을 전부 Little Flower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손가방 제작: 스카프는 수요가 계절과 날씨에 민감하고 지역상 수요도 많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우리는 사시사철 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방 제작과 판매를 생각해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Little Flower에 손가방 모형들을 보내고 손수 제작한 손가방 모델을 받은 후 수요조사를 통해 스카프와 판매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한국 대형 회사와의 연계 : 회사들은 연휴 또는 행사에 직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기획상품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한 한센병 환자들을 돕는 것은 회사의 PR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우리는 회사에게 연락해 Little Flower로의 직접적인 기부를 물어보고 행사를 위해 회사의 로고 또는 회사가 원하는 무늬의 스카프 제작 등을 상의해볼 계획이다.